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중증 장애 고려 없는 조건 등으로 실적 위주 전락 우려

중증 장애인 노동권 보장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도 중증 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이 그 취지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중증장애인 ▲공공부문 일자리 1만 개 도입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2019년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계획을 내놓았다.

사업은 동료상담, 자조모임 등 ‘동료지원활동’을 통해 비경제활동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중증장애인의 취업의욕을 높여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29일~11월 5일 사업에 참여할 지방자치단체 모집을 마쳤으며 참여 지자체는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복지관, 장애인의료재활시설, 장애인복지단체, 정신재활시설, 비영리민간단체 등을 대상으로 수행기관을 정한다.

동료지원가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에 따른 중증장애인이자 고용보험 미가입자로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 양성과정 수료자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동료상담가 양성 기초과정 수료자 △시·도(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의 동료지원가 양성과정 수료자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활동가 양성교육 수료자 중 한 가지 자격을 갖춰야 한다.

다만 장애유형별 할당제를 적용해 참여인원은 발달장애와 그 외의 장애로 나누고, 발달장애 비율이 최소 50% 이상이 되도록 했다.

동료지원가는 수행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월 최소 60시간(주 15시간) 일한다. 4대 사회보험 가입과 함께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과 주휴수당을 지급 받는다. 이에 따른 월 급여는 65만9,650원이다.

동료지원가는 참여자 발굴, 동료상담과 자조모임, 취업서비스 연계, 사후관리 등을 맡는다.

‘같은 장애유형 48명 찾아 연 10회 이상’ 충족해야 기본운영비 지급

공공부문 일자리와 최저임금 적용으로 어느 정도 기대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장애계단체는 ‘오히려 중증장애인을 일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차별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규탄했다.

전장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25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2019년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중증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자, 실효성 있는 동료지원활동이 아닌 실적 위주의 대규모 집단 지원에 치우칠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먼저 지원금은 기본운영비와 연계수당으로 나뉜다.

기본운영비는 동료지원가의 인건비, 운영비, 활동비 등으로 직결된다. 동료지원활동 참여자 1명당 20만 원을 지원하는데 ▲참여자가 동료지원활동에 10회 이상, 1개월 이상 참여해야 하며 ▲동료지원가와 참여자의 장애유형이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림돌이 된다.

수행기관이 고용할 수 있는 동료지원가는 10명, 동료지원활동 참여자 정원은 480명이다. 이는 동료지원가 1명이 48명을 연간 10회에 걸쳐 상담해야 하는 것으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만큼의 운영비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계수당은 일종의 성과급으로 참여자 중 취업지원서비스와 연계된 경우 1인당 20만 원이 주어진다. 동료지원활동 참여가 끝난 뒤 참여자가 6개월 안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으로 취업 연계되거나, 취업 또는 취업지원서비스 참여 1개월이 지난 뒤 받을 수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이번 사업에 참여를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용기 부회장은 ‘오히려 중증장애인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 부회장은 “1년 480명은 현실 불가능한 숫자다. 월 10명씩 연간 120명, 연간 10회가 아닌 5회로 완화할 것을 제안한다. 또 취업과 연계할 경우 20만 원의 성과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효율을 따지는 사회구조에서 중증장애인을 연계하거나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명호 활동가는 “이러한 체제라면 나 같은 최중증장애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언어장애가 있어 입으로 자판을 치면서 일한다. 이동권이라도 보장돼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 나는 여기서조차 노동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새로이 정의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얻는 것만이 노동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라는 탈 벗어던지지 않으면 중증장애인 노동권은 제자리

전장연 등 장애계단체는 현재 정부기관과 함께 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도입과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

이날은 중증 장애인이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와 관련한 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다운 정책국장은 “중증 장애인 특성에 맞춘 일자리가 확대돼야만 최저임금 문제도 해결될 수 있기에 포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는 단순 법 조항 삭제뿐만이 아니다. 보호작업장이나 근로작업장 같은 곳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정 정책국장은 “비장애인 생산성 기준에 맞춰 중증 장애인은 그것보다 못하니까 훈련만 하고 적게 줘도 된다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증 장애인이 일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차별과 낙인의 공간이다. 그래서 동료지원 할동 같은 공익 성격의, 중증장애인 특성에 맞춘 일자리가 같이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포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현재 훈련과 직업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반복 단순조립, 단추 꿰기, 상자 접기 등을 일자리이자 직업재활이라고 한다. 팔 때는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호소하면서, 중증 장애인에게는 한 달에 30만 원도 되지 않는 것을 일자리라며 ‘보호’라는 이름아래 정당화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으로 치장하고, 시설에 처박아놓고, 장애인식 개선을 이야기 한다. 고용노동부가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는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특성에 맞게)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자신의 활동을 하는 것이 권익옹호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장애계단체는 △동료지원가 동료지원활동 대상 인원 120명 △기본운영비 지급 요건 대폭 완화와 동료지원활동 5회 △동료지원가와 참여자의 장애유형 동일 조항 폐기 △동료지원가의 자격요건 완화 △동료지원가의 특성에 맞는 동료지원활동 다양화 △취업 또는 취업서비스 참여 명단 제출로 연계 인정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이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용노동부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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