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스터<우리 학교> ⓒ2007 welfarenews
▲ 영화포스터<우리 학교> ⓒ2007 welfarenews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서투른 조선말로 웃으며 희망을 품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日本の学校よりいいです(일본학교보다 좋습니다)
-이지상 작곡. 이지상, 안치환 노래-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전했고 우리나라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우리 동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 남아 생활하지만 ‘조센징’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젠가 돌아갈 조국에서 우리말을 쓴다는 정신으로, 1945년 10월 곳곳에 ‘국어강습소’를 차렸다.
이것이 ‘조선학교’의 시작이다. 그들은 60년이 지나도록 귀향하지 못하고, 여전히 ‘민족교육’의 맥을 힘겹게 잇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71개의 조선학교가 있고, 약 1만 2천명의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학교는 ‘학교 교육법 83조’에 의해 각종학교(정식학교가 아닌 요리교실이나 사설 학원과 같은 등급)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는 무관심했다. 우리나라가 방관하는 동안, 북한은 끊임없는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국적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국적을 지켜내고 있다. 조선학교에 걸린 인공기, 치마저고리, 학생들의 말투와 노래가 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학생들은 ‘조국에서 자국민의 애국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마음으로만 생각해도 쉬운 일이지만, 타국 그것도 일본에서 마음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고리를 입으면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커지고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치마저고리를 감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본 우익들의 험악한 횡포 속에서, 조국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재일동포3・4세들은 대견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라는 말은 뜨겁게 느껴진다.
그들에게는 ‘진짜 모교’와 ‘진짜 동창’이 있다. 훗카이도 조선학교에는 권력, 강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특별하다. 30년간 교직생활을 한 어머니선생님. 암과의 사투를 숨기기 위해 가발을 쓰고 교단에 섰다. 끝내 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이는 선생님의 아기사진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의미한다.

‘우리 학교’를 만든 김명준 감독은 훗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 교직원, 학부모 옆에서 3년간 살았다. 영화 후반 고급부 3학년 학생들이 졸업 여행으로 2주간 북한을 다녀오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만경봉호에 오르는 아이들의 손에 카메라가 쥐어진다. 아이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어도, 어색한 우리말을 써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자신들의 모습과 조금만 달라도, 편견을 갖는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이념과 편견을 벗고, 조선학교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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