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에 외치는 민주주의의 요구는 조직 문 앞에서 왜 멈춰 설까. 인권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회복지조직에서도 사무실 안에서는 인권을 말하지 않을까.

인권을 강자가 약자에게 배려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는 시혜적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 (사회복지조직의) 리더와 구성원들은 강자다. 시혜의 틀 안에서 스스로들 강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은 사회복지조직 사무실 문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권은 실천이자 구체적 행동이다. 또 보편적이다. 리더와 구성원,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지 않으며,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보편적 권리다.

민주주의를 투표로만 이해한다면 시민에게 주어진 몫은 투표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조직에 들어오면 투표할 게 없다. 투표라는 행위만을 민주주의로 인식하기 때문에 조직의 문 앞에서 멈춰 선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권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투표는 이런 믿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선출직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참여와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인권과 민주주의는 불편한 것이 된다. 조직과 사무실 문 앞에서 멈춰서는 이유이다.

지시와 통제, 관리의 문화 속에서는 명령과 평가만 있고 구성원들은 따르기만 하면 편할 수 있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참여하고, 이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조직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맞다. 민주주의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조직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들에게 구성원들의 인권을 이양한다. '아래로부터의 인권(지역사회개발을 통한 인권의 실현)' 저자인 짐 아이프(Jim Ife)는 이반 일리치(Iilich)의 불능화 특성을 들어 설명한다.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워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어렵기 때문에 원조하는 전문직들을 만들어 낸다. 결과적으로 전문가의 권한은 강화되지만 일반 시민의 능력은 약화된다.” 조직도 이와 같다. 구성원들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스스로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사, 노무, 권익, 복지 등의 조직이슈를 구성원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지침과 매뉴얼을 만든다. 그리고 취업규칙과 근로기준법을 잘 알고 있는 노무사나 경영전문가에게 이양한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이양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인권이란 지역사회개발뿐만 아니라 조직개발에서도 필요하다. 지역에 사는 사람과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간만 다를 뿐 서로 다르지 않다. 전문가에게 이양돼 있는 권한을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반영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매뉴얼과 법, 전문가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구성원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 맡겨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고자 한다면 구성원들도 역시 인격체로서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회복지조직이라면 구성원들의 인권과 조직의 민주주의에도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존엄(인권)과 배분적(권한의 배분) 정의라는 우리의 가치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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