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예산 맞춤형’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예산 맞춤형’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9.06.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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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계, “한정된 예산으로 ‘종합조사표’ 아닌 ‘점수조작표’”
복지부에 요구사항 접수 하고 6월 14일까지 답변 요청

장애등급제 폐지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다음달 1일 기존의 숫자로 나뉘었던 등급이 사라지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본격화 된다.

정부는 기존 장애등급을 폐지하고 ‘장애의 정도가 심한’ 그리고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으로 나누는 단순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맞춤형 지원체계’라는 목표를 세우고 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서는 ‘서비스 지원 종합 조사표(이하 종합조사표)’를 적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애등급제 폐지를 염원하던 장애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름 아닌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적용할 종합조사표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서비스를 주고자 종합조사표를 구성하다 보니, 장애등급제 폐지가 아닌 ‘예산에 갇힌 점수조작표’에 불과하다는 것이 장애계의 입장이다. 실제 장애계가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종합조사표 온라인 모의조사에서도 활동지원 급여 하락이 확인돼 우려와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에 대한 입장과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이 자리는 전장연이 지난 4일부터 ‘장애등급제진짜폐지예산확보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찾아 삼만리 농성장’을 차린 곳으로, 농성 7일차가 되는 날이었다.

장애등급제폐지민관협의체 박경석 공동위원장은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변화는 조사표 개선이나 예산의 변화가 아닌 국가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결론부터 말하면 ‘장애인 중심’이 아닌 ‘예산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가 되고 있다. 31년 만의 변화를 예산 내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실망을 드러냈다.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 한다더니… 종합조사표 적용해보니 활동지원 급여 하락

현재 정부는 지난해 9월 장애계단체 1차 토론회에서 종합조사표 초안을 제시, 의견을 수렴해 지난 4월 2차 토론회에서 종합조사표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활동지원 급여 하락을 우려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지난달 31일~지난 9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와 신청자를 대상으로 모의 평가를 진행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고시한 종합조사표를 웹사이트로 구축해 자가평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열흘간 진행된 모의평가에 3,800여 건의 참여가 들어왔고 이 중 유효한 데이터를 선별해 총 2,519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상당수의 활동지원 급여 하락이 현실로 확인됐다. 모의평가에서 활동지원 서비스 급여가 감소한 사람은 867명으로 34.4%, 1,478건에 해당하는 58.7%는 증가했다. 176명의 수급 탈락자도 발생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당초 복지부는 평균 7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모의평가 결과는 달랐다.”며 “활동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지마비 중증장애인인 나 역시 월 100시간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닌 장애유형별이나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예산에서 맞춘 것.”며 “복지부는 모의평가 결과 하락이 나타난 상황에 대해 답을 하고 입장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전장연 조현수 정책조직실장은 “모의평가는 자가 평가 형태로 주관적이어서 신뢰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공개된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정하면서도 “하지만 종합조사표를 살펴보면 실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서비스가 줄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장애유형별 특성을 ‘추가’ 아닌 예산안에서 ‘조정’… “골육상쟁 꼴이 됐다”

특히 정부가 종합조사표를 조정하면서 논란이 더해졌다.

복지부가 발표한 종합조사표의 기능제한(X1) 총점은 532점이다. 일상생활 동장역역과 수단일상생활동작, 인지행동특성, 시·청각복합 평가 등이 점수화 돼 포함된다.

그런데 종합조사표가 초안에서 조정안으로 변경되면서 활동지원 급여 시간과 직결되는 점수 배정이 변경됐고, 이에 따라 장애유형별로 받을 수 있는 점수의 증감이 발생했다.

종합조사표 초안과 종합조사표 조정안을 비교하면 초안에서 344점이었던 일상생활 동작 영역은 318점으로 줄었다. 수단일상생활동작은 116점에서 120점으로 늘었다. 인지행동특성 역시 72점에서 94점으로 늘었다. 그리고 시·청각복합영역이 20점에서 36점으로 올랐다. 예를 들어 시·청각복합평가와 인지행동특성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면, 조정안에 따른 점수는 초안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이에대해 장애유형을 고려한  종합조사표가 아닌,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골육상쟁’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위원장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서비스를 조정하려다 보니 누군가의 떨어진 종합조사표의 점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골육상쟁과 종족분쟁이 일어난 꼴.”이라며 “필요한 서비스를 추가하고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서비스 내에서 조정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또한 사회활동 영역(X2)에서는 기존에 12점이었던 학교생활 점수는 조정안에서 6점으로 깎였다.”며 “하지만 복지부는 종합조사표의 점수를 줄이고 늘린 조정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매뉴얼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요구사항을 복지부에 전달하고 오는 14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전장연의 요구사항은 ▲최중증 독거장애인 추가 하루 8시간 확대, 24시간 보장 ▲모든 장애유형 하루 최대 약 16시간의 급여량 판정이 나올 수 있도록 조정 ▲한시적 보전방안이 아닌 급여수급 최저기준과 급여구간 조정 및 평균 서비스 양 확대 ▲장애유형별 특성 반영한 매뉴얼 공개를 통한 불신 해소 ▲사회생활 영역의 학교생활 점수 6점에서 24점으로 반영 ▲주간활동서비스 하루 8시간 보장 ▲7월 1일 시행되는 시기를 시범시기로 6개월 지정, 종합조사표 적용에 따른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포함하는 각 부처와 장애계단체가 포함된 법에 근거한 협의기구를 장애인복지법 부칙에 명시해 협의하는 것 등이다.

또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노숙농성을 이어가는 한편 다음달 1일에는 예산확보를 위한 행진 등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