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락에 있어서나 숲속에 있어서나
평지에 있어서나 고원에 있어서나
저 아라한이 지나가는 곳
누가 그 은혜를 받지 않으리 ***
*▲킬리만자로 산행이 2번째인 소설가 박범신. 법구경(法句經·김달진 번역)‘아라한 품’에 나오는 말이다. ‘아라한’이란 ‘붓다’의 동의어로 해석해도 무난할 터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소승불교에서의 수행완성자로 해석하면 된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모두 ‘아라한’이었다. 열 명의 장애인과 열 명의 멘토, 방송관계자 등 우리 34명이 30시간 이상의 비행을 거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평범한 그룹관광단 같았다. 그러나 하늘을 가린 키 큰 마랑구 숲 어귀에서 산신령제를 지내고 ‘신의 집’이라 불리우는 킬리만자로 풀 속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곧 여행자의 자유분방한 발걸음만으로는 ‘신의 집’에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길은 완만했지만 끝이 없었다.해발 2700여m의 만다라산장에서 첫날을 보낸 뒤 곧 해발 3730m의 호롬보산장까지 걸었다. *수목한계선을 넘어서자 지상의 허공이라고 해도 좋을 탁 트인 고원지대가 계속 이어졌다.
잡다한 정보와 자본주의적 경쟁심이 유발하는 끝없는 욕망의 얼룩들을 말끔히 지우고 난 상주불멸의 본성을 닮은 듯 보였다. ***
*▲그는 진정한 ""자유인"" 이였다. 두 다리가 성한 내겐 완만한 경사의 ‘좋은 길’이었지만 의족을 하고 있거나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휠체어장애인에겐 그 고원의 길도 산으로 가는 길처럼 좁고 고통스러운 길이었을 것이다. 동행자의 일부는 고소증세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육체의 고통을 겪을 때조차 우리 모두 기본적으로 아주 밝고 따뜻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4705미터의 키보산장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우리는 걸으면서 자주 ‘뽈레뽈레’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뽈레뽈레’는 ‘천천히’라는 뜻이다. 고원의 낮은 들꽃들 사이로 모래가 많이 섞인 황무지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의 목표였던 4200여m를 훌쩍 넘어 마침내  키보산장에 닿았다. 장애인들을 고려해 잡았던 목표를 훨씬 넘겨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장애인들 자신의 의지와 희망 때문이다. *이제 정상은 눈 앞에 있었다.완만했던 길은 키보산장에서부터 45도의 급경사를 이뤘다. 돌아올 것을 고려해 키보산장을 출발한 것은 칠흙같은 한밤이었다. *길은 급경사의 모랫길이어서 자주 미끄러졌고, 날씨는 영하 15도를 넘어섰으며, 바람이 가열차게 불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그것은 도전의 길이라기보다 고행의 길이었을 것이다. 체력보다 고소증세가 더 문제였다. 어떤 이는 5300m, 또 어떤 이는 5500m고지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불가항력적인 고소 증세가 제일 큰 이유였다. ***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 근처의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박범신. 우리는 각자 멈춘 그 자리에서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의 의지, 사랑, 그리고 희망을 보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문득 각자의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세 가지 길에 의하여 우리들은 성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는 사색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높은 길이다. 둘째는 모방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다”
모방의 길은 길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때로 습관에 의해서 살고 ‘모방’에 의해서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 키보산장을 출발해 킬리만자로의 벼랑길에 매달렸던 순간, 장애인이든 멘토든 간에 우리는 최소한 모방에 따른 ‘습관적인 삶’을 단호히 끊어내고 생생한 경험의 순간을 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잔인하고 생생하고 또 뜨거웠던 실존의 확인이었다. 그 실존의 자리엔 아무런 차별과 편견도 없었다. *우리는 각각 멈추어 앉은 그곳에서 ‘정상’을 만났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경험했으며, 우리의 붉은 꿈이 뜨겁게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하찮고, 위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