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임비현상 앞에 속수무책 법안
복지사들 지도사 되고프면 우리수업 들어라...
가정학회 조희금건강가정법은 빈자와 가진자 이분화하는 법...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법률 제·개정안이 속속 제출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가정학회와 한나라당은 "건강가정육성기본법(이하 건강가정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대한가정학회(회장 백희영)는 다양한 가족문제로 해체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사회의 가족문제와 국가와 사회의 유지·발전에 근간이며 동력이 되는 것은 가정이라는 사실을 절감, 본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27일부터 20일간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그러나 본 안건이 국회에서 심의되기까지 적잖은 일대소란이 예상된다. 사회복지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적극 이를 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2일 국회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백희영 가정학회장, 정민자 울산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해체 방지 및 건강가정 육성 지원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가정학회 관계자, 가정 관련 학과 대학·대학원생들이 "건강가정육성기본법 추진"내용을 담은 노란띠를 두르고, 공대위 측은 "반대"라고 굵은 글씨로 적힌 전단을 들고, 강당 1,2층을 가득 메웠다. 

이날 행사는 이강두 위원장의 격려사, 백희영 회장의 축사로 비롯하여 정민자, 이정전(서울대 환경대학원), 심준섭(중앙대 행정학과) 교수의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정민자 교수는 주제발표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과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봤는데 이 영화들은 우리 가정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며 가정이 성을 즐기기 위한 놀이터가 돼 간다며 해체위기의 가정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날 사회를 맡은 한나라당 이원형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자리라고 거듭 강조하며, "반대"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배석한 공대위 측에 ""여러분의 뜻은 충분히 반영됐다. 여러분의 주장이나 건강가정법안의 내용이나 같은 맥락이다. 이제 어떻게 합의하나가 문제이지 그 종이를 들고 있는다고 해서 법이 바뀌고 안 바뀌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종이 접어도 좋다. 앉을 의자 없는 분들은 그 종이 접어서 깔고 앉아도 되겠다""며 좌중을 정리하려 하자 브로셔(전단)를 들고 있던 공대위 측은 일색 얼굴이 굳어졌다.

건강가정기본법안에는...가정중심의 통합적 서비스로서 보편적인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고 사전예방사업으로 상담과 교육, 가정의 기능 강화를 위한 문화운동, 의식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가족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 지원, 소득보장, 안정된 주거생활 등 가정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만18세 미만의 아동을 양육하는 가족에 가족수당 지급 등 자녀양육 지원 강화, △가족단위복지증진, 가족의 건강증진, 전문보호시설 확대 등의 가족부양 지원, △가정문제 발생 예방,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지원, 결혼준비교육, 부모교육, 가족윤리교육 등 건강가정 육성 교육(법안 제3장 제21~33조)을 포함한다. 그리고 전달체계 관련 사항으로는, △국가는 국무총리 산하에 건강가정 육성정책 수립과 시행을 위한 중앙건강육성위원회를 두고(제13조), 지방자치단체에는 시도건강가정육성위원회를 두어(제14조) 본 정책에 대한 재정지원, 사업들을 심의하도록 한다. △심장부 역할을 담당할 건강가정육성종합센터를 두며 이 센터는 크게 공공기관, 민간기관, 기업부분으로 조직된다. △업무담당 전문가는 건강가정지도사 1급, 2급, 3급자에 해당하며 1급은 국가시험을 보도록 한다.

찬반양론... 가정학회 VS 공대위

이날 토론은 김승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실장), 김인숙(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남윤인숙(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이미나(서울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윤홍식(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조희금(대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이용흥(보건복지부 가정복지심의관)의 순으로 각 7분씩 배정됐다.

(다음은 각 토론자의 주요발언내용, 소속과 직책은 생략.)

김승권 - 무엇보다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복지 관련 학계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여기서의 "내"는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나? 건강가정법안 제정과정에서 언론 및 방송, 건의문 등을 보면 학계에서도 임비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쉬이 알 수 있도록 노골적 표현이 난무한다. 특히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원이 굶고 학대받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와 같이 계속 하고 싶은가? 학문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 연구하고 정책을 만드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김인숙 - 건강가정법은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는 가족을 건강한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으로 이분화함으로써 국가 서비스를 받는 가정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낙인을 부여하는 이미지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육성"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 육성의 사전적 의미는 "보호하여 성장하게 하는 것"이라 하여 육성되는 대상의 주체성과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 용어이다. 1991년 제정된 "청소년육성법"은 1993년 "청소년기본법"으로 개정되는 등 육성이라는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고 있는 우리나라의 추세에도 역행한다. 우리 사회에는 1년에 8천명이 넘는 사회복지사들이 배출되고 있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가족치료나 가족상담의 자격을 획득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지난 50여년간의 검증을 거쳐 최근에서야 국가공인 전문가로 그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건강가정지도사"는 지금까지 전혀 사람들에게 인지되지도 또 검증되지 않은 실체가 없는 전문자격증이다. 또 사회복지사와의 업무 차별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또 "이혼하고자 하는 부부에 대하여 이혼전의 상담기간 설정"을 강제하고 있는데 이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남윤인순 - 건강가정법 제정추진에 있어 사회공론화가 너무 안 이뤄진 것 같아 아쉽다. 건강가정법안은 가족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건강가족"이라는 전형적인 가족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으로 변화하는 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런 전형적 가정형태로서의 핵가족은 전체 가구의 57%로 그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건강가정의 육성이라는 접근이 특정가족형태의 유지를 지원하고 그 외의 가족의 욕구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 전형적 가족상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형태의 가능성을 수용해야 해당가족의 복지욕구를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가정육성종합센터"라는 새로운 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하므로 이에 소요되는 재정적 부담이 상당하다. 또한 전담인력으로 상정된 "건강가정지도사"는 무엇보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어 기존의 사회복지전달체계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가족정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및 대안적인 가족상이 제시돼야 하고 반드시 성평등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 법 제정을 서둘 것이 아니라 가족정책을 개발 연구하는 정부 차원의 기획단을 구성, 조사와 연구, 각계의 의견 수렴을 통해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홍식 - 가족위기의 주된 책임을 사회구조적인 계연성을 은폐, 피해자인 가족과 그 구성원에 지우고 있어 "가족위기"에 대한 우리사회의 합리적 대응을 심각히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참여연대는 건강가정법안의 법제화를 강력히 반대한다. 이 법안은 국가가 국민의 의식을 계도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근대적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서비스 전달의 주체(지도사)를 객관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인력을 단순히 국가시험을 통해 충원하겠다는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적으로 실천해 와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라면 누구나 가족복지사 될 수 있고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 앞뒤가 바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또 "사회복지사무소"와 같은 사회복지서비스의 효율성과 통합화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고민돼야지 특정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며 경제적으로도 새로운 비용만을 유발하는 "건강가정육성센터"의 설치와 "건강가정지도사"라는 인력 양성은 합리적 대안이 아니다. 이는 사회통합과 연대를 저해하고 우리사회의 복지체계를 빈자와 가진자로 이분화 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될 것이다.

조희금 - 우선 우리(가정학회 측)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배워야겠다(공대위가 공청회에 나와서 본 법의 법제화 철회를 지지하는 행동을 보고). "가족지원법"은 되고 "건강가정법"은 안 된다면 말이 되는가. 이는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이다. 지난 3월에 우리는 보건사회연구회에서 공개적 공청회를 가져 충분히 검토해 왔다. 그때는 왜 안 왔나. 그리고 건강가정법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이고 지난 3월에 만들어졌지만 가족지원법안은 지난 6월에 만들어졌지 않은가. 그리고 내용을 비교해본 결과 거의 80%이상이 동일했다. "누가"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전문적 교육을 받은 자라면 참여할 수 있고 절대 이분화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건강가정지도사는 가족학, 가족상담 및 치료, 아동학, 노인학, 부모교육, 발달심리학, 가정경영학, 가정생활설계, 시간관리와 여가생활, 가정경제학, 가계재무상담, 소비자행동론, 식생활관리, 영양교육 및 상담, 주거학 및 주택관리, 의생활관리, 가정기기관리 등 가정생활 전반에 관해 교육과 훈련을 거친 전문가다. 이처럼 가정에 관한 다양한 측면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지도사의 기능은 가정생활에 관련된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현행 제도로 양성된 사회복지사가 대신할 수 없다. 복지사들도 지도사가 되고 싶다면 와서 수업 들어라. 

이용흥 - 가정정책을 복지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데 가정정책을 놓고 집단간 다툼을 하는 것을 보니 주인 없는 집 같이 느껴져 서글프다. 예전에 가족제도과와 정책과가 보건부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는데 가족문제법제도 마련에 대한 절실함을 느낀다. 다음주 초에 의견수렴 공식절차를 갖고 조속히 법을 제정토록 하겠으며 오늘의 이 자리는 "응원"으로 생각하겠다.

김인숙 교수와 윤홍식 위원은 강력하게 가정건강법제화 철회를 요구해 좌중을 흡수했으며 발언하는 사이사이에 공대위 측으로부터 연신 뜨거운 박수와 지지를 얻어 공청회장을 달궜다. 배정된 시간보다 10분을 초과한 김 교수는 사회자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조희금 교수의 발언이 끝나자 가정학회 측은 그동안 참아왔던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의견을 강력히 지지하기도 했다. 또한 토론자들이 배당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마지막 토론자인 이 심의관에게는 2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정민자 교수가 ""두 복지법안에는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으므로 이제는 업데이트하는 데 힘을 모으자""라는 내용으로 본 토론을 갈음했으며 이에 대해 김인숙 교수와 방청석에서 연거푸 "질의응답"을 재촉했으나 사회자는 이를 정면으로 묵살, ""내 비행기 시간(오후 5시반)이 늦었다""며 일축,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날 공청회는 가정학회와 공대위 양측의 주장을 확인하고 못박는 자리 그 이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입장이 더욱 날카롭게 대립되는 양상으로 학계의 임비현상(yes in my backyard)만이 공청회를 메웠으며 구체적 대안이나 의견수렴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쪽은 "우리 법안을 베껴 양념했다"고 하고 또 한쪽은 "법을 함부로 만드나,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하며 준비해온 내용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 하니, 바람부는 대로 따라가는 갈대가 돼버린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이제는 그만 싸우고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4천5백만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해 법 제정을 추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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