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장애인의 날, 대한민국은 생존권 걸린 예산 ‘난항’
세계장애인의 날, 대한민국은 생존권 걸린 예산 ‘난항’
  • 최지희 기자
  • 승인 2018.12.0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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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등 장애계 국회 앞 결의대회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등은 예산 반영 없이 불가”

“국회는 지금 예산소위도 파행돼 우리 요구안이 아닌 정부 요구안이 올라왔고요. 도대체 복지예산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예산심의도 안 하고 힘겨루기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탁상에서 숫자놀이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생존이 달린 일입니다.

우리는 내년도 예산에 따라 어떻게 살지가 결정됩니다. 장애등급제 없애달라고 요구하면서 우리가 이야기 한 게 뭡니까.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등급 때문에 기준 때문에 내가 필요한 만큼 못 받고, 자립생활도 못 하고, 이동도 못하고, 이런 것들을 못하는 게 아니라, 등급과 관계없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급이 없어지기 전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절실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

“우리가 방구석에 앉아서 비 안 맞고, 텔레비전 보고, 주는 밥 먹으면서 살고 있으면, 사람들에게는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고생스럽더라도 적나라한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너를 생각하면 어떻게 눈을 감고 가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술만 자시면 ‘나중에 죽을 때는 아빠엄마하고 너하고 같이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한날한시에 가겠습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놈의 세상이 좋을지 알고 저는 죽기가 싫었습니다. 살아남아서 이렇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박명애 회장-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26번째 세계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결의대회 및 쇠사슬 행진’을 열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이 스물여섯 번째인 2018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 앞에는 장애계의 규탄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하며 내년부터 단계적 폐지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심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장애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정책국 예산안은 올해 예산보다 약 5,000억 원 증액된 2조7,000억 원. 사실상 자연증가분만 반영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장애계는 강하게 반발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정부 예산안에서 4,000억 원 증액한 3조1,000억 원을 내놓았다. 장애계는 각 정당의 원내대표를 비롯한 관련 인사를 만나 당론으로 장애인 예산 확대를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2019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자칫 각 상임위원회에서 어렵게 증액한 예산이 다시 정부 예산안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충분한 상황이다.

장애계는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것은 31년 만의 장애인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올린 예산은 그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연증가분+10원짜리 예산’으로 장애인을 철저하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장애인 복지예산은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고 있지 않다.

국회, 내년도 정부 예산안 상정… “소위 협상 결과 기다리며 결의대회 계속”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낮 3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26번째 세계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결의대회 및 쇠사슬 행진’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에도 같은 자리에서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를 요구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진행되는 시기였다.

세계장애인의 날의 풍경은 그날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국회에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으나 가로막혀 실패했다. 이날 역시 국회 진입로는 굳게 닫혀있었다. 국회 진입로마다 장애계의 요구안이 적힌 큰 현수막이 깔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네 명은 울타리를 넘어 연행됐다. 한쪽에서는 도로를 점거했다. 사다리 등을 빼앗기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활동가들은 강제로 도로에서 끌어올려지기도 했다.

5시경 경찰이 ‘진행을 멈추지 않으면 현장에서 체포하겠다’고 5차 해산명령 등을 내리는 사이, 국회는 2019년 정부 예산안을 상정한다고 밝혔다. 국회법에 따라 정부 예산안은 자동 부의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소위에서 다시 협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까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만약에라도 논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 실망스럽다. 일단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좀 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애계는 저녁 8시 20분 현재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 연행된 네 명은 7시 30분경 풀려났다.

울타리를 넘은 회원이 경찰에 의해 제지 당하고 있다.
울타리를 넘은 회원이 경찰에 의해 제지 당하고 있다.

 

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이 울타리를 넘어 연행되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회원들 또한 사다리에 올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유보되는 장애인 생존권 예산안에 항의하며 국회를 향해 손 현수막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