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계 “서울시의 자립생활지원 연구에 당사자 빠졌다”
정신장애계 “서울시의 자립생활지원 연구에 당사자 빠졌다”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9.10.31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센터장과 팀장 등 인력에 ‘전문가’ 배치… “자립생활센터 개념 결여” 지적

최근 진행된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 모형개발 연구’와 관련해, 자립생활지원 모형 속 인력이 전문가 위주로 구성되는 등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31일 서울시청 앞에서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등 단체가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무시하는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 모형개발 연구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전문가 위주 자립생활지원 조직… 의료모델로 돌아가는 엉터리”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 모형개발 연구가 진행됐다.

가칭 ‘라이프 디자인 센터’로 이름 붙여져,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지원, 권익옹호, 동료상담 사업 등을 수행하도록 포함됐다.

그런데 연구에 담긴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 모형개발안(이하 모형개발안)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 등이 ‘엉터리’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인력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 당사자는 동료상담에만 배정했을 뿐 센터장과 팀장 등에는 전문가를 배치하는 인력구조를 갖고 있어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의미가 결여됐다.”는 주장이다.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가 공개한 조직구성원 자격요건을 보면, 모형개발안에서는 센터장 자격요건을 ‘중증정신질환자가 있는 정신보건영역에서의 경력이 있는 자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보유한자’로 정하고 있다. 팀장 자격요건은 ‘사회복지학, 심리학, 정신과 재활의학 또는 임상분야에서의 석사학위와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성인중증정신질환자가 있는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3년 이상 있는 자’, 직업 전문가 자격요건은 ‘고용서비스를 제공한 경험이 1년 있는 자’로 명시하고 있다.

동료 상담가에만 ‘현재 또는 이전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로써 정신건강서비스의 수혜를 받은 적이 있는 자’, ‘회복과정에 있는 자’, ‘건강 및 회복 중재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로 명시해, 사실상 당사자의 참여를 열어둔 셈 아니냐는 것.

기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경우 센터장에 해당하는 소장은 장애인 당사자만 가능하게 하고, 관련 실무 또는 활동경력을 요구하고 있는 점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이와 관련해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신석철 소장은 “서울시 측은 연구결과를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당장 내년에 서울시가 정신질환자를 위한 자립생활지원센터 2곳 설치를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 인력 구성이 연구 내용대로 반영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연구 내용을 보면 조직의 이름을 라이프 디자인 센터로 붙이고 있는데, 어떻게 남의 인생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며 “자립생활센터의 이용자와 동료활동가는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존중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는 모형개발안을 폐기하고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 역시 “우리사회는 정신장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정신장애인을 자립하지 못하게 하고, 재입원시키거나, 지역사회에 방치했다.”며 “모형개발안의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용구 활동가는 “조직구성원 자격 요건으로 전문가 강요는 전문가가 당사자를 지배하는 의료적 모델의 잔재.”라며 “감금과 장기입원을 양산한 의료모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립생활센터는 당사자의 관점에서 당사자를 위한 서비스 계획과 개발을 하는 장점이 있고, 당사자에게 최대한 많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들은 ▲제대로 된 자립생활지원 모형 개발 ▲당사자 입장을 반영해 연구용역 이행 ▲당사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 개발 등을 요구했다.

특히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심이 된 자립생활운동 의미가 강조되기도 했다.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정식 소장은 “20여 년 전 장애인자립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초창기에는 장애인 당사자는 몇 명 없이 전문가 위주였다. 전문가들을 존중하지만, 그들이 장애인 당사자 삶의 목소리를 대리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후 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면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와 싸우면서 사회를 변화시켰다. 승강기와 같은 편의시설이 만들어졌고,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스스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권익옹호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지영 활동가 역시 “과거 장애인은 재활의 대상, 치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주체가 돼 싸워왔고, 변화했다.”며 “정부나 지자체, 연구기관들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 등은 공동성명서를 서울시 장애인분야 안진환 명예시장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