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을지로3가에 자리 잡은 송림제화는 창립자인 이귀석 옹이 1936년에 문을 연 이래 지금의 이덕해 사장(55)을 거쳐 그 아들까지 71년 동안 3대가 가업을 일궈 온 수제화 명가다. 수제화에 대한 이 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는 “지금은 두서너 공정만 손으로 제작 하고는 수제화라고 떠벌리기 일쑤지만 우리는 20여 공정을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일일이 매만져 만든 진짜 수제화다”라고 말했다.사실 송림제화는 60년대 초 창립자인 이귀석 옹이 국내 최초로 국산 등산화를 만들면서 산악인 허영호 씨,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이 단골일 정도로 수제 등산화로 이름이 더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송림제화의 존재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또 하나의 가치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가치는 바로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했을 뿐인데 넘치는 상을 받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이 상은 제가 받는 것이 아니라, 제 옆에서 힘이 돼 준 모든 분들의 몫입니다.”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김선태 목사의 막사이사이상 수상기념 환영연’에서 김 목사는 위와 같이 소감을 밝혔다.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는 김 목사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을 기념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김 목사는 지난 8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지난 30여 년간 장애인 재활복지사업을 펼쳤던 그는 현재 실로암 안과병원의 원장으로, 무료 개안수술과 각종 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환영연에는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 서울복지재단 이성규 대표 등 많은 장애계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네요.” 올해 노인의 날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정운태(76)씨가 남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동기는 ‘그냥 자연스럽게’였다.정씨는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에 청소년 선도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1955년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지도한 것이 이어졌다.졸업 후 정씨는 청소년 기술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라지만 한국전쟁직후 기반이 없던 시대였기에 작은 창고를 빌린 정도였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이발기술, 장갑 짜는 기술 등 실용 기술을 가르쳐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그는 “힘들기도 했지만 어려운 때였기에 모두가 더욱 한 뜻이 될 수 있었다”며 “아이들이 자립해서 각자의 길을 찾아갈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비추고 싶다는 부부가수 ‘해와 달’.그룹사운드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한 이들은, 컴퓨터 음악보다는 자연적인 음악이 좋아 재즈카페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부산방송의 한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해 많은 부부들에게 호응 받은 것을 계기로 가수활동을 하기로 다짐했다. 이들이 해와 달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올해 8년째다.3년 전 일산에서 ‘사랑나눔축복콘서트’를 처음 열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랑나눔축복콘서트를 하고 있다.거리공연을 하는 해와 달은 무거운 장비들을 직접 싣고 나르기 때문에 힘이 든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꼼꼼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한번도 대충 넘기는 법이 없다.“처음 남편의 뜻에 반대를 많이 했어요. 시작을 하면
“천천히 기어 다니는 애벌레도 반드시 아름다운 나비가 돼서 날아가죠? 우리 여성들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전국에 지부를 두고 1만 명이 훌쩍 넘는 회원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의 허혜숙 회장이 의지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인이 된 허 회장은 많은 여성 장애인들이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도록 열성을 다해 활동하고 있다.‘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은 장애여성들이 경제적 자립 기반을 구축해 빈곤을 탈피하는 동시에 역량을 강화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지난 2004년 설립된 단체다.허 회장은 여성장애인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주체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설립했다. 두려움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을 찾아가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다.바로 목욕봉사 동아리 ‘비누방울’의 회원들이다. 비누방울은 인연맺기운동본부 소속의 대학생 동아리다. 70여명의 회원들은 각각 조를 이뤄 매주 토요일마다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9명의 노인, 장애인과 인연을 맺고 봉사 하고 있다.목욕봉사는 그 특성상 봉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벗은 몸을 보여줘야 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믿고 몸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회원들은 모두 목욕봉사를 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회를 거듭 하며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이제는 노인과 장애인들이 목욕을 할 때 불편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표현할 정도로 편한
두 손은 캠코더를 작동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두 눈은 캠코더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좆는다.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주최한 ‘어르신 UCC공모전’에서 ‘IT강국 내가 만든다’는 주제로 우수상을 수상한 신현우(69)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캠코더를 다룬다. 신 할아버지는 촬영, 편집, 내레이션까지 직접 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멀티미디어 선두주자다.신 할아버지의 UCC제작은 아들이 취미삼아 해보라고 준 캠코더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손자의 모습부터 시작해 친구들과의 여행모습 등 점차 다양한 것들을 담았지만 흔들리거나 잘못 찍은 것을 삭제할 줄 몰라 완전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편집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신 할아버지는 편집 관련 책을 구입해 꼼꼼히
“부족한 저에게 이런 뜻 깊은 상을 주셔서 정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잘 하라고 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주위 분들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베풀면서 살겠습니다.”지난 3일 2007 서울사회복지대회에서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은 가수 현숙씨. 베풀고 나누는 것이 생활이 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현숙씨는 2003년 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구로구에 있는 한 복지관을 방문했을 때 이동목욕차량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1년에 한 번 목욕시켜드리는 것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부모님이 병중에 계셨잖아요. 목욕시켜드리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저보다는 부모님이 더 힘드셨을 거예요. 어디가 시원하고 어디가 불편하다고 표현을 잘 못하시니까.
"우리집 소스는 100% 야채로 만들어요. 그러니 종합비타민이지." 경기도 성남과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할아버지 돈가스'는 강예수(82) 할아버지의 돈가스 사랑으로 정평이 나있다.강 할아버지만의 돈가스 개발은 1993년 일본에서 돈가스를 맛본 후 시작됐다. 그 곳의 소스 맛을 본 후 맛을 잊을 수 없었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천연재료를 사용한 건강소스를 만들었다.천연 돈가스 소스를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끈기와 용기로 마침내 원하던 맛을 찾았고, 보건연구원에서 인공색소나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다는 증명을 받았다. 강 할아버지는 이렇게 개발한 소스로 지금까지 손님들을 위해 정직하고 건강한 음식을 준비해왔다.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인 집에서 양자로 자란 그는 스무 살이
“축하드려요”지난 3일 ‘2007 서울사회복지대회’에서 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오명원(여, 45)씨. 그녀는 중증뇌성마비장애인이다. 현재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의 사회재활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대학생 때 시작한 자원봉사 일이 재밌어 계속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그녀는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신학부와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 입사했다. 그때 당시 서울시에 위치한 특수학교는 3개뿐이었고, 부모의 무지 및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뇌성마비장애인들이 많았다. 그녀는 뇌성마비장애인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오뚜기글방’을 개설했다. 야학식으로 운영돼 학생 수는 적었지만, 자원봉사를 청한 대학생은 무려 40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홍성현(58)씨는 50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봉사를 하게 된 계기’라는 질문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홍씨는 지난 6월부터 서울북부시립병원(이하 시립병원)의 노인환자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젊은 시절 그는 미대 석사과정을 마친 후 교사생활과 화실운영을 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그는 민주화를 위해 서울에서 소위 ‘넥타이부대’에 참여하며 안정적인 삶을 포기했다. 그 이후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해온 홍씨의 삶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노인 초상화 봉사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미술교육과 노인들에게 미술치료 봉사도 하고 있다.젊은 시절 사회변혁운동을 하며 화실운영까지 그만둬 홍씨의 경제적 생활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노점상과 막노
지난 2005년 1월 텔레비전에 장애인들이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에 오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중 유난히 눈이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조그만 체구에 가누기 힘든 몸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산에 올라 산상결혼식을 올리기 까지 해 화제가 됐던 그가 또 다른 기적을 보여줬다. 기적의 주인공은 윤선아(장애1급. 28)씨.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서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그가 임신에 성공했다. 윤씨는 지난 17일 오전 방송된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해 두 번의 시험관 아기 시술 끝에 임신에 성공, 현재 임신 5주차이며 내년 봄 출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씨는 키 120cm, 35kg의 몸무게에서 성장이 멈춰 체구가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무지고 예
서울의 도심온도를 1℃ 낮추기 위해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광장에 ‘에코터널’이 설치된다.‘에코터널’은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콘크리트 도시를 생태적이며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복원하고자 친환경소재를 활용하여 인공적으로 제작한 이동식 인공녹화터널이다.에코터널은 가로 7.2미터, 세로 2미터, 높이 3미터 크기로 목재 구조물을 세운 후 잔디와 나무, 담쟁이 넝쿨과 대나무 등을 이용하여 설치된다.에코터널은 콘크리트 도심에 녹색의 휴식공간과 그늘을 제공함으로써 서울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무더위를 피할 수 있고 녹지의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10대 시민실천사항인 ‘5down5up’을 홍보․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5down5up은 서울온도 1℃
“나이는 제일 많지만 가장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사람이지. 본받아야 할 점이 아주 많아” 서울 노원구 번창운수의 이만옥(59)씨는 이 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이형기 할아버지(75)는 버스운전기사만 50년째 해오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지난 6월 대한은퇴자협회가 선정한 ‘히어로 어워즈(HERO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히 살아가는 70대 이상 노인에게 주어진다.새벽 5시면 이 할아버지의 하루는 시작된다. 첫 차의 손님들에게 “어서오세요”라며 건네는 인사는 손님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든다. 말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항상 손님을 대한다. 자신의 버스에 오르는 손님들을 가장 예의를 갖춘 모습으
두 다리 대신 두개의 휠체어 바퀴에 온 몸을 실어 세상 누구보다 열정적인 춤을 선사한다. ‘장애인은 춤을 출 수 없다’는 편견과 맞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한국 최초의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36,지체장애2급)씨가 그 주인공이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장차 무역업에 종사해 세계를 주름잡는 경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김용우씨. 그러나 지난 97년, 유학도중 자동차 사고로 인해 하반신 불완전 마비가 됐다.장애인이 됐다는 좌절감에 빠지고 마땅한 직업조차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춤’을 권유했다. 장애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며...그러나 전문 댄서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의 인생에 작은 위안을 삼기 위해 배우게 된 춤은 그
‘중매를 잘 서면 술이 석잔, 잘못서면 뺨이 석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연을 맺어주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50년 동안 중매를 하며 노하우를 익힌 권일성(80)씨 앞에서는 그런 말이 무색하다. 선남선녀들의 만남부터 결혼까지 책임지며 1,000여 쌍의 커플을 성사시킨 권 씨는 날카로운 눈썰미로 인연이 될 사람들을 정확하게 파악한다.권 씨는 젊은 시절 고향 경북 영덕군 영해에서 농민을 상대로 농약과 씨앗을 파는 장사를 했다. 물건값을 받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던 권 씨에게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자식들 중매를 부탁해왔다. “처음에는 나를 믿고 부탁하는 손님들이 고마워 오고가는 정으로 주선했지”라고 말하는 권 씨의 중매는 이제 평생직업이 돼버렸다.사무실에는 권 씨가 그동안 기록해온 정리노트
오영수씨(64)는 40년 동안 무대에서 인생을 보내온 베테랑 연극배우다. 젊은 시절 관객입장에서 관심 있게 보던 게 좋아져 시작한 연극이, 어느덧 오 씨 인생의 황혼기와 함께하고 있다.오 씨는 ‘늙은 부부이야기’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연극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학로에서 ‘실버연극’으로 통하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이만희 작. 위성신 연출)에서 바람끼 많은 자룡의 역할을 열연했다. 이 연극은 60대의 출연 배우들이 노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실버 연극이다 보니 관객층 역시 4,50대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모들의 생각과 삶의 과정을 연극을 통해 보며, 가정에 대해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찾는 20대의 젊은이들도 많다. 오 씨는 “나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나의 눈이 되어 준 안내견 탄실이’ 등 많은 작품을 낸 고정욱 작가(46)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그는 의대를 가려고 했으나 좌절을 맛봤고, 문과에 눈을 돌린 것을 계기로 작가가 됐다.1992년 모더니즘 계열의 실험소설로 문학계에 등단했으나, 결혼 후 아빠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보면서 지나온 자신의 어린시절도 떠올랐고, 명색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장애인이 장애인을 소재로 한 글을 썼기에 편견도 많다.‘우리아이들에게 나의 장애는 문제되지 않겠지’하고 생각했던 고정욱 작가는 아이에게서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하루는 큰아들에게 “아빠가 장애인이라고 뭐라고 하는 애들 없어?”하고 묻
“고생스러운 것을 몰랐어.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지”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5년 동안 젓갈장사를 하며 꾸준한 선행을 펼쳐 ‘젓갈할머니’로 유명해진 류양선(75)할머니의 눈에 생기가 넘친다.류 할머니는 지난 1983년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젓갈을 팔아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과 책을 기부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고향인 서산시에 멸치젓갈 720kg(시가 100만원 상당)을 보내 복지원과 노인요양원 등 8곳에 전달되기도 했다.류 할머니의 선행은 할머니의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됐다. 류 할머니의 어머니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건넬 정도로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을 실천해온 분이셨다. 이런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
지난 2000년 11월, 서울의 어느 곳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의 우측면과 충돌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 오토바이의 운전자는 30대 남성으로 뇌출혈과 다리, 어깨골절의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였다. 수술을 받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결국 ‘하반신 장애’라는 무거운 진단을 받는다.그러나 절망을 딛고 일어나 지난 2005년, 그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서 휠체어와 함께 춤을 춘다. 그는 바로 ‘쿵따리 샤바라’로 데뷔 하자마자 가요계 최고의 그룹으로 자리 잡은 클론의 멤버 ‘강원래’였다.강원래씨는 흉추 3번 척수신경이 손상되면서 가슴 아래부터는 움직일 수 없게 됐고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휠체어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그러나 그는 댄스가수였다. 강씨는 ‘이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