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상 앞에 쌓인 만섬의 쌀들>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 <세종대왕상 앞에 쌓인 만섬의 쌀들>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IMF 경제위기 당시 우리 국민은 금을 모아 나라를 일으켰다. 월가에서 출발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을 때, 우리는 2백년 전 만덕 할망의 나눔 정신을 되살려 쌀을 모았다. 아무도 굶지 않게! 그렇게 모아진 2만3천여섬의 쌀은 그늘진 이웃을 찾아 전국으로 실려나갔고, 북한으로 아프리카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이순신, 세종 그리고 김만덕

올해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밤낮으로 눈부시다. 이순신 동상 앞에는 ‘분수 12·23’이 있다. 원균이 이끌던 조선군이 왜구에 대패한 이후 백의종군 하게 된 이순신 장군은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전의를 다졌고 “23번 전투를 치러 23번 승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징한다.

지난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상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게 20t, 기단을 합친 높이가 10.4m로,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21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옥좌에 앉은 세종대왕은 왼손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펼쳐 들고 오른손은 백성에게로 내민 모습이다.

독립기념일 등을 국경일로 지정한 나라는 많지만, 고유한 문자가 반포된 날을 국경일로 기리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의 긍지이자 민족의 큰 자랑이다.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그리고 지난 10월 17일. 광화문광장에는 또 한명의 이름이 세상에 울려퍼졌다. 조선 정조 당시 전 재산을 털어 굶어 죽어가던 이웃을 구했던 제주의 여성 바로 김만덕이다.

김만덕의 나눔 정신이 메아리 치는 광화문광장, 또 한명의 위대한 인물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시 제주의 여성이 궁궐로 초청되고, 금강산 구경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정조대왕은 여성의 벼슬 중 가장 높은 의녀반수(醫女班首)로 임명하고 궁궐로 김만덕을 초대해 세상의 귀감이 되게 했다.

쌀을 모아 산을 만들다

유엔이 정한 ‘빈곤 퇴치의 날’이었던 지난 10월 17일,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 행사가 펼쳐진 서울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쌀 피라미드’ 3개가 완성돼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김만덕기념사업회에서 지게차를 이용, 전국에서 모은 쌀 3천5백섬을 층층으로 쌓아 올린 것.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박수와 탄성이 쏟아졌다.

광화문광장은 나눔의 물결이 넘실댔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팥죽 2천인분을 만들어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반대편에서는 떡메치기가 한창이었고, 콩고물이 고소하게 입혀진 인절미는 줄 지어선 시민들에게 큰 인기였다.

기념식은 오후 4시30분부터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양원찬 운영위원장의 참석자 소개, 고두심 조직위원장의 '권선문 낭독', 반기문 UN사무총장. 김윤옥 영부인 축하 영상, 현성욱 총무위원장의 경과보고 등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에 참석한 정원찬 국무총리는 격려사를 통해 “김만덕 할머니는 참된 나눔이 무엇인지 보여준 ‘세상의 빛’이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오늘날 사회에도 확산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공식 행사 후 광화문광장에서는 ‘세계빈곤의 날 퇴치 기념’ KBS 희망콘서트가 생방송으로 진행돼 나눔의 뜨거운 열기를 전국으로 생생히 전했다.

목표의 두 배가 넘는 성과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란 행사 명칭이 말해주듯 원래 이번 행사의 목표는 쌀 만섬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호응은 그 이상이었다. 그 결과 목표량의 두배가 넘는 2만3천섬을 모을 수 있었다.

전 재산을 털어 빈민을 구제한 김만덕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행사를 통해 모은 쌀은 결손 가정이나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시설, 무료급식소, 지역아동센터 등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지역에서 모은 쌀은 지역에 분배하는 것이 원칙, 전체 2만3천섬 중 제주도에서 모은 733섬(20kg 2,933포대)은 제주항으로 보내져 제주지역내 소외계층에게 전달됐다.

그럼 목표 초과분량은 어떻게 사용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주최측에서는 1만3천섬 정도를 세계빈곤퇴치기구를 통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제공될 예정이다. 북한 어린이의 경우는 국제기구를 통하지 않고, 남과 북 민간기구를 통해 직접 전달할 계획이라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눔쌀>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눔쌀>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나눔을 싣고 달릴 나눔트럭>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 <나눔을 싣고 달릴 나눔트럭>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20kg으로 무려 46억 포대

쌀 한 섬은 몇 kg일까? 원래 ‘섬’이란 도량형 표기는 무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피를 말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섬’이란 ‘짚으로 엮어 만든 멱서리’로 되어 있다. 한 되의 열배가 한 말이고, 한 말의 열배가 한 섬이다. 보통 쌀 두 가마를 한 섬이라 하는데, 공식적으로 한 섬의 무게는 144kg으로 환산된다.

하지만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에선 편의상 쌀 한섬을 80kg으로 계산했다. 2천원을 기부하면 쌀 한 되, 2만원을 기부하면 쌀 한 말, 20만원을 기부하면 쌀 한 섬을 적립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번에 모은 2만3천섬을 무게로 환산하면 4천6백톤(1섬×80kg)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46억원(1섬×20만원)에 달한다. 마트에서 파는 10kg 포대로 따지면 무려 92억 포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 된다.

기부자의 분포별로는 기업 9,400섬, 서울시내 초·중·고생 8,600섬, 개인 3,200섬, 해외동포 800섬로 분석됐다. 기업 부문을 좀 더 들여다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2천섬(4억원)으로 가장 큰 기여를 했으며, KB국민은행 1천섬(2억원)과 신한금융그룹 1천섬(2억원), KT 5백섬(1억원)과 삼성 5백섬(1억원)이 그 뒤를 이었다.

개인으로는 도쿄 한국상공회의소 오찬익 명예회장이 500섬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인상적인 것은 교육청의 협조를 이끌어내 서울시내 초·중·고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 어린 학생들에게 나눔의 의미를 일깨워졌다는 의미가 컸지만, 일각에서는 강요로 비춰지며 논란을 낳기도 했다.

<김만덕 영정사진>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 <김만덕 영정사진> ⓒ관광경제신문J ⓒ2009 welfarenews
[J's Tip] 의녀 김만덕은 어떤 인물?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200년 전 온갖 역경을 뚫고 제주도 최고의 부자가 됐던 김만덕 할머니는 4년간 최악의 흉년이 들자 전 재산을 내놓아 수만명의 목숨을 구했다”라며 나눔의 의미를 강조한 사례이기도 하다. 반기문 유엔대사 역시 극찬하는 등, 김만덕은 우리 역사 속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의녀 김만덕은(1739~1812)은 조선 영조때 제주도의 가난한 집안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래 양인이었지만 열두살 대 부모가 잇따라 숨지자 관기(官妓)가 되었다. 그녀는 23살 때 화북포구에 객주를 차리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을 펼쳐 큰 돈을 모은다. 그러다가 정조 17년(1793년) 흉년으로 제주도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전 재산을 털어 500섬의 곡식을 내놓고 구휼에 나선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며 정조는 그녀를 당시 여성의 벼슬 중 가장 높은 의녀반수로 임명하고 궁궐로 초대했으며, 그녀의 소원대로 금강산 구경을 시켜준다. 당시 제주도에서 한양구경을 하는 것은, 그것도 여성의 경우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좌의정 체제공은 김만덕을 기려 ‘만덕전’이라는 전기를 남겼다. 또한 제주도에 유배온 추사 김정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은혜로운 빛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라는 뜻의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글씨를 남기기도 했다.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가는 길 왼편 모충사에 김만덕 기념관과 기념비, 그리고 추사의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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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사진/유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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