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로 법칙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사일로란 곡식 및 사료를 저장해두는 굴뚝 모양의 창고로, 사일로에 장벽을 치는 부서 이기주의를 의미하는데 사일로(silo)법칙이란 조직 부서들이 서로 다른 부서와 담을 쌓고, 자기 부서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복지현장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사회적 약자를 기능별로 구분한다. 사람을 전인적 관점으로 접근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을 하는 방법을 보자면, 우선 사회적 약자를 소득의 수준으로 나눈다. 그 다음은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 등으로 분류한다. 구분된 기준 안에 들어오면 사회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각지대가 되어 버린다. 즉, 송파 3모녀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소득의 수준으로 나눈 기준에 그들이 포함되지 않았고,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 등으로 분류된 기준에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기준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그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의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국가가 정한 그 기준에 들어가야만 서비스가 제공된다. 장애가 있어야 장애인복지 부서가 개입되는 것이고, 노인이어야 노인복지 부서가 개입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복지현장의 사일로의 모습이다. 일을 잘해내기 위해 부서를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친 장벽으로 인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가난한 노인에게 지급되어야 할 기초생활수급비가 기초연금이라는 소득이 발생하자 그만큼을 제외하여 버린다. 기초연금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의 기초연금과가 주관부서이고 기초생활수급비는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의 기초생활보장과이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에 대한 보충성의 원리가 논란이 아니라, 사일로법칙에 의한 서로의 장벽이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노인에 대한 전인적 관점이 아니라 ‘소득이냐? 수급비냐?’ 라는 부서의 일로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시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65세가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서비스로 전환되어야 한다. 전인적 관점으로 본다면 장애인이냐? 노인이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가장 힘이 없는 국민이다. 그러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인정책국 장애인서비스과의 일이며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인구정책실의 요양보험제도과의 일이다. 두 부서간의 사일로가 만들어지고 65세라는 생물학적 나이로 일을 맡거나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증의 장애인은 65세 노인이라는 이유로 급여시간이 감소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승근배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 원장<br>
승근배 계명복지재단 양지노인마을 원장

일을 잘하기 위하여 ‘부서 간 사일로’를 만들었으니, 법도 역시 사일로를 만들어야 했고 사회적 약자들은 그 사일로에 집어넣는 형국이다.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무시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은 어떡하든 그 사일로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각지대에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간의 사회복지현장으로 가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 장애인, 노인, 한부모 등으로 나누고, 거주시설과 이용시설로 또 분류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센터들이 기능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함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사일로로 작용될 뿐이다. 이러한 현장의 사일로는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서비스를 제약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협회로 구성되면서 현장의 연대를 가로막는다. 기능적으로 분류된 협회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고, 공통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랫동안 민간사회복지현장이 그들의 권한을 정부와 기초자치단체에게서 획득하지 못하고 위수탁, 사회복지평가, 저임금과 인력부족이 해결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일로법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서비스 개선과 민간 사회복지현장의 연대를 위해서도 부숴버려야 할 장벽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지배구조(Governance)를 개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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