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장애대학생 캠퍼스 도우미 제도
올해 2,600인 배치… 학교측 책임 부족으로 학생간 갈등 소지 열려 있어
올해 대학에 입학한 우소라(20·서울대 동양화 1) 씨는 매일 학교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청각장애인인 우 씨의 곁에 학교 선배인 권세혁(26·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 씨가 속기 통역을 지원하며 그녀의 귀가 돼주기 때문이다. 권 씨는 우 씨와 함께 수업에 들어가 교수의 말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노트북에 기록한다.
우 씨는 “‘장애학생 캠퍼스 도우미’ 제도를 통해 권 씨가 교수님들의 수업 내용을 적고, 혼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과제나 시험들까지도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권 씨 또한 8년여 간 장애대학생을 위한 캠퍼스 도우미를 계속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권 씨는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며 장애학생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봉사장학금도 나오기 때문에 후배들에게도 도우미로 활동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지체장애인 김찬기(22·서울대 경제 3) 씨 또한 캠퍼스 도우미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김 씨의 이동을 돕는 것은 같은 학교 재학생 고상우(25·서울대 농경제사회학 4) 씨의 몫이다.
김 씨는 “캠퍼스 도우미는 근로봉사장학생으로, 활동비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도우미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부탁하기 더 쉬운 측면이 있다.”며 “이 제도를 졸업 때까지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애학생 ‘지원’이 아닌 ‘투자’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이렇듯 잘만 활용하면 장애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애대학생 캠퍼스 도우미 지원 사업’이 ‘양날의 검’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모두 제도를 통해 서로가 공감대를 이루면서 상당한 만족도를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이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
'장애대학생 도우미 지원 사업'은 지난 2005년부터 ▲장애학생의 학습 편의 제공 등을 통한 학습 여건 개선 등 장애인의 고등 교육 기회 확대 ▲장애인의 고등교육 지원 확대를 통한 우수한 인력 양성을 목표로, 교육부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한국복지대학교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일반 도우미 △전문 도우미 △원격교육 지원도우미 등을 장애학생에 지원하며, 강의·보고서·시험 대필 등의 교수학습을 지원하는 일반 도우미의 경우 도우미 활동 40시간 기준으로 월 26만 원 정도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주로 재학 중인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선발한다.
전문 도우미는 수화통역사·속기사·점역사·언어자료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 또는 대학의 판단 하에 도우미 특별경력 학생, 700타수 이상의 교육용 속기가 가능한 학생 등에 의해 교수학습을 지원하는데, 도우미 활동에 근거해 연 1,000만 원 정도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원격교육지원 전문 도우미는 인터넷 원격지원 체계를 통해 실시간 강의내용을 수화통역 및 문자 통역으로 지원하며, 지난 2011년부터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전담해 주관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올해 종전 고등교육법 제2조의 각급 학교에서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른 각급 학교(지난해 대학정보공시를 한 대학 기준)까지 사업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48억9,300만 원의 국비를 투입해 전년에 비해 100인이 늘어난 맞춤형 캠퍼스 도우미 2,600인을 장애대학생에게 확대·배치한다.
하지만 이렇게 도우미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실제 대학을 다니는 장애학생은 도우미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장애대학생 8,012인 가운데 캠퍼스 도우미는 전체의 30% 수준인 2,600인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재 청각장애가 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화통역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대학은 강남대학교·나사렛대학교·대구대학교·국립한국복지대학교·서울신학대학교로 4곳뿐이며, 속기통역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대학은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국립한국복지대학교·대구대학교 등 총 4곳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장애대학생에 대한 인식 및 교육환경이 과거에 비해 좋아지고 있으나 장애대학생이 적은 학교에서는 여전히 관심 및 지원이 부족하고, 실제 운영 측면에서도 미흡한 것이다.
장애대학생에 대한 지원이 미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30조 및 시행령’ 제31조에 근거해 학교 내 장애학생 10인 이상 재학 시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치·운영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일부 대학의 경우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서면회의 등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전담인력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아울러, 지어진 지 오래된 대학 건물일 경우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장애인 편의시설 또한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김 씨는 “편의시설과 도우미는 상호 보완이 되는 기능.”이라며 “경사로가 있으면 굳이 계단에서 휠체어를 들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편의시설이 학교에 제대로 잘 갖춰져 있으면 도우미가 장애학생을 돕는 데 있어서도 훨씬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은 대학이 장애학생에 대한 생각을 ‘지원’에서 ‘투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교문을 바꾸는 것은 학교에 대한 투자로 생각해 아무리 큰 금액과 시간이 든다고 해도 후딱 하는 반면, 그보다 적은 금액이 들어가는 경사로 설치는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장애대학생 캠퍼스 도우미 제도’는 도우미를 대상자가 직접 고용하는 형식이 아닌 만큼 장애학생-도우미 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장애학생과 도우미 간의 갈등 유형은 ▲장애학생의 도우미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 ▲도우미 학생의 낮은 서비스 수준 ▲소통부재로 인한 갈등 ▲안전사고 등 외부요인에 의한 갈등과 같은 불안요소 등으로 들 수 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학생을 위한 기반과 서비스를 모두 구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캠퍼스 도우미 제도 자체는 존재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이 서비스의 핵심 주체로서 요소 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장애학생을 위한 제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학생은 도우미 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학교에서는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장애학생과 도우미 간 갈등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학교마다 제각각인 규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