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 자매의 모임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기’ 모임 개최

장애가 있는 형제 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 자매는 장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살아갈까.

사회복지책마을과 사회복지웹기획 모임은 지난 26일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에서 비장애 형제, 자매의 모임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기’ 모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여동생을 둔 유튜버 장혜영 씨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 살아가는 고민 나누기’라는 주제로 경험담을 나눴다.

장 씨는 18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던 동생을 데리고 나와 서울에서 살면서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운영 중이며, ‘어른이 되면’이라는 프로젝트를 론칭해 다큐도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장 씨는  “32년 인생 중 ‘한 살 어린 동생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하게 된 것은 불과 3년 전에 불과하다.”며 “동생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하다 보니 영상 제작 외에 사회복지사,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 형제자매, 장애인거주시설 담당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1년여간 많이 만났는데, 그때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는 대상은 역시 부모였다. 이들은 장애 형제 자매가 있는 비장애 형제 자매의 육아, 교육, 성인이 됐을 때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들 하신다.”고 1년여간의 경험을 설명했다.

장 씨가 경험한 부모들의 고민은 ‘비장애 형제자매가 (장애가 있는 형제 자매를) 인생의 짐처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였다고 말했다. 반면 ‘아무런 무게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적절한 부담감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비장애 중심으로 살아오던 부모 입장에서는 (새롭게)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과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비장애 형제 자매의 인식은 다르다.”라며 “내 부모 역시 보호자이기 때문에 내 동생을 ‘책임’과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장애를 ‘적응’보다 ‘극복’으로 바라보니 종교나 의학의 힘을 빌려 비장애 세상으로 데려오려 노력했으나 나는 달랐다. 동생의 장애를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하다 보니 동생이 약간 다르다는 건 익숙하게 받아들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역시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그냥 알게 됐다. 장애와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것에 대해 익숙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비장애 자녀에게 어떤 인식을 전해주려고 한다면 나는 ‘부모님 걱정이나 잘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잘 인식하고 있다.”며 “(비장애 자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것은 (비장애 자녀들이) 선택하고 생각할 영역이고, 부모로서 뭔가 해줘야 한다면 ‘비장애 자녀가 장애 자녀 없이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 사람이 돼 있는가’에 대해 유심히 살펴봐주는 정도다.”고 제언했다.

장 씨는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난 비장애 형제 자매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장애 형제 자매때문에) 미래를 고민 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었다.”며 “이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가 여부를 떠나 장애 형제 자매를 잘 돌봐주는 여동생, 언니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었고, (장애 형제 자매를) 뺀 삶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죄의식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다만 나랑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나 터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같은 비장애 형제 자매 모임에 왔을 때는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라며 “이런 모임이 지역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것, 그 속에서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게 운동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도 사적인 자리지만, 대화의 씨앗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똑똑도서관 김승수 관장의 사회로 진행한 토크 콘서트에서 전주대학교 최복천 교수는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동생이 다이빙을 하다 경추가 부러지면서 장애를 입게 돼 ‘장애인 가족’이 되서인지 동생 이야기를 할 때 (장혜영 씨와 달리) 부모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며 “사회학 전공자로서 장애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 삶 속에서는 ‘경제적으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의대나 행시를 준비할까’를 놓고 고민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가왔으며, 결국 장애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어 “사람들은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반대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은 우연히 찾아온 것이며,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다.”라며 “나에게 장애는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내 동생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민복지관 이상훈 사회복지사는 “나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형을 있고, 지금 복지관에서 성인기 장애인이랑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며 “형 덕분에 다른 비장애인보다 가족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됐다. 지금은 형이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나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지고 형도 40대로 접어들면서 기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내가 부모를 대신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며 (복지관) 자조모임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사회적 제도를 이야기할 때, 부모 사후 내가 내 직업을 유지하면서 등 하원 시켜주며 낮 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생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이 사회복지사는 “연애 초반 여자친구에게 슬쩍 이야기했다가 공개적으로 알렸다. 한 달에 한 번 형하고 같이 나들이를 했는데 특별한 거부감이 없었다.”고 설명했으며, 최 교수는 “아직까지 여성과 남성은 다른 사회다. 남성은 가족을 꾸려 컨트롤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여성은 저쪽,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이외의 가족(시댁)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며 “여성들이 훨씬 더 결혼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있는듯 하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제도 등에 대한 제안 등을 묻는 질문에 이 사회복지사는 “요즘 마을 중심, 커뮤니티케어 등 공동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것도 좋지만 우선 내 이야기를 가족, 친구, 애인 등에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무지개처럼 넘쳐 났으면 좋겠다.”라며 “이렇게 마음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누군가가 가장 필요하다. 좋은 지원에 맡겨놓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 모임을 기획하면서 비장애 형제 자매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올까 봐 조심스러웠다.”고 전제한 뒤 “외국 부모운동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사회 속에 ’우리 아이 드러내기’다. 같이 지내보고 부딪혀 봐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다. 비장애 형제 자매가 ‘뭔가 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것을 같이 고민하고 드러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중압감을 느끼지 말고 장애 형제 자매와 같이 놀다 보면 인생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장혜영 씨는 “모든 행동의 동기는 지독한 이기심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동생이 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동생의 좋은 언니로 살다가 동생이 시설로 사라지고 나니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 닥쳤다. 진짜로 원하는 건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다. 이런 환경에 태어났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걸 할 수 있는 자유다. 나의 자유를 깊이 생각했을 때 동생의 자유를 생각할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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