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회 주관 ‘장애인 거주에서의 분리와 통합, 그리고 함께 삶’ 토론회 개최

▲ 지난 11일 ‘장애인 거주에서의 분리와 통합, 그리고 함께 삶’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 지난 11일 ‘장애인 거주에서의 분리와 통합, 그리고 함께 삶’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물리적·제도적 통합 지향, 법률 개정과 서비스 전달체계 등을 바꾼다거나, 시설에서 나온다고 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시설에서 나오는 것’이 ‘함께 공동체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위해 ‘장애인 거주에서의 분리와 통합, 그리고 함께 삶’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장애인복지법’ 제58조에 따르면 ‘거주시설은 일반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일정 기간 동안 거주·요양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했다. 또 ‘시설에서 지역사회보호로의 전환에 관한 EU(유럽 연합)의 탈시설화 지침’을 살펴보면 시설은 ▲거주인이 광범위한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돼 공동생활을 하도록 강요하는 곳 ▲거주인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과 자신의 삶에 대한 충분한 자기결정권이 없는 곳 ▲조직의 요구가 거주인의 개인 요구보다 우선시 되는 곳으로 명시했다.

또 미국 발달장애인 자조단체인 ‘피플퍼스트’는 △장애인만이 사는 곳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세 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 △거주인이 침실이나 욕실을 잠그지 못하게 돼있는 곳 △운영진이 정한 식단과 취침시간을 강요하는 곳 △개인의 종교나 신앙생활을 강요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곳 △전화나 인터넷의 사용을 제한하는 곳 △지역사회 생활이나 활동을 제약하는 곳 등으로 시설을 정의했다.

탈시설화,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에 대해 묻는 철학적 개념이자 사회정책목표로 생각해야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박숙경 객원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박숙경 객원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박숙경 객원교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공동체 안이지만 별로 공간에 분리 또는 감금·차별, 공동체 밖으로 유기하거나 살해’ 등 형태와 강도만 달라진 채 배제해왔고, 오랜 세월동안 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지 못했다.”며 그 배제의 대표적이자 극단적인 예로 ‘시설보호 또는 수용정책’을 들었다.

박 교수는 시설 보호가 초래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시설화’를 꼽았다. 유럽의 보고서에 의하면 시설적 문화의 전형적인 특성은 ▲거주인 분리수용 ▲개별성과 인간성 제거 등 몰개성화 ▲경직된 반복적 일상 ▲도매금식 처우방식 ▲사회적 거리감 등이다.

그는 “‘시설화’는 자극 없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시설생활로 인해 사람들이 꿈과 욕구, 자존감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으로 이는 ‘시설적 문화’에서부터 야기됐다.”며 “이 시설적 문화로 인해 인간발달의 권리를 침해함으로 개인에게 누구도 보상할 수 없는 고통과 손해를 끼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시설거주인 거주 현황 및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86.1%가 타의에 의해 입소했으며, 13.9%만이 본인 결정에 의해 입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56%이상은 본인 동의 없이 주변사람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강제입소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55.13%는 10년 이상 시설에 거주하고 있었고, 거주시설에 입소한 장애인 가운데 퇴소 경험이 전혀 없는 응답자는 85.54%에 달했다.

각 지자체에서 실시한 탈시설 욕구조사를 살펴보면 대구시(2012) 58.6%(주거지원 시 70.5% 자립희망), 부산시(2009) 57.6%, 서울시(2009) 57%(주거 및 서비스 지원 시 70.3%), 광주시 41.3%(주거 및 서비스 지원 시 42.2%)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숙경 교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들어간 사람이 스스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분리와 감금정책이 사실상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며 “탈시설화를 단순히 인권, 비용문제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인지, 인간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개념이자 중요한 사회정책목표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는 개인의 손상과 사회적 태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 ▲장애인 개개인의 다양성과 고유 능력을 가진 주체성 존중 ▲보다 집중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인권 증진, 보호위한 노력 필요 ▲장애인은 지역사회 내 보호대상이 아닌 구성원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 자율성, 자신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한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는 UN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인정책의 철학적 기반이라며 “UN장애인권리협약이 담은 탈시설화의 철학적 지향은 △모든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 보장 △모든 개인의 성원권보장 △모든 개인의 다양성과 현재적 및 잠재적 능력 존중과 발현권보장.”이라고 말했다.

‘2017탈시설화정책연구’ 포커스그룹면접(FGI)에 따르면 당사자, 가족, 서비스 제공자, 담당공무원 4그룹 모두 탈시설의 개념을 ‘지역사회에 통합된 삶’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탈시설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인식’의 문제를 꼽았다.

박숙경 교수는 “관련 주체의 공통의견은 ‘지역사회 통합’과 ‘일상생활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중시한다는 것.”이라며 “법, 제도, 서비스 뿐 아니라 실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역시 탈시설화 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설의 사회화, 거주시설 보호저책 본질 오도하는 결과 초래해

▲ 상지대학교 법학과 김명연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상지대학교 법학과 김명연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상지대학교 법학과 김명연 교수는 박숙경 교수가 지적한 ‘시설화’가 탈시설을 지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박숙경 교수가 말한 ‘시설병’, 거주시설 생활인에게 나타는 시설증후군의 현상 분석에 동의하지만, 인과적 요인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시설화의 개념은 ‘시설의 문화’만 변경하면 거주시설에서도 장애인이 꿈과 욕구, 자존감을 회복하고 활력이 있는 삶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으며, 이로 인해 탈시설을 지연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시설화의 개념은 보호 또는 돌봄을 위한 선의의 장애인복지정책이었지만, 거주시설의 운영 관행과 문화에 의해 시설병과 같은 부정적 효과가 발생했다.”라며 “이에 시설의 사회화, 정상화이론에 기초한 ‘가정과 같은 거주시설’ 등 시설 개선사업으로 귀착돼 탈시설을 지연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높은 비자발적 입소 결과에서 보듯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수용과 분리의 거주시설 보호정책의 본질을 오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숙경 교수는 ‘시설화 개념규정’이 탈시설화의 개념화에서도 당사자 관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커스그룹면접 분석 결과에서 관련 주체별 탈시설화의 개념과 저해 요인, 정책과제에 대해 장애인당사자와 정책 담당자의 요구가 확연하게 다른 것처럼 박 교수 또한 정책자 또는 제3자적 관점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탈시설화 개념은 박 교수의 의도와 무관하게 완전한 탈시설화를 위한 단계적 과정으로 지역 공동체 내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시설을 양산해 거주시설 재구조화와 이전 시설화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욕구는 57%내외에 불과하며, 주거 및 서비스 지원도 7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런 조사 결과는 거주시설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시설의 적정 공급량은 유지돼야 하며, 장애인의 자기결정에 따른 시설 선택권 역시 존중돼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장애인이 주거시설을 적극 선택할 수 있도록 거주시설을 소규모화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긍정적인 시설정책이 요구된다는 논거로 비쳐진다.”며 아쉬움을 표명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의 탈시설 욕구는 탈시설 정책의 실증적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장애인 탈시설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의 법적 과제다. 이와 관련해 탈시설을 포기하고 시설을 선호하는 장애인의 의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중요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개인의 선호가 사회 구조 내 제한요소의 결과로 좌우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자기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 자기가 보기에 실현 가능한 수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권력구조에 맞춰 자신의 선호를 조절한다.”며 “따라서 국가는 지역공동체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애인이 거주시설의 선호를 표시할 때 왜 이런 선호를 하는 가에 대한 질문해야 하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통합을 위한 제반 조건을 마련해 당사자의 시설 선호가 헌법이 예정하는 공동체 내 존엄한 삶을 위한 ‘진정한 선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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