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편의점에 장애인 접근성 확보해야”

공중이용시설의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측 손을 들었다. 소규모 편의점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그 기한도 명시했다.

다만 위법·위헌적 시행령에 대한 대한민국 책임이 인정되지는 않았다.

앞서 장애계는 2018년 4월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해야 하는 생활편의시설임에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접근조차 되지 않는다’며 휠체어를 이용한 장애인 당사자 등을 원고로 편의시설을 설치하라는 적극적 조치명령을 구하는 취지의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당초 GS리테일·호텔신라·투썸플레이스·대한민국을 피고로 제기된 소송에서 호텔신라는 장애인 객실 설치를, 투썸플레이스는 직영점에 편의시설 설치를 약속하면서 2020년 2월 강제조정이 성립됐다.

이후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GS25와 대한민국과 지난해 1월 본안소송이 시작, 지난 10일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 “300㎡ 바닥 면적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 제외… 평등원칙에 반해 무효”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지난 10일 장애인 당사자 등을 원고로 장애계 단체와 공익변호사들이 함께 제기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GS리테일에게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직영 편의점 중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중축·개축한 시설에 대해 장애인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와 출입문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만약 이러한 편의시설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객관적으로 현저히 불가능한 경우 이동식 경사로를 구비하여 두거나, 호출벨을 설치해 직원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게 하는 구매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했다.

또한 가맹점에 대해서는 직영점과 같은 영업표준안을 마련해 환경개선을 권고하고, 비용 중 20퍼센트 이상을 GS리테일에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바닥 면적이 300㎡ 미만인 소매점과 일반음식점 등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부분의 민간 공중이용시설을 대상 시설에서 제외한 것.”이라며 “이 시행령은 장애인 등이 모든 생활영역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법률의 위임 범위를 일탈했고, 행복추구권과 행동자유권을 침해했으며 평등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설명했다.

‘300㎡’ 숫자에 갇혀 편의시설 설치 외면… “1층이 있는 삶 실현하는 첫 단추 되길”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나왔듯 법 시행령이다.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 15조와 18조에서는 장애인이 재화와 용역 등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거나, 해당 시설물을 접근·이용함에 있어 편의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차별행위로 담고 있다.

하지만 편의제공 의무에는 300㎡라는 기준이 있다. 시설물 관련 편의제공 의무를 담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바닥면적 기준 300㎡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해주고 있는 것.

장애계에 따르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식당과 편의점 등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90%가 장애인 출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해당 규정을 근거로 시설들은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고 외면하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로 등의 무단점유가 되거나 임차해 운영하는 점포를 이유로 현실적으로 경사로 등의 설치가 어려워 ‘차별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주장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에 장애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소송에 참여한 단체들로 구성된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이용 및 접근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심 판결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여는 한편 성명을 통해 입장을 정리했다.

대책위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평등한 공간, 1층이 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되는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위법·위헌적 시행령에 대한 대한민국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을 구체적이었고, 장애계는 아쉬움이 있지만 의미 있기에,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대책위는 “그동안 법원의 장애인차별 구제조치에 있어서 매우 추상적인 판결이 많아 실제 차별을 받은 장애인의 권리가 구제되기는 어려워 여전히 차별이 반복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었다.”며 “이번 판결은 유예기간을 두었을 뿐 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편의점의 직영점뿐만 아니라 가맹점까지 편의시설 설치를 확대했기에 장애인 차별구제 조치에서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한 일률적 예외 규정이 위법·위헌적이라고 명확하게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이들은 나아가 300㎡ 예외 기준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이 기준과 관련해 50㎡로 개정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70%에 육박하는 공중이용시설은 여전히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장애계 입장이다.

이에 대책위는 “대한민국은 현행 제도에 대한 반성적 고려를 담은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해, 바닥면적 예외기준을 50㎡로 변경하는 기만적인 내용의 개정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며 “위법·위헌적인 바닥면적 예외기준을 전면 폐지하고 국가가 장애인등의 편의시설을 책임 있게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정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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