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애인 교류 “이해를 우선으로 실천방안 고민해야”
남북 장애인 교류 “이해를 우선으로 실천방안 고민해야”
  • 하세인 기자
  • 승인 2018.11.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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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지도자포럼, 북한 전 영국 공사 태영호 ‘남·북 동행을 위한 장애계 단체 교류방안’ 주제로 강연
남북동행아카데미 태영호 원장이 강연하고 있다.
남북동행아카데미 태영호 원장이 강연하고 있다.

한반도 내 평화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국가 차원의 교류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민간 교류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장애인 교류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8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2018 제4차 최고지도자포럼’을 개최, 북한 전 영국 공사였던 남북동행아카데미 태영호 원장을 초청했다. 태영호 원장은 지난 2012런던 패럴림픽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날 태영호 원장은 북한 내 장애인들의 현실과 관련 정책에 대해 소개하며, 향후 남북 장애인계단체 교류 방안에 대한 제언을 내놓았다.

태영호 원장은 남·북 장애인 교류에 앞서 북한의 장애인 정책 발전 과정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6·25전쟁 이후 부상을 당한 군인들이 많아지자 북한은 1948년 경 부터 장애인 관련 정책을 내놓았다.

당시 상이군인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술 교육을 제공했고, 맞춤형 공장과 시설 등을 갖췄다. 구두수리와 시계수리 등 직종에서 상이군인에게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전체 장애인들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태 원장의 설명이다.

다만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도 차등은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일을 해도 보급소에서 쌀이 제공될 때 상이군인에게 먼저 배급됐고, 지하철에 별도로 마련된 좌석은 모든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닌 상이군인에게만 해당하는 배려였다.

장애인 관련 정책이 존재했던 북한이었지만, 1960년 말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유일독재 체제로 넘어가며 빨간불이 켜졌다.

태 원장은 “독재국가에서는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수령이 '북한은 완벽한 사회'라고 주장하니 사회 내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었다.”고 설명하며 “일례로 1960년 말부터 평양에서는 장애인 추방이 시작됐었고,  김일성 또는 외국인이 다니던 ‘일선도로’에서는 장애인이 보이면 안됐고, (상이군인이 아닌) 선천적 장애인은 일선도로 옆에 살 수 없고, 이선도로에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장애인을 숨기고 은폐시키던 문제는 해외 원조를 받기 시작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북한은 다른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장애인협회를 내놓게 됐고, 이때까지 없던 관련 수치를 제공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불편하다.

태 원장은 “장애가 있는 가족을 사회에 노출시키기 꺼려하고, 특히 여성 장애인의 지역활동은 수치스럽게 여긴다.”며 “교육 기회는 차별적이고, 주류(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수 대상(계층)이 아니면 대학 진학이 불가능 하다.”고 북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태 원장은 장애인에 대한 남·북의 교류가 활성화 되려면 남·북한의 장애인 복지제도가 어떻게 다른가 연구해야 하며, 이는 통일 이후 사회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의 관심밖에 있는 소수자들을 남한이 어떻게 껴안는가는 통일 후 남북한의 사회적 통합과 화해를 실현할 수 있다.”며 “남북 교류 창구를 단일화 하고, 수화·점자 등을 통일해야 하며, 아직 북한는 존재하지 않는 장애인복지관을 건설해 표본을 제공해야 한다.”는 실천 방안을 제안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2018 제4차 최고지도자포럼에 북한 전 영국공사 남북동행아카데미 태영호 원장을 초청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2018 제4차 최고지도자포럼에 북한 전 영국공사 남북동행아카데미 태영호 원장을 초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