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

“소리를 듣는 부모는 들리지 않는 세계에 사는 아이의 성장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청각장애 아들이 첼로를 연주하기까지 부모의 고민과 노력을 담은 자전적 ‘그래픽노블’이 발간됐다.

이 책은 프랑스의 만화가이자 미술교사인 아빠가 청각장애 아들을 키우며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일화를 담은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청각장애 아이를 둔 부모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수화냐 구화냐’와 같은 언어 선택의 문제,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와 같은 민감한 사안, 그리고 아이의 학교 입학을 전후로 당면하게 되는 문제를 솔직하게 다뤄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장애아동도 비장애아동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맞서 마침내 통합교육을 이뤄내고, 첼로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들을 지원해 아들의 첼로 공연을 관람하기에 이르는 일화들이 담긴다.

출판사는 서평을 통해 ‘장애 자녀에게 비장애아동들과 똑같은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 그리고 아이의 성장 단계 단계마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참고해볼 만한 의미 있는 지침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말 듣지 못하는 건 청각장애가 아니라 장애아동과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세상이다.”

이 책의 주인공 그레고리 마이외와 그의 아내 나데즈는 둘 다 교사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쌍둥이 아들들이 장애 진단(샤를은 선천성 갈락토오스현증, 트리스탕은 청각장애)을 받으면서 깊은 혼란에 빠진다.

이 부부가 마주한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장애를 온전히 수용하기까지 혼란과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기보다는 지침대로 대응하는 전문가의 의료진, 장애아와 그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수많은 행정 절차를 더 우선시하는 관계 당국, 일과 육아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병원 일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장애아 부모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직장, 심지어 장애·비장애아동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교육 기관까지.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4학년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그의 아내가 겪은 일련의 과정은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가 맞닥뜨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의 뒷부분에 현재 프랑스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 관련법과 제도, 청각장애 아동의 지원하는 각종 기관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과 그 가족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이 사회의 법과 제도와 장치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고발한다.

그리고 말한다. “정말 듣지 못하는 건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무관심과 편견으로 장애아의 그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세상.”이라고.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가 있다면 내 아이가 두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선택권을 가졌으면 좋겠어.”

청각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을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를 맞는다. 수어로 하든, 구화로 하든 관계없이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아이가 유치원으로, 학교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의사소통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저자는 수어를 배워 아이와의 의사소통을 하지만, 유치원 입학 시기가 다가오자 아이에게 구화(입술 움직임과 표정을 읽어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자신도 음성언어에 가깝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를 가르친다.

소리를 듣는 아이들과 소통할 방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아이가 외톨이가 되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고민한다. 이 선택이 쉬울 리 없다. 수술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성공한다 해도 인공와우에 적응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수술로 아이가 건청인(소리를 듣고 음성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과 똑같아지는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떤 선택이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일까?
 
아이의 정체성이 청각장애인이라는 단 한 줄로 요약되지 않기를 바라고,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와 가능성을 제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경우 그 책임을 감수하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 자신이다.

저자 부부는 모든 가능성과 문제점을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 과정은 부모의 선택이 수화든, 구화든, 아니면 인공와우 이식수술이든 관계없이 청각장애 아이를 둔 부모라면 충분히 경청해볼 만하다.

“내 아이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청각장애 때문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없어서 생긴 문제였다.”

저자는 결국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게 아이를 세상과 갈라놓는 ‘소리의 장벽’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인공와우에 적응하려면 소리를 듣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면서 듣고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학교는 아이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통합교육은 명목일 뿐 청각장애 아이들만 있는 특수반을 따로 운영하고, 통합교육을 하더라도 음성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수업에서 제외시킨다. 심지어 어쩌다 들어간 수업에서도 청각장애 아이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기구안 FM송수신기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이 일화들은 청각장애 아이와 세상과 갈라놓는 ‘소리의 장벽’이 실은 아이가 지닌 청각장애가 아니라, 청각장애 아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세상의 무관심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책에 담긴 이러한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전해준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각장애인의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35만 명.

이 책은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이자, 우리나라 청각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저자 소개 -

글·그림 _ 그레고리 마이외(Grégory Mahieux)

미술 교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청각장애와 선천성 갈락토오스혈증이 있는 쌍둥이 형제의 아빠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건, 듣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을 키운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의 무관심과 편견이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과 사회 제도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글 _ 오드리 레비트르(Audrey Levitre)

역사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 직업 고등학교에서 그레고리 마이외를 만났고, 그가 쌍둥이 형제를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이 책을 만들고 그리는 작업에 함께했다.

옮긴이 _ 김현아

대학과 대학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 폐 아들과 아빠의 작은 승리’, ‘시선의 폭 력’, ‘다운증후군 가르파르, 어쩌다 탐정’, ‘자폐가 뭔지 알려줄 게’, ‘귀 없는 그래요’, ‘내가 안 보이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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