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산·당진·전주로 3개월간 시범사업, 기대와 우려 섞여

50년 만에 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고향인 강릉으로 떠나는 세종장애인인권연대 문경희 대표가 생각에 잠겨 있다.

“강릉은 아버지 고향입니다. 내 나이가 60세, 고속버스 타고 가는 건 50년 만입니다. 너무 기뻐요.”

강릉행 버스 앞에서 세종장애인인권연대 문경희 대표는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아버지 고향인 강원도 강릉. 어릴 적 부모님 등에 업혀 버스를 탔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나, 드디어 강릉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내 생전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이야 KTX가 있지만, 전에 강릉을 가려면 무궁화호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어요. 이제 버스를 타고 강릉에 갈 수 있다니, 너무 신나요. 그동안 이동편의가 마련되지 않아 못 갔던 많은 곳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 작가로 활동 중인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의 여행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시외이동을 위한 대중교통은 기차를 제외하면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빠질 내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여행 작가인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가 강릉으로 가는 버스표를 보여주며 기대를 나타냈다.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부터 언제 한번 고속버스를 타보나 생각했는데, 드디어 시작이네요. 매번 요구를 하고 싸워야 바뀌는 사회가 신경질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 감회가 새로워요. 리프트가 움직일 때 너무 큰 소리가 나거나, 고정 장치와 안전벨트의 복잡함 등 섬세하게 수정할 곳들이 있네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기자회견 등을 위해 터미널에 나왔다 준비 중인 버스에 탑승해 봤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싸워왔던 그는, 고속버스에 오르며 여러 생각을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고속버스에 탈 수 있음에 기뻤고, 아직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들이 눈에 보여 답답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탑승 설비는 터미널과 휴게소 등에서 장애인을 ‘스타’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 또 복잡한 고정 및 안전장치가 장애인과 버스 기사 모두를 곤란하게 할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함께했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고속버스에 오르며 보완이 필요한 곳을 꼼꼼히 살폈다.

“제가 오늘 입고 있는 이 다 떨어진 옷은 등 뒤에 ‘버스를 타고 싶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2001년에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제작한 옷입니다. 저는 이 옷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입고 다닙니다. 이 옷의 색깔은 다 바래져서 보이지 않지만, 13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권리’ 실현을 위해 분노와 저항을 해왔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10년 내로 모든 교통수단을 100% 이용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우리의 눈물이 장애인들만의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교통약자의 자유로운 이동에서 언젠가는 모두가 겪어야 할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버스 운행에 앞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전국장애야학협의회 박경석 이사장는 뒤로 돌아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기자들에게 보여줬다. 이미 색이 바래지고 글씨가 벗겨져 겨우 자국만 남의 뒤에는 ‘버스타고 싶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정부의 시범사업이 ‘고속버스 10대, 4개 노선’이라는데, 내년 예산이 3개월뿐인 올해 시범사예산과 같다는데 분노했던 박경석 이사장은, 역사적인 시작의 날에서 또 다시 투쟁을 외쳤다.

전국장애야학협의회 박경석 이사장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기자들에게 보여줬다. 이미 색이 바래지고 글씨가 벗겨져 겨우 자국만 남의 뒤에는 ‘버스타고 싶다’는 외침이 담겨 있다.

지난 28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기대와 우려, 환희와 분노를 동시에 쏟아냈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첫 운행, 3개월간 시범사업

그간 시외·고속버스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탑승 할 수 없었다. 단 한 대도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6년 시행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교통약자의 모든 교통수단 이용 권리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무시해 왔다.

그리고 법 시행 13년 만인 ‘2019년 10월 28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탑승할 수 있도록 리프트 등을 장착한 고속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 17일 국토교통부는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가 3개월 가량 시범 운행된다’고 밝혔다. 휠체어전용 승강구과 승강장치, 가변형 슬라이딩 좌석, 휠체어 고정 장치 등이 설치됐다.

고속버스에 탑승 중인 장애인 당사자.

이번에 시범 운행되는 고속버스는 서울과 부산, 서울과 강릉, 서울과 전주, 서울과 당진을 오가는 4개 노선.

10개 버스업체에서 각 1대씩 버스를 개조해 버스 당 휠체어 2대가 탑승할 수 있으며, 각 노선에 1일 평균 2~3회 운행될 예정이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는 이번에 처음 상업 운행되는 것으로, 3개월 가량의 시범운행을 통해 도출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버스업계, 장애계 단체 등과 협의해 가면서 보완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역사적인 날, 다시 다짐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범운행에 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13년 만의 시작, 고속버스 휠체어 탑승 눈물난다’는 기자회견 문구를 내걸고 환영의 뜻을 밝히는 한편,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박경석 이사장의 “눈물이 난다. 감사의 눈물이고, 분노의 눈물이다.”라는 발언이, 장애계가 바라보는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운행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지금 10대로 4개 노선 시범운행을 한다. 준비를 많이 했다지만 부족하고 염려되는 지점도 있다. 잘 준비해 2020년에는 더 많은 노선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추상적인 바람으로 이 자리를 마무리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부터 5년이 지나는 2024년까지 모든 고속버스의 50%는 휠체어가 탑승가능 한 버스로 의무 교체하도록 교통약자법을 개정하고, 실행 가능하도록 예산 반영을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를 향해 함께 투쟁하자.”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정부를 향해 ▲시내버스 대·폐차버스 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휠체어탑승 가능 고속버스 50% 도입을 법에 명시하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 수립을 통해 구체적 방안 제시 ▲시내버스, 마을버스, 특별교통수단의 단체이동지원버스에 도입을 명시하고 계획 수립 ▲특별교통수단 도입 시 차량비 지원으로 하지 말고, 대·폐차 시, 운영비,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비 지원 의무화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장애인 이동권 기준 논의 제안 등을 요구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