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불가피하게 비밀선거원칙에 대한 예외 정하는 것 정당”… 재판관 3인 반대의견 “스스로 기표행위 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장애계 “장애인 참정권 침해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장애인차별금지추진 연대 등 장애계단체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공직선거법 심판청구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17년 선거 과정에서 저의 의사결정에 따라 활동지원사와 기표소에 입장하려 했지만, 선관위에 제지로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제기했고, 결국 기각 결정이 났습니다. 결과가 어떠하든 장애인도 국민에 한 사람입니다. 이번 일로 선거 과정이 바꿔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2020년 5월 27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공직선거법과 싸워온 중증 장애인 정명호 씨의 헌법소원 심판청구가 기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 씨는 당당한 목소리를 내며 장애인 참정권을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고, 계속해서 투쟁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명호 씨는 뇌병변장애인으로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고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2017년 5월 9일, 정씨는 현장 투표관리관에게 활동지원사 1명과 동반해 투표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현장 투표관리관은 공직선거법과 선관위 업무지침 상 가족이 아닌, 활동보조사 1명만을 동반해 투표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정 씨와 활동지원사의 출입을 제지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서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기표지원을 위해 가족의 경우만 1인 동반이 가능할 뿐, 그 외의 가족이 아닌 경우는 2명이 함께 기표지원을 하도록 돼있다.

투표관리관은 투표사무원 1명이 동행해 기표를 진행할 것을 이야기했지만, 정 씨는 생전 처음 본 사람과 투표를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이에 지난 2017년 8월 5일 정씨는 ‘희망을 만드는 법’을 법률대리인으로 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선관위는 규정에 따른다는 이유로 실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권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활동지원사 1인만 동반할 경우 기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선관위의 판단은 청구인의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 공직선거법과 싸워온 정명호 씨(왼쪽).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공직선거법과 싸워온 정명호 씨. (왼쪽).

약 3년의 기다림 끝에 27일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기각.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 대해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다만 이 결정에 대하여는 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의 선거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재판관 3인의 반대의견이 있다.”며 정씨의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이번 헌법소원에서 변호인단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우선 투표관리관이 현장에서 정 씨의 투표를 제지해 기본권 침해를 했다는 것. 또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 대해 선거 원칙 중 하나인 비밀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위헌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비밀선거의 원칙이 자유선거의 원칙을 보장하는 전제조건으로 기능하고 있고, 민주주의 아래에서 선거권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를 고려해, 심판대상조항과 같이 비밀선거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심판대상조항이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실질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표보조인의 부당한 영향을 방지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증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대리투표로 악용하는 선거범죄를 예방하면서 투표보조 제도보다 손쉽게 활용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심판대상조항이 불가피하게 비밀선거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에 대해 재판관 3인은 “선거권이 정치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을 고려해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투표 내용을 공개할 범위를 스스로 정하고 궁극적으로 스스로 기표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하므로,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투표 제지 행위에 대해서는 “제지행위에 대한 심판청구가 인용된다고 하더라도 제19대 대통령선거의 절차가 모두 끝나 청구인이 주장하는 이 사건 제지행위로 인한 기본권침해의 상태가 이미 종료되어 청구인의 권리구제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심판대상조항 등이 남아있는 한 기본권 침해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제지행위에 대한 심판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권리보호이익이 없고 심판청구의 이익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 계속해서 목소리 낼 것”

이날 선고 후 정씨와 변호인단, 장추련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장애인 참정권을 향한 지속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이번 결정에 대해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이 사건의 모든 원인은 중증 장애인이 혼자서 기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표보조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며 “따라서 선관위가 이를 보완해야한다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기각 결정을 내린 6명의 재판관 또한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며 “현행 공직선거법이 문제가 있다는 소견을 내비친 만큼, 분명히 해당 법 자체는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여전히 장애인들은 당연히 가져야할 권리를,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를 외면 받고 있다.”며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헌재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또한 “헌재는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법이 잘못됐다면 바꿔야 한다. 앞으로 몇 년이 가더라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박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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