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의지의 손, 붓으로 자연의 소리를 그리다
강한 의지의 손, 붓으로 자연의 소리를 그리다
  • 정두리
  • 승인 2009.05.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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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welfarenews
▲ ⓒ2009 welfarenews

‘구속으로서의 자유-비상’을 명제로 한 개인전이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4일까지 전시됐다.

개인전을 연 주인공은 박광택(50)화백. 그는 청각장애인이다. 이번 전시는 박 화백에게 작가의 창작 의욕을 더욱 북돋아주는 계기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구속으로서의 자유-비상에서 박 화백은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의 몸짓, 꽃과 나무들의 속삭임, 물의 흐름과 소용돌이, 벌레들의 군무, 별의 움직임 등 자연에서 찾아내 자신의 안에 있는 언어들의 그림을 그려냈다. ‘십장생’, ‘봄의 소리’, ‘여름날의 속삭임’, ‘변주곡-산하’, ‘생명의 탄생’ 등의 작품표제에서 보듯 그는 자연 속에서 채집되고 해석된 이미지들을 선보였다.

그가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칭찬과 믿음 때문이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박 화백에게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은 그의 마음에 큰 힘이 돼 줬다.

물론 어머니의 뒷받침이 큰 힘이 됐다. 어린시절 시골로 가는 기차에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을 본 어머니가 그의 소질을 알아본 뒤 미술을 공부 할 수 있도록 선생님에게 꾸준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창시절 박 화백은 동물화나 풍경화와 같은 구상을 주로 했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듣지 못해 세상과 대화하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려하다 보니 사실적인 구상보다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추상을 그리게 됐다”고 한다. 채색 수묵이라는 동양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지를 다듬고 가공해 바탕을 구축하고, 이에 다시 한지의 번지고 스미는 물성을 이용해 산수의 조형성을 최소화 한 비구상적인 작품, 그것이 바로 박 화백이 만들어내는 문인화적 추상표현주의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화백으로서의 걸음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많은 공모전에서 빛을 발했다.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전국학생실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대학생 이상 출품이 가능한 백양회에서도 입상,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도 세 차례 입상하는 등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도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며 활동을 이어왔다.

“장애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보다 10배는 노력해야 한다. 9배도 안된다. 10배 노력하라”

박 화백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운보 김기창 화백과의 특별한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운보 화백의 문하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서울농학교로 전학했다. 박 화백은 운보 화백에게 그림을 배우기 위해 7번이 넘도록 그를 찾아가 허락을 받아냈다.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운보 화백은 그의 그림 실력을 확실한 믿음과 함께 항상 칭찬했다.

박 화백이 대학을 가고자 했을 때 운보 화백은 그가 계속 문하생으로 있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박 화백은 화가와 공부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대학에 갈 30년 전에는 장애인이 대학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청각장애인 최초로 예비고사에 합격하고도 대학에 불합격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우선 그림을 선택했다. 동아대학교 회화과를 다닌 그는 교직과목을 이수해 중등미술교사 자격을 받았지만 일반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니며 특수교육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는 특수교사로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1남 4녀의 외아들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자란 그는 특히 할아버지께서 매일 등·하교를 시켜 줄 정도로 귀한 아들이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아내, 아들, 딸 그리고 지난 2월부터 가족이 된 청각도우미견 소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가 창작활동과 특수교육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다.

사실 이러한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이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 화백 또한 대학 입학 후 비장애인들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교단에 서면서 ‘하면 된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됐고, “듣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침묵 속에서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술 활동을 원하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