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형식적인 것 아닐까요?”

“물론 그래. 형식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외부의 이해관계자가 그걸 바라잖은가.”

형식적인 업무가 주어졌을 때 흔히 이뤄지는 대화양상이다.

‘과연 그럴까?’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다. 원하는 정보와 단어, 숫자를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형식에 대한 과도한 충실함이다.

그 충실함은 기관에서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요구하는 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필요이상의 내용을 적기도 한다. 흔히 공무원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이런 충실함을 원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바삐 움직이는 그들이 방대한 양의 서류를 차분히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정작 그걸 원하는 건 조직이고, 이 선택은 조직의 리더가 한 것이다.

연중 보고서는 누구에게 보고하는 것일까. 사업계획서는 누가 보려고 작성하는 것일까. 연말은 사업계획서를 쓰는 시기가 아니고, 연초는 사업보고서를 쓰는 시기가 아니라 전략이 나오고 이를 실행하는 때다. 하지만 이 기간의 핵심 과업은 보고서와 계획서 작성이다.

이때 생산하는 보고서와 계획서는 그렇게 형식적일 필요는 없다. 핵심적인 사업의 평가와 계획을 실용적으로 담으면 된다. 보고서와 계획서를 보는 대상은 지역 사회나 외부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조직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보고서와 계획서를 만들어서 외부에 발송했을 때 유의미하게 읽는 사람도 거의 없어 보인다. 다들 의미 있게 볼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의미 있게 들여다보는 외부 이해관계자가 있다. 바로 사회복지시설 평가자들이다. 그러다보니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보고서와 계획서를 만든다. 3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리더의 선택이 필요하다.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다 비용이다. 초과 근로가 발생하는 것은 이런 형식적 업무에서 기인한다. 야근은 형식을 맞추는 시간이다. 형식은 업무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이직을 발생시키며 수동적 조직문화를 만들어 낸다.

승근배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 원장

구성원의 동기부여가 저하되면 자연스레 ‘저성과 조직’이 돼 버린다. 형식적 업무에 들어가는 투입량을 줄여나가야 줄인 양만큼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다. 계속 손을 털어내고 가벼워져야 새로운 것을 쥘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현장 워커(Social Worker)가 될 것인가? 페이퍼 워커(Paper Worker)가 될 것인가’는 리더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리더는 형식적인 과업의 양을 줄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가 요구하는 형식에 대해 조직 나름대로의 기준을 조금 낮춰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과 여력만큼 지역사회나 사회적 약자 등과 마주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리더는 그 시간을 현장 사회복지사에게 위임한다. 위임한 시간 속에서 현장 사회복지사의 자발성과 창의성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란 과업을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해 주는 사람이다.

형식을 깨버림으로써 현장이 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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