‘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공청회

“지금,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탈시설의 권리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가 주는 ‘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은 누구나 배제되지 않는 권리로서 이미 천명됐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 탈시설은 모든 장애인에게 기본 권리라는 전제 아래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배제, 고립, 격리 당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이 권리임을 인정 받기까지 많은 시간을 싸워야 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권리로서 인정은 하지만 그에 따르는 정책,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법률에 근거규정이 없다고 했다.

‘거주인이 너무 중증장애가 있다’, ‘부모들이 반대한다’, ‘입소를 문의하는 대기자가 여전히 있다’, ‘지역사회가 준비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다못해 지금까지 운영하던 시설 건물들은 어떻게 하며 법인이나 개인운영자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까지. 계속 걱정, 걱정, 걱정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탈시설에 동의한다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행정관료, 시설운영자,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라’라는 말은 나만해도 이미 20년 전부터 들었다. 우리의 하루가 소중하듯 거주인의 하루도 소중하고, 우리가 늙듯이 그들도 늙는다. 최근에는 거주인이 65세가 넘었으니 탈시설-자립이 아니라 노인시설로 가야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우리사회가 더 이상 ‘기다려라’라는 말 따위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

 

2014년 유엔 장애인권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에서 한국의 시설 보호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고 ▲장애에 대한 인권적 모델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 개발 ▲정신 또는 지적장애를 포함해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전제하고 있는 현행 법률조항 폐지를 촉구한바 있다.

이미 많은 나라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1946년 장애위원회에서 채택 된 정상화 원칙(normalization principle)에서부터 시작해 1997년 시설 폐지를 명령하는 입법으로 마무리됐다.

영국은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립성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탈시설화를 뒷받침한 핵심 법제는 1990년 국가보건서비스 및 지역사회 돌봄법(National Health Service and Community Care Act)이었다.

캐나다는 사회통합법(Social Inclusion Act)이라는 법률 제정을 통해 직접 지불이나 지역사회 서비스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특별시, 전주시,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탈시설 정책을 추진했다. 탈시설화 논의는 정부의 공식 추진과제이나 아직 중앙정부 차원에서 직접 추진하기 위한 법·제도 근거와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더불어민주당)·윤소하(정의당)위원, 인구정책과 생활정치를 위한 의원모임 등은 29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 발제를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가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 및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발제를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가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 및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설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 독립 법안 제정 필요

발제를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안’ 참조

현재까지 논의한 방식은 크게 ▲장애인복지법 개정 ▲독립 법안 제정▲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에 포함하는 것으로 나뉜다.

염 변호사는 “국가의 탈시설화 정책은 현행법 아래에서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장애인 탈시설화를 위해서는 많은 정책과제들이 있다. 전략 목표를 설정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분담을 설정한 바탕 위에서 이를 위한 정책과 수단, 그에 소요되는 재정을 조정·통합해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수단과 추진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은 독립 법안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황규인 회장은 “이른바 ‘탈시설 정책’ 또는 ‘지역사회통합정책’을 둘러싼 몇 가지 입장 차이가 있음에도 공통분모가 있다.”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돼 사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당사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역사회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장애를 이유로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는 그에 합당한 지역사회서비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독립 법안 역시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법률에 근거 규정을 마련해두는 것은 필요하므로 최대한의 내용을 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인복지법에 탈시설에 대한 내용을 넣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만 가장 소극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법 안에서 탈시설과 시설을 같이 규정하게 되기 때문에 방향성을 바꾸고 그에 맞게 시설에 대한 규정도 제한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전체 장애인복지의 철학과 개념, 전달방식 자체를 바꾸는 법이기 때문에 입법 과정부터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한다. 어떤 법률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입법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가능한 모든 법안에 탈시설에 대한 내용을 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시설 이용·생활인 등까지 명확한 규정 고려해야

▲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박경수 교수.
▲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박경수 교수.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박경수 교수는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이 적용대상을 확대한다면’ 개별 제정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제2조 1항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 및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14조(초기상담 및 정보제공)와 제25조(시설평가 등) 등에서 노숙인까지 포함하고 있어, ‘장애인’만으로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박 교수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 ▲‘정신건강복지법’ 제3조에 따른 정신질환자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명확히 규정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법률간 개념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탈시설 정책의 대상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법안의 적용대상도 ‘장애인’ 보다는 ‘장애인 등’이라는 용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탈시설’ 용어 사용 놓고 이견… ‘낙인’ 우려 등 거부감 표해

▲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황규인 회장.
▲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황규인 회장.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사회통합을 위한 법을 만드는 데는 동의했으나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쓰는 데 있어서는 의견이 갈렸다.

황규인 회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탈시설화 정책의 목적이 지역사회통합에 있다면 굳이 탈시설화지원정책, 탈시설화지원법, 탈시설지원센터 등의 용어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는 불가피하게 또는 당사자가 원해서 거주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박경수 교수도 탈시설 용어가 거주인에 대한 부정의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황 회장은 “탈시설의 정당성을 논함에 있어서 서비스 결함이나 시설운영 비리의 이유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하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사회적 가치’로 설명하고 그 정당성과 방향성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규모 시설과 그룹홈 논란, 이제 종식시켜야 한다

탈시설 논란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소규모 시설과 그룹홈. 이에 대해 김정하 활동가는 ‘이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 활동가는 “방식을 아예 바꾸자는 이야기다. 외국과 같은 용어를 쓴다고 해서 그 의미 또한 마치 같은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한국의 그룹홈에 들어갈 때 자신의 동거인을 선택할 수 있느냐. 당초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전제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공간이 작아지고 사람 수가 줄었다는 게 탈시설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을 보면서 평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박경수 교수는 시설의 소규모화 자체가 탈시설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조금 더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탈시설의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안정장치로 인정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

▲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이용근 과장.
▲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이용근 과장.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 1과 이용근 과장은 ‘탈시설은 시대정신이자 그 확산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물줄기’라고 정의하며,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의 필요성과 내용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과장은 “지역사회가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감당할 준비가 되고나서 탈시설 하자는 뜻이 아니다. 탈시설에 대한 철학, 방향, 공감, 의지, 각자의 역할 등이 받쳐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탈시설에 속도를 올리는 데 걸리는 것이 없는지, 함께 고민하고 촘촘한 청사진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규인 회장은 “탈시설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시설 입소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설을 선택하는 경우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신용호 과장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정책을 소개했다. 신 과장에 따르면 ‘커뮤니티 케어(재가·지역사회 중심 사회서비스 제공)’ 안에서의 탈시설과, 별도의 탈시설 관련 정책 두 가지로 계획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신용호 과장.
▲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신용호 과장.

신 과장은 “커뮤니티 케어는 보건복지부의 브랜드 사업으로 그 안에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만 들어가 있고 정신장애인과 노숙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 안에서의 탈시설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청사진은 7월에 나올 것 같다.”며 “탈시설과 관련된 청사진은 이제 만들어가고 있다. 12월경에 나올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4월에는 여러 가지가 계획돼 있다. 장관이 거주시설에서 1박2일 체험을 갖는다. 이와 함께 탈시설 정책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탈시설전환센터 등이 담긴 장애인복지법 개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또 LH와 협약을 맺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4~5년간 2,400가구 공급을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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