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대의 영국함대와 33대의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유럽의 운명을 두고 겨룬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년)은 역사상 큰 전환점을 주었다. 

당시의 해전은 양측의 함대가 횡렬로 전열을 만들고 승부가 날 때 까지 함포사격을 하는 형태였다. 이 해전을 승리를 이끈 영국의 넬슨제독(Horatio Nelson)은 당시의 해전 형태와는 달리, 자신의 전함 빅토리호(HMS VICTORY)를 타고 연함함대의 전열 가운데 들어가 함포사격을 하였고, 이로 인해 전열이 흐트러진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는 손도 못쓰고 패배하였다.

당시 연합함대는 강력한 통제 속에서 함포를 발사하는 매뉴얼 조직이었고 영국함대의 넬슨제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적진에 뛰어든 매트릭스 조직이었다.

지방분권화라는 것은 중앙보다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역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더 큰 의미로서의 지방분권화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란 것이다. 그럼으로 지방분권화의 근본 목적은 지역의 시민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원, 커뮤니티 케어 등이 사회복지계의 화두이다. 모든 정책들이 국민의 복지체감과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불안감이 역력하다. 그 불안감의 원인은 정책들 간의 분절성에서 기인한다. ‘지방분권화’와 ‘커뮤니티 케어’는 지방중심이며 민간중심의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데 ‘사회서비스원’은 중앙중심이고 공공중심이다. 지방분권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회서비스원과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상이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서비스원과 커뮤니티 케어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안에서, 시민의 복지를 위해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할 정책이다. 그러함에도 이해관계와 정치적 논리에 의해 매뉴얼대로 접근하다보니 모순이 발생한다.

더 근본적인 불안감의 이유는 정책 디자인에 현장과 시민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작동시켜야 할 현장의 사회복지사와 시민들은 배제된 채, 소수의 전문가와 정책입안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주도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대로 중앙은 계획하고 평가하고, 진행은 민간에서 맡아하던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원과 커뮤니티 케어는 시민들의 복지에 관한 실제적 정책이다. 그럼으로 공통의 가치와 방향성을 가지고 논의되기 위해서는 정책디자인에 현장과 시민의 참여가 절대적이어야 한다. 결국 커뮤니티 케어를 구축하고 사회서비스를 작동시키는 것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승근배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 원장<br>
승근배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 원장

현장에 답이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현장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참조만 할 뿐, 현장에 권한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넬슨제독에게 권한이 없었다면 트라팔가르해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 때는 매뉴얼 조직이 강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뉴얼은 정태적 상황에서나 적합한 도구이다. 문제의 정의가 뚜렷하고 해결하는 방법 역시도 정한 기준이 명확하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얽히고설키어 있다.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매뉴얼만으로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탑다운 되는 시간 동안, 이미 지역은 새로운 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역과는 상이한 매뉴얼에 따라 일을 했을 때, 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커뮤니티 케어와 사회서비스원은 같은 맥락 안에서, 공통의 가치와 방향성을 가지고 실현되어야 한다. 서로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현장에는 수많은 빅토리호에 승선해 있는 라인워커(Line Worker)들이 인간의 욕구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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