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휠체어 리프트'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2심 ‘기각’
'위험천만 휠체어 리프트'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2심 ‘기각’
  • 박성용 기자
  • 승인 2020.06.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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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편의시설 미설치는 ‘차별’… 승강기 설치는 서울시 ‘재량’ 판단
장애계 “장애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 지속적인 투쟁 이어나갈 것”
10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지하철 역사 내 리프트 차별구제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하철에 있는 리프트를 이용하면 비장애인 이동시간에 비해 2~3배 이상 소요됩니다. 리프트 고장으로 네 곳의 정거장을 인도로 이동해 힘들게 지하철을 탄 적도 있습니다. 이동권은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권리입니다. ”
- 은평자립생활센터 이원정 활동가 발언 중

‘지하철 역사 내 리프트 차별구제 청구 소송’에 원고로 나선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원정 활동가는 이번 2심 판결을 앞두고 부푼 꿈을 안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소송 항소심 역시 기각 결정을 내리며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 2017년 10월 20일 휠체어 이용 장애인 故한경덕 씨가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계단 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한 씨는 의식을 잃고 98일간 긴 투병 끝에 2018년 1월 25일 사망했다. 오른손만 사용할 수 있었던 한씨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휠체어를 돌려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 했고, 그 순간 등지고 있던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신길역을 비롯한 지하철 1~8호선에 대한 관리감독자인 서울교통공사가 조치를 취하지 않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서울교통공사를 피진정인으로 하는 ‘지하철 역사 내 리프트로 인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 환승역인 영등포구청역·충무로역·신길역·디지털미디어시티역·구산역 5개 역의 휠체어 리프트를 제거하고,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사고가 발생한 신길역은 지난 2월 28일 경사형 승강기가 새롭게 설치됐다.

신길역 경사형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故한경덕 님 추모동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신길역 경사형 승강기 앞에 설치된 故한경덕 님 추모동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당한 이동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 승강기 설치는 서울시 ‘재량’

앞서 1심 재판부는 장애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6월 14일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 13부(최병률 부장판사)는 장애인 당사자 5명이 제기한 장애인 차별 구제 청구를 기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상 서울교통공사의 리프트 시설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차별행위이다.”고 정당한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못한 서울교통공사에 대해서 지적했다.

다만 “그러나 현재 서울교통공사와 서울특별시장이 전문업자에게 이미 승강기 설치에 관한 기본 및 실시 설계 용역을 도급하였고 이를 모두 대외에 공포하였기에 차별을 개선하게끔 맡기는게 공익차원에 적합함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적극적 조치 이행은 명하지 않기로 한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원고측은 항소를 제기했지만, 10일 2심 재판부는 또 다시 기각을 결정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 민사37부(권순형 부장판사)는 1심과 동일하게 장애인 차별 구제 청구를 기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승강기를 설치하지 않은 것을 차별이라고 인정했지만, 이는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의 재량이라는 취지다. 

변하지 않은 법원 판결에 ‘한숨’… “우리의 정당한 이동권 보장받아야”

선고 현장에 함께 한 장추련과 원고들은 서울고법 앞에서 깊은 한숨과 허탈함을 드러내는 한편, 상고 여부는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사단법인 두루 이상현 변호사.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사단법인 두루 이상현 변호사는 재판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 변호사는 “1심과 동일하게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교통공사가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말하고 있고, 어떻게 설치할지는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소송을 통해 사고가 발생한 신길역에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는 등 분명한 성과는 있었다. 문제는 법원이다. 법원은 지난 1심과 변한 것이 없다.”며 “우리가 소송을 진행한 취지는 장애인의 차별은 있어선 안 되고, 마땅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장추련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법원은 해당 사안이 차별인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시정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는 법원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을 포기한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어 “우리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당연한 권리로써 보장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하지만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판단해야할 법원마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라고 토로하며 “지금의 판결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박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