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그곳에 사람이 있다’ 고숙희 씨

지난 5일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그곳에 사람이 있다’가 열렸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촉구 및 서명운동 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시민서명전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은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 기반한 주거서비스를 공적영역에서 제공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내용은 ▲장애인거주시설 신규설치 및 신규입소 금지 ▲범죄장애인거주시설 즉각 폐쇄 ▲30인 이상의 대형시설 5년 이내 폐쇄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중증장애인에게 지원(자립생활)주택 및 개인별지원서비스 제공 등이다.

이들은 “장애인거주시설은 그동안 중증 장애인을 보호하고 돌본다는 명목으로 사회로부터 이들을 격리해 집단 수용했다. 현재 1,517개의 시설에 3만693명이 갇혀있다.”며 “한국사회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은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최우선의 복지로 존재의 정당성이 부여됐으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이란 공간은 학자나 정책전문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당사자의 삶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돼야 한다. 장애인이 가장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던 그곳에서 어떻게 살다 죽는지, 그곳이 그 사람에게 가장 최선의 대안이었는지, 우리사회가 다른 선택지를 만들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는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하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우리하나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관했다.

이에 장애인신문은 증언자의 증언 내용을 펴낸 기록을 차례로 싣는다. 이번 증언은 고숙희 씨 ‘다 나오기도 전에 죽으면 어떡해요’ (2부)이다.

 

처음엔 나가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함세상센터 소장님은 시설에 인권교육 왔을 때 만났어요. 소장님이 계속 꼬셨어요. 저를. 너 나오라고, 너는 나와야 된다고. 근데 처음에 저는 피했어요. 소장님하고 얘기하고나면 소장님이 가고 나서 하루종일 혼나요. 왜 소장님하고 얘기 하냐고... 외부사람하고 말을 섞으면 안돼요. 얘기하면 혼나니까 처음에는 소장님을 피했어요. 소장님이 자립홈, 체험홈 이런 정보를 알려줬는데 처음엔 나가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회생활 하다보니까 이러저러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러니까 아, 나가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2013년 11월 11일에 자립해서, 함세상센터에서는 2014년 4월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원룸에 살다가 지금은 국민임대아파트가 당첨돼서 이사 왔어요. 집 꾸밀 생각에 너무 좋았어요. 나와서는 동료상담 하나 했었는데, 동료상담 하면 그 안에 장애인밖에 없는 게 좋았어요. 같은 입장이니까, 얘기를 하면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일대일로도 하고, 그룹으로도 하고. 일대일로 할 때는 소장님이랑 했는데 저는 이 때까지 시설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그런데 소장님이 제 이야기 듣고 계속 우는 거예요. 난감했어요. 제가 좀 눈물이 없거든요.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했고.

장애등급재심사라는 벽

활동지원서비스는 시설에서 나오고 1년 뒤에부터 쓸 수 있었어요. 탈시설 하고 체험홈에 들어와서 장애등급재심사에서 등급하락해서 활동지원을 못 받았었어요. 그래서 나올 땐 장애가 별로 안 심했다가 한 1년 지나니까 몸이 좀 갑자기 안 좋아져가지고.. 처음에 받은 시간은 60시간 밖에 안됐어요. 제가 휠체어가 없었다고.. 그러다 2014년 4월 14일에 라면 먹으려고 물 끓이다가 화상을 크게 입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국민연금공단 규탄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때가 송국현동지도 등급제 때문에 화재로 사망사고가 있던 때라 문제가 많이 돼었죠. 지금은 90시간이에요. 이의신청하고 재판정을 기다리고 있어요. 청소하고 빨래만 하는데 써요. 사무실에서 일할 땐 직원들이 도와주고 다른 업무는 제가 하고. 활동지원사가 없을 땐 자주 넘어졌어요. 집 구하는 건 좀 어려웠어요. 입구에 턱이 없어야 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하철이랑 가깝고, 조건도 까다로우니까 좀 많이 구하기 힘들죠. 그리고 마침 집을 구해서 갔는데 집주인이 쫓아내요. 장애인이라고. 그리고 집주인은 아무 말 안하는데 이웃이 나가라고 한 적도 있어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다는 것

시설에서 나와서 제일 좋았던 건, 내가 먹고 싶은 거 사다가 먹는 게 좋았어요. 처음 나온 날엔 밥이랑 김, 김치만 먹었는데도 너무 좋았어요.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었으니까... 사진 찍어서 친구한테 자랑했어요. 자립하고 나서 놀라웠던 게, 제가 체험홈으로 나왔을 때 아무 때나 나갔다가 들어오래요. 내가 미리 전화 안 해도 되냐고 하니까, 안 해도 된대요. 그냥 집에만 들어오면 된다고. 그리고 돈 마음대로 쓰는 게 너무 좋았어요. 시설에선 한 천만 원쯤 갖고 나왔어요. 더 많았는데 시설이 갖고 갔겠죠. 시설에서는 한 달에 5만원만 쓰게 했어요. 그런데 나오고 나서는 제 마음대로 썼어요. 6개월 동안 한 달에 100만원씩 썼어요. 진짜 신나게 썼어요. 제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돈을 잘 벌었던 때거든요. 그 때 한창 술 먹을 때니까 술집 가고, 그리고 인터넷 쇼핑, 옷 사고 놀러가고, 6개월 동안 하니까 한이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 지나고부터는 좀 절약했어요.

자립하고 나서 제 집엔 갑티슈가 쌓여있어요. 시설에 있을 때 직원들만 갑티슈 쓰게 했거든요. 한 12살쯤에 갑티슈가 너무 궁금해서 한 장 뽑아 쓰다가 걸려서 맞고 하루종일 손들고 벌 섰던 게 아직도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집에 항상 갑티슈를 몇 박스씩 쌓아놓고 맘껏 쓰고 있어요.

고숙희 씨 집에 쌓여있는 갑티슈.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고숙희 씨 집에 쌓여있는 갑티슈.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내 공간에 혼자 있다는 것

취미생활은 술이에요.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에어컨 틀고 맥주. 혼술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건 닭발.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20년 했잖아요. 그러니까 내 공간에서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혼자 있는 거 자체가 좋아요. 같은 시설에서 나온 언니랑 가끔 보고 주위에 동지들하고 놀러가기도 해요. 거의 시설에서 나온 분들이니까 좀 시설에서 못하게 하는 게 있었잖아요. 집회 끝나면 어디 놀러가자고. 그래서 맨날 집회 끝나고 바닷가 가고 백화점 가고. 지금은 반려고양이 호야와 살고 있어요. 호야도 새장에 유기된 걸 발견해서 겨우 살려냈어요. 지금은 잘 크고 있어요. 작년 6월부터는 사이버대학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 일을 할거면 필요하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대만 아니면 노르웨이에 해외여행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한 5년뒤에 가려고 저금하고 있어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 가고 싶어요. 제가 좀 겁이 없어요. 애들이 넌 겁이 너무 없다고.

고숙희 씨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고양이 ‘호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고숙희 씨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고양이 ‘호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다 나오기도 전에 죽게 되면 어떡해요

우리가 시설에 많이 가야해요. 사람들한테 알려줘야 해요. 자립할 때 중요한 건 자기 의지예요. 그리고 집. 집 있으면 부족해도 개인이 다 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의무화 되면 좋겠어요. 지금은 의무가 아니잖아요. 근데 저는 발달이나 뇌병변이나 모든 장애인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 나오면 좋겠어요. 탈시설이 10년 안에 1,000명 하자고 지금 주장을 하고 있잖아요. 근데 지금 시설 이용자들이 전국적으로 하면 3만 명인데, 다 나오기도 전에 죽게 되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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