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도 수어통역사도 없다”… 참정권 보장 촉구 긴급 기자회견

“오늘은 사전투표가 있는 날입니다. 좋은 제도죠. 하지만 장애인들은 승강기가 없어서, 접근성이 마련되지 않아 투표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곳 사직동 사전투표소만 봐도 승강기가 없습니다. 수어통역사도 배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투표를 하러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최소한 그것만은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제(지난 8일) 사전투표소를 찾았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듣고 놀라며 장애인의 참정권을 살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장은 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의 현실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관심 갖고 지지해 주세요“

6·1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8일과 9일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투표 편의를 위해 전국 ‘어디서나’ 자유롭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시행된 사전투표제이지만, 장애인은 이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에 마련된 사전 투표소 중 17.5%에 해당하는 614개 사전 투표소는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대선과 비교하면 0.8% 개선에 불과한 수치다.

또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사전투표소는 7.4%로,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은 지역도 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계단체는 9일 오전 11시 사직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사라진 장애인의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투표편의 높아졌다”… 장애인은 빼고?

6·13 지방선거에서 진행되는 사전투표는 전국 단위로 처음 도입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11.5%,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2.2%, 지난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26.1%로 점차 높아져 왔다.

이번 사전투표 첫날인 어제(8일) 투표율은 8.77%로, 9일이 주말임을 감안하면 사전투표율이20%를 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사전 투표를 통해 참정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이번 역시 접근 가능한 사전투표소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출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출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따르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 3,512개 중 614개는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승강기가 없이 계단만 있거나, 출입구에 턱이 있기 때문이다.

접근 불가능한 단순 개수로 지역을 비교해 보면 서울이 423개 사전투표소 중 140개가, 경기 지역은 561개 중 119개에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지역별 전체 투표소 대비 접근 불가능한 곳을 비율로 확인해 보면 대구가 39.6%로 가장 높아 10개 중 약 4개 사전투표소에서는 장애인이 방문하더라도 접근이 어려워 되돌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장애계는 “국민의 투표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사전투표제가 시행된다고 하지만 장애인의 투표권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처음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지속적인 개선 요구를 해왔으나, 지난해 대선과 비교하면 0.8% 밖에 개선하지 못한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면담을 통해 투표소 접근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인 접근성 문제는 여전하다.”며 “아무리 좋은 편의지원제도를 만들고 기표소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투표소 자체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투표권은 ‘종이조각’과 마찬가지가 된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수어통역사 없는 사전 투표소… 수어통역사 배치 없는 지역도

청각장애인들 역시 사전 투표에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전투표에서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사전투표소는 전체 3,512개 중 259개. 단 7.4%에 불과한 수치다.

심지어 세종지역은 17개 사전 투표소 중 어디에도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것이 장애계의 설명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지만, 지난해 사전투표에서 더욱 심각했다.

수어통역사가 어느 사전 투표소에 배치돼 있는 지 안내가 없는 것은 물론, 현장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돼 있다 해도 이를 알리는 명찰 등이 없었다.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에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전투표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곳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안내 명찰을 달도록 했다.

다만 수어통역사를 만날 수 있는 사전투표소가 너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장애계는 “수어통역사가 어디에 배치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딱’ 거기까지가 다였다.”며 “서울만 해도 423개 중 25개 사전투표소에만 수어통역사가 있고,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은 지역도 있다.”고 꼬집었다.

법이 보장하지만 현실은 다른 장애인 참정권… 장애유형별 투표편의 제공해야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면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요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 27조에는 참정권 보장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장애계는 “선거 전 과정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관련법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조치가 제공돼야 함을 촉구한다.”고 주장하며 “장애인이 전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설치된 투표소, 찾을 수 없는 수어통역사, 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의 불편함으로 고민하는 시각장애인, 쉬운 선거공보물이 제작되지 않아 정보를 얻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등 장애유형별로 고려돼야 할 투표편의가 모두 무시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구안에는 ▲모든 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 확보 ▲장애 유형에 맞는 정보 제공 ▲투표 과정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선거사무원 등 관련자들의 장애인 지원에 대한 교육 강화 ▲모든 투표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직접 참여에 대한 권리 보장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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