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에 중앙선관위 진정… “일방적인 지침 삭제로 발달장애 참정권 침해” 주장
“발달장애인 참정권 외면한 선관위는 사과하고, 필요한 편의제공 지침 마련하라”

14일 장애계 단체들은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보조를 받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 12인과 함께 중앙선관위를 피진정인으로 하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차별’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14일 장애계 단체들은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보조를 받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 12인과 함께 중앙선관위를 피진정인으로 하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차별’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저는 손이 불편합니다. 엄마가 기표소에 들어와 도와준다고 하니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고, 참관인과 의논한다면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투표 도움을 부탁할 때 바로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소중한 한 표가 무효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발달장애인 당사자 김OO 씨 발언 중

지난 11일 사전투표소를 찾았던 발달장애인 당사자 김OO씨. 손의 움직임이 불편한 김 씨는 기표소 안에 어머니가 함께 들어가 투표보조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정한 지침에서 발달장애인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부터 5년간은 선거지침에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 유형에 포함돼 있었지만, 올해 지침은 발달장애인을 제외했다. 해당 이유로 선거관리 담당자들이 발달장애인과 동행한 보호자의 투표보조를 가로막았다.

그 결과 김 씨는 혼자 투표를 진행했고, 본인이 선택한 후보의 기표란에 정확히 기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6년 선거지침 ‘발달장애도 투표보조 받을 수 있어’… 올해 지침에선 ‘삭제’

공직선거법 제157조6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반면 발달장애인의 경우 이동이나 손사용에 어려움이 없어 지원이 필요한 신체장애의 분류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계 단체들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정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투표소 안에서의 투표지원’을 요구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를 받아들여 2016년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5년간 선거지침에서 시각 또는 신체장애 외에 ‘발달장애(지적, 자폐)’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포함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 21대 총선 선거지침에서 기존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내용이 삭제됐다. 이로 인해 사전투표 기간 투표에 참여하고자 했던 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투표권이 사표가 되고, 권리가 박탈당하는 사태가 발생됐다.

이와 관련해 장추련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투표보조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대리 투표하는 상황이 발생해 제외시켰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장애계 단체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질의했지만, 분명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장추련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의 유형,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과 보급, 보조원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선관위는 올해 총선에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 유형을 규정하는 선거지침에서 발달장애 유형을 제외했다. 발달장애인이 투표과정에서 인적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해 참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을 든 참가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을 든 참가자.

장애계와 논의 ‘NO’ 일방적인 ‘발달장애 제외’… “참정권 마땅히 보장해야”

14일 장추련 등 장애계 단체는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보조를 받지 못한 김 씨를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 12명과 함께 중앙선관위를 피진정인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5년간 시행된 ‘투표보조 선거지침’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를 삭제하면서 참정권 차별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장추련은 “국민 모두에게 주어지는 평등한 참정권이 이번 21대 총선에서 유독 발달장애인에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차별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인권위의 강력한 시정권고가 필요하다.”며 진정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선관위의 책임 있는 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협의체 구성 ▲모든 필요한 편의제공 담은 지침 마련 ▲선관위 전 직원 대상 장애인인권교육 시행 등의 시정 권고를 요청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권리를 박탈한 것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장애계와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달장애 유형을 (투표보조 지침에서) 제외시켰고, 제외시킨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대응책 마련도 없었다. ”고 지적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상시적으로 투표를 교육하거나 공적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질타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시정 권고를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준우 공동대표는 “사전투표 과정에서 많은 발달장애인이 투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일 있을 본 투표에서는 얼마나 많은 장애인 차별이 발생할지 염려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지난 5년간 발달장애인들은 아무런 차별 없이 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바뀐 선거지침으로 인해 참정권이 짓밟히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며 “선관위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앞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투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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