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영웅으로 알려진 한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철도원’으로 불리는 김행균(47세ㆍ지체3급) 씨. 한국철도공사 부개역 역무과장인 김 씨는 지난 2003년 여름 한 아이를 구하고, 선로에 떨어져 자신은 두 다리를 잃었다. 순간의 선택이었다. 아이의 생명과 자신의 두 다리를 바꾼 김행균 씨. 당시의 심정이 궁금했다.“1초는 생각해보면 정말 긴 시간입니다. 뛰어내리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죠. 그냥 보자마자 막아야겠다고 생각했고, 행동으로 바로 옮기게 됐습니다.”그는 무언가를 위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로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인간적 본능에 의해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의 선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살신성인, 영웅, 아름다운 철도원 등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
그녀에겐 음악이 전부다. 시각장애인 이소영(26세) 씨. 한국종합예술학교 장학생인 소영 씨는 작곡, 지휘, 피아노, 성악 등 음악 안에서만큼은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다. “처음에 작곡으로 신학대학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학교 방침이 음악보다 신학 쪽에 기울어서 그만뒀어요. 이후 한국종합예술학교 합창지휘과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됐고, 원했던 길을 걸을 수 있었죠. 얼마 전에는 교수님의 권유로 성악으로 전과해서 배움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선천성 백내장으로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이소영 씨. 세 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장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쪽 눈에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시력으로 세상과 마주해야만 했고, 사람들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다. 한번은 폭력(?)을
누구나 일생을 사는 동안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업이 있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같은 맑은 미소를 지닌 채 아이들과 2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사람. 구립 해다미 어린이집 김미령 원장과 함께했다.대학졸업 즈음 처음 실습을 나간 어린이 집의 원장님이 ‘넌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고 한 조언이 가슴속에 각인되면서 지금까지 아동교육자의 외길을 걷게 되었다는 김 원장. 김 원장은 지금도 수업중인 교실을 살짝 들러보러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자신의 품으로 달겨 들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처음 부임했던 어린이집은 비닐하우스 촌이었는데 아이들의 형편이 아주 안좋아 가진 것은 무엇이 됐든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다는 김 원장.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
일하는 장애여성 사진전 현장에서 사진작가 김상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사진전에 전시된 총 43점의 작품 하나하나 손수 빚어낸 장본인인 김 씨. 그 역시 젊은 날 기계 사고로 조막손을 갖게 된 장애인이다. 수많은 장애인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번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는 기회는 이제껏 없었다는 김상기 씨. 김 씨는 “장애인들의 경우 비장애인에 비해 사진 찍기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수줍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며 “예쁘게 찍어달라는 말을 하면서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장애여성들을 통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장애인들이 사회에 요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김 씨는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역설했다. 김상기 씨는 “밝은 생각과 미소
지난 2004년 11월 한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선풍기 아줌마’ 한미옥(45) 씨. 실리콘, 파라핀, 콩기름 주입 등 불법성형시술로 보통 사람의 세 배 이상 부풀어져 버린 그녀의 얼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대 때 가수 활동을 하던 당시 한 씨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미옥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가수에 데뷔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한 씨는 작곡가 남석현 씨의 도움으로 음반을 내고 가수 활동에 나섰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각종 공연에 불려 다니며 돈도 많이 벌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녔지만 각진 턱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한 씨. 친구와 함께 성형외과를 찾았다가 볼에 파라핀을
1980년대 천재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던 송율궁 씨. 그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탄다. 현대음악당을 지을 성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앵벌이로 착각한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송율궁 씨는 “사람들의 관심만 있다면 현대음악을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꼭 현대음악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곡을 발표하고, 연주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생후 100일, 목욕물에 경기를 일으켜 시각장애인이 된 송율궁 씨. 시력은 잃었으나 그가 가진 절대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말소리, 차 소리 등 갖가지 소리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던 소년. 공부는 하지 않고 오직 음악에만 몰두하던 그를 선생님은 못마땅해 했지만
동작구 대방동 주공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대방종합사회복지관은 다른 복지관에 비해 다소 시설이 후락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 은아 관장이 주인이 된 후 부터 복지관은 깨끗하게 단장되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쉼터가 되는 면모를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복지는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말 그대로 기분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환경이 청결해야하고 주민 복지를 일선에서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들도 단정한 외모로 책임감을 가지고 대민 지원활동을 해야 한다” 고 늘 말하는 정 관장.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면서부터 차근차근 최 일선에서부터 사회복지 전반의 실무를 터득해 온 정 관장의 사회복지 실천의 철학이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카리스마가 느껴질 만큼 자신의 신념을
종이 없이 점자를 쓸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PDA 브레일노트가 출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30일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주최로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브레일노트 시연회가 열렸다. 브레일노트는 뉴질랜드 시각장애인용 기기 전문업체 휴먼웨어와 한국 엑스비전 테크놀로지가 공동으로 출시한 제품으로, 언제 어디서나 점자디스플레이와 음성 출력을 사용해 시각장애인들이 모바일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기다. 사용자들은 일반 문서편집과 일정간리, 이메일 체크, 웹서핑 등을 이동 중에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또한 블루투스 기능으로 PC와 연동, 여러 가지 응용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다. 엑스비전 테크놀로지 송오용 대표이사는 “브레일노트는 한글, 영어, 한자, 특수문자까지 지원돼 자유로운 문서편집
김비 씨는 남자의 몸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에게 남자의 몸은 너무나 무거운 짐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녀는 트랜스젠더로서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김 씨는 “이전에는 몸이 바짝 마르고 아팠다. 무척이나 힘들었다”며 “성전환 수술 후 살이 찌고 건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했다. 정말 나에게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김비 씨. 하지만 김 씨가 처음부터 유명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고, 영어를 가르치는 평범한 한 개인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아니, 그녀 스스로 이 세상을 그냥 놔둘
결혼을 한 달 앞둔 꽃다운 신부.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불현듯 찾아온 것은 교통사고였다. 목 아래가 마비되는 장애를 얻어 1년 반을 병원에서 누워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입에 붓을 문 채 텅 빈 캔버스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구족화가 한미순(52) 씨. 1984년의 교통사고... 사랑도, 건강도 모든 것을 다 잃은 것만 같았던 그 순간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이리라.한 씨는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 또한 많다”며 “사고를 통해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를 깨달았고, 신앙에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도우미 없이는 물 한잔조차 마시기 힘든 한미순 씨지만 캔버스 앞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
그녀는 상록수를 닮았다. 모진 비바람, 눈보라마저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 알고 맞아들이는,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푸르른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 늘푸른나무를... 국내 농구계의 거목이자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획득의 주역이었던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김영희(44) 씨.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김 씨지만 1987년 반신마비 증세로 훈련 도중 쓰러진 이후 그녀의 삶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뇌종양 판정과 수술... 훈련포기와 은퇴... 농구선수라는 이름을 벗어던진 그녀에게 남은 것은 세간의 따가운 눈총과 비웃음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김 씨는 그 후 20여 년간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창 밖에 걸린 구름을 벗 삼고, 양주를 들이 마셔보기도 했지만 짙은 외로움만은 떨쳐낼 수 없었다.
제34회 사법고등고시 합격. 부산지방법원판사. 이회창 대통령 후보 여성특별보좌관. 그녀의 이력은 화려하다. 17대 국회의원 299명 중 여성 40명. 그 중 한 사람,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최근 한나라당 대변인까지, 그녀의 행보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정치를 하면서 실망과 좌절감도 많이 느꼈지만 어렵고 힘들 때마다 원칙으로 돌아가고자 했다는 그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라고 할까요? 대변인은 최전방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은 대화와 타협을 중요시 하는 부드러운 인간형에 가깝지만 제1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자리가 부드러운 것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외모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굵고 낮았다. 당의 입장을 잘 정리하
◐나는 전달자가 아닌 ‘해설자’지난 1965년 국립중앙기상대(현 기상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방송에 발을 내디딘 김동완 씨는 이후 30여년간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맹활약했다. 그가 등장하는 뉴스의 마지막 시간대에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정설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김 씨의 인기비결은 바로 ‘해설’에 있었다. 아나운서가 기상대의 예보를 그대로 전해주는 전달자 역할만 했던 당시, 사람들은 기상예보가 나오자마자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필요 없는 정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동완 씨는 “날씨만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 없는데 이를 무시하는 대중들이 안타까웠다”며 “날씨를 재미있게 해설함으로써 꼭 필요한 생활정보라는 인식을 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랬다.
개그맨 윤정수 씨가 제7회 장애인영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윤정수 씨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애인영화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대사를 맡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지난 20일 전했다. 윤 씨는 현재 KBS 2TV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서 ‘양심추적’이라는 코너와 SBS 긴급출동 SOS 24를 통해 국민들의 건전한 시민의식 개선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하는 제7회 장애인영화제는 다음달 27일 오후 3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3일동안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는 맨발의 기봉이 등 총 9편의 장편
▶이번 대회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는가- 지금까지 장애인체육대회는 전국체전에 이어서 의례적으로 간소하게 치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시는 장애인 체육대회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전국체전 이상으로 격상시켜서 대대적으로 치르고 싶어서 시설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 제반 준비를 다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준비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혹시 전국의 장애인이 와서 불편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에서 걱정이 돼서 어느 도시보다 많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홈스테이 등을 운영했습니다.▶울산광역시 장애인 복지정책은 어떠한가- 울산은 40여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도시입니다. 전국에서 온 근로자들이 땀 흘려 일하면서 전국에서 소득이 제일 높은 도시
"감사합니다.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이번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과분한 상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 갸름한 얼굴의 유병훈 선수(35ㆍ육상ㆍ충남).이번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소감을 말하는 그에게서 겸손함과 공손함이 묻어났다. 지난 2001년 모 통신회사 광고 모델로 출연해 얼굴이 알려지기도 한 유 선수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휠체어 농구였다. 그러나 동료들과 우연히 다른 사람이 휠체어 레이싱 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해 종목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막연히 시작하게 됐는데 골인 지점에서 성공감과 성취감이 휠체어 농구보다 더 크게 다가 왔습니다. 나보다 잘 한 선수들이 좋은 상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기쁩니다. ”
그날 밤 그녀가 묵고 있는 경주의 T콘도를 습격(?)해 이야기를 나눴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말하는 그녀. 수영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초등학교 때 1년 정도 수영을 배운 기억밖에는 없어요. 잘한다고 느끼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수영을 시작하게 됐고, 운이 좋아 지금에까지 오게 됐어요."올해 2월, 수영을 하기 위해 부산곰두리스포츠센터를 찾은 김 선수는 그곳에서 지금의 선수단 감독을 만나게 됐다. 한눈에 재원임을 알아본 감독의 권유로 수영에 발을 담근 그녀는 놀라운 실력과 발전가능성을 보여줬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 첫 기록에서 5초를 단축할 만큼 상승세를 타고 있다.예쁜 얼굴에 날씬한 체구, 큰 키. 소위 말하는 얼짱, 몸짱의 조
소년의 이름은 강동희(37ㆍ지체1급ㆍ제주도선수단). 세월은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됐고, 나이를 먹었지만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바다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30대 중반이라는 나이를 잊고 수영을 시작한 1년 만에 기량이 급성장해 이번 울산전국장애인체육대회의 금메달리스트로 떠올랐다."물 안에서만큼은 스스로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주도 푸른 바다의 기억은 저에게 수영에 대한 갈망을 부채질했습니다. 바다가 저를 키운 셈입니다." 14일 아침 7시, 그를 만나기 위해 Z모텔을 찾았다. 그는 이미 금메달 하나를 13일 목에 건 상태였고, 이날 오전 10시30분, 남은 한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그의 목표. 강 선수가 금을 캐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뒤를 바짝 좇
매일 아침 7시, 샐러리맨들의 귀를 깨우는 목소리가 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딱딱한 뉴스를 감칠맛 나게 조리해 전달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봉두완(73) 씨다. 봉두완 씨는 우리나라 앵커맨 1호로서 지난 1969년 TBC 방송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을 앵커맨으로 활약해왔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원음방송 스튜디오를 찾았다. 어김없이 아침방송을 끝마치고 활기찬 걸음을 내딛는 그의 모습에서 노년의 그림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 중진 언론인들의 모임 ‘관훈클럽’에서 5박 6일간 중국방문을 하고 돌아와 쉼 없이 바로 방송을 진행할 만큼 건강한 봉두완 씨. 일흔셋의 나이를 넘어 매일같이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인생의 결론은 사랑이요... 기본은 효다!... 60평생을 살아 온 심안가득 진지한 눈빛으로 인터뷰의 말머리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원로배우 김희라....수 십 년 전 서글서글한 눈빛, 매혹적인 미소로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영화계의 터프가이 김희라... 그가 어느새 백발과 하얀 구레나루 빛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중후하고 잔잔한 향기를 풍기는 노년의 신사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지난 4월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사생결단’에서 색깔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그는 그 후 쇄도하는 영화 출연제의에 작품을 고르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또한 2년 전부터 전북과학대 방송영상학과에 출강을 하며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