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발표에 수어통역 없어… 지적 나오자 4일부터 ‘개선’
청각장애인 위한 수어통역과 정보제공 요구…수어교육 개선·확대 함께 이뤄져야

4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수어와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4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청와대 앞에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4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요구서를 전달했다.

지난 2015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한국수화언어법이, 2016년 2월 3일 정부에서 공포됨으로 대한민국 법률이 됐다.

제정 4주년을 맞은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건의 기반을 마련해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브리핑이나 공공기관 정보제공에서 수어통역은 여전히 외면 받고 있고,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정부의 발표에는 수어통역이 배치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지적이 나오자 뒤늦게 정부는 4일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브리핑부터 수어통역을 제공했다. 

이에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은 4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4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요구서를 전달했다. 요구서에는 ▲농교육의 전면적 개선 ▲일상에서 수어통역권 확대 ▲공공문서 등 공공정보의 수어정보 제공 ▲일반학교 수어과목 도입 제도화 ▲청와대 브리핑 현장 수어통역사 배치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전문서비스 시행 등이 담겼다.

여전히 뒷전인 수어… 공공정보 수어통역 서비스 확대 필요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정보 제공이다. 수어통역을 통한 정보제공이 필요하지만, 정부조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자 지난해 9월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 14인이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국회 의사중계와 입법 활동 중계 시 한국수어·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제공하고, 장애인 회의 방청과 관련해 점자안내서, 자막 등 편의제공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추혜선 국회의원실을 통해 주요 정책 등을 브리핑할 때 수어통역사를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 정책 발표 시 현장 수어 동시통역을 지원하고, 수어통역사 배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사후에 수어통역 영상을 제작해 24시간 안에 정책 브리핑 누리집에 제공하는 등 수어통역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는 등 수어통역을 통한 정보제공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한 발표는 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장애벽허물기는 “올해 설날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서 수어통역이 없는 등 수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며 “공공정보에 대한 접근·이용에서 수어통역이 부족하고, 수어를 통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제공에서 국무총리실이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관련 안내 동영상이나 정부브리핑 등에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전문인의 양성이나 지원 등 현재로서 너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수어도 동등한 국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서비스 마련해야”

4일 청와대 앞에 모인 장애계 단체들은 수어통역을 통한 정보제공 확대와 개선을 촉구했다.

발언 중인 동서울자립센터 오병철 소장
발언 중인 동서울자립센터 오병철 소장

동서울자립센터 오병철 소장은 “실제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현장을 살펴보면 수어로 소통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과 소통하는 것에는 아직까지 어려움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이어 “청각장애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보 제공이 당연히 이뤄져야하는데, 언론매체와 정부브리핑 등을 살펴보면 이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장애인연맹 조태홍 실장은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UN장애인권리협약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에게 정보제공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말했다.

이어 “우리의 현실이 해당 보고서처럼 이뤄지고 있다면, 이 자리에 나와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4년 전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됐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법 이행을 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를 위해 “정부브리핑이나 공공정보 제공에 있어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출범 당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하겠다는 포부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의 농교육 현실도 함께 지적됐다.

발언 중인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
발언 중인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2006년 국제권리협약과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통해 농인들의 차별해소에 기여한 부분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중복장애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김 활동가는 “농학교에 중복장애 학생이 함께 수업을 받는 비중이 늘고 있지만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통합교육에서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며 “수어를 중심으로 농교사를 투입한 교육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통합학교 특수교사의 수어강의 자격 이수제도를 도입하는 등 교육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면적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비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어소통 교육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초등학교 체험교과로 도입하고, 중·고등학교 선택교과로 지정하는 등 수어과목을 운영하고 관련 지침을 마련하는 것을 통해 의무교육 과정에 수어통역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장애벽허물기는 관련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더불어 장애벽허물기는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농교육 시스템 구축을 위해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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