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없어 투표 포기한 이형숙 소장 “‘임시 기표대’는 차별, 접근성 확보된 투표소 필요”

중앙·종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충분하지 못한 접근성 죄송하다. 노력하겠다”

▲ 사전투표소를 찾았지만 계단이 앞을 가로막았고, 결국 투표를 포기하고 만 이형숙 소장
▲ 사전투표소를 찾았지만 계단이 앞을 가로막았고, 결국 투표를 포기하고 만 이형숙 소장

“나도 직접 신분 확인을 한 뒤 기표를 하고 투표함에 내 소중한 표를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내게는 지정된 투표소가 아닌 별도로 마련된 ‘임시 기표소’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투표를 하라고 한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곳’이라고 설명을 하더라.

이것은 편의가 아니다. 진짜 편의는 동등하게 투표소에 들어가, 똑같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확보된 곳에 투표소를 만드는 것이다.”

9일 오전 사직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형숙 소장은 투표를 하지 못했다.

해당 사전 투표소는 승강기가 없는 2층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투표소 입구에는 ‘거동불편 투표자 임시기표소’라는 안내가 붙어있었지만, 이 소장은 이를 거부했다.

임시기표소에는 기표대만 설치돼 있을 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도, 투표함도 없다. 이 때문에 자신의 신분증을 동반인과 투표소 관계자에게 맡겨 신분을 확인한 뒤, 투표용지를 받아 내려와야 한다. 또 투표를 한 뒤 투표용지를 맡겨 사전투표소에 있는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

기표만 스스로 할 수 있을 뿐 신분확인과 투표용지를 받는 과정,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과정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승강기가 없는 곳에 사전 투표소가 마련돼 투표를 위해 들어 올려진 이형숙 소장.
▲ 승강기가 없는 곳에 사전 투표소가 마련돼 투표를 위해 들어 올려진 이형숙 소장.

이 소장은 “나는 왜 도움을 받아 별도로 마련된 임시기표대에서 투표를 해야 하느냐. 이것은 직접투표와 비밀투표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정식 투표소에 직접 올라가 투표를 하겠다. 들어서 올라가게 하든 어떻게 하든 내 권리를 지켜내라.”고 요구했다.

해당 투표소 관계자는 “지침대로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고,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접근이 가능한 장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차량을 제공하겠다.”고 회유했지만 이 소장은 반대했다.

‘누구나’ 편하게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다는 사전투표에서, 도움을 받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장애를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따르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 3,512개 중 614개는 승강기가 없거나 출입구 턱 등의 문제로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관련기사_사전투표소 614곳, 장애인은 접근 ‘불가’)

▲ 사전투표소에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기표대만 있는 임시 기표소를 이용해야 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 사전투표소에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기표대만 있는 임시 기표소를 이용해야 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소장은 “왜 장애인은 억지를 쓰는 사람으로 만드느냐. 제대로 된 접근성을 마련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야 했을 일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투표소 관계자들이 나와 이 소장의 휠체어를 들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단 하단부와 달리 상단부의 공간이 좁아 더 이상 무리였다.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은 ‘왜 이렇게 불편한 곳에 투표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이들의 상황에 공감했다. 반면 일부 시민은 이 소장과 투표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모여 있는 장애인들을 타박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한 시간 여를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계단 사이에 멈춰 있던 이 소장은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이 소장은 “투표소 접근성 문제를 매년 제기하지만 아직도 이런 곳이 많아 또 다시 투표를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투표소 접근성도 문제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선거를 앞두고 거소투표를 할 수 있다는 안내가 집으로 도착했을 때였다.”며 “난 접근성만 확보되면 충분히 혼자 투표를 하고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전투표도, 선거 당일 투표도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선거관리위원회 “충분하지 못한 접근성 죄송”… 청와대와 장애계 면담 예정

한편 이날 현장에는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직접 나와 상황을 파악하고 미비한 접근성에 대해 사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누구나 참정권이 있고 투표에 불편이 없어야 하는데 100% (접근성을) 확보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충분히 공감하고 의견을 수렴해 다음 선거에는 더 많은 사전투표소가 1층에 확보되도록, 100%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보안과 행정 때문에 2층에 사전투표소가 설치됐다. 죄송하다.”며 “지난해 문제가 제기된 삼청동 사전투표소의 경우 2층에서 1층으로 옮겼다. 단계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에 대해 청와대와 면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8일 사전투표소 앞에서 장애계를 만난 문제인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접근성 문제에 대해 듣게 됐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청와대와 면담이 예정돼 있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것.”이라며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도 면담을 갖고 장애유형 별 참정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 방향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투표소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노인에게도 위험하고 불편하다.
▲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투표소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노인에게도 위험하고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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