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성명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1일 장애인재활치료시설의 설치ㆍ운영기준 및 재활치료사의 자격기준을 포함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장애인재활치료시설에 대한 설치ㆍ관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이들 치료시설에 대한 국가 및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시행규칙 개정안의 내용을 접한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 발달장애아동이 대구의 한 치료실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치료실 관리감독을 포함한 장애아동 재활치료서비스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눈물로 호소했던 부모들은 장관의 대책마련 약속을 믿고 1년을 넘게 기다려왔건만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그 방안이라는 것이 고작 재활치료바우처사업의 현행 지침을 대부분 그대로 시행규칙으로 만드는 것이라니!! 보건복지부의 행태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든다.

 

지금까지 장애아동 재활치료서비스가 가진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보건복지부는 진정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국민의 혈세를 들여 보건복지부가 재활치료개선방안연구들을 수행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장애아동 재활치료서비스가 그 목적대로 장애아동이 가진 장애를 조기에 최소화하고 2차적인 장애의 발생을 예방하며 아동이 가진 발달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가 전면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재활치료서비스가 교육에서의 장애아동 의무교육에 비견될 수 있는 보편적인 복지서비스로 확실히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는 재활치료가 뇌병변이나 발달장애, 감각장애 등 특정한 장애유형의 아동에게 전국가구평균소득 100% 이하라는 소득기준과 본인부담금을 두어 일정한 액수를 매달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성격의 서비스가 아니라, 아동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 간에 다양한 재활치료 가운데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양만큼 지원하는 무상의 보편적 복지서비스로 나가야한다는 뜻이다.

 

단적으로 현재의 장애아동 재활치료서비스 운영체계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신체장애나 건강장애 아동들에 대한 지원

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어 장애유형에 따른 심각한 차별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치료가 필요한 신체장애 혹은 건강장애 아동들은 서비스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재활치료가 보편적인 복지서비스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비스지원의 첫 단추인 평가ㆍ판정체계의 수립이 시급하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돈”만 주고 나머지는 부모들이 다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의사, 치료사, 특수교사,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들에 의한 종합적 평가와 부모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장애아동에게 재활치료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유형의 재활치료가 필요한지, 또 얼마큼의 재활치료가 필요한지가 결정되는 선진적인 사정체계의 마련이 선결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재활치료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치료실의 관리감독체계를 마련함과 동시에 치료사의 자격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치료실의 운영기준과 관련해서 보건복지부는 이미 그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연구결과에서 치료실의 시설기준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기준과 재정 및 운영관리의 기준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번 입법예고안은 연구에서 제시한 치료실에 대한 최저의 기준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더욱이 입법예고안이 제시하는 치료사의 자격기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치료사는 장애아동의 몸과 마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보다 재활치료의 전문성과 인간적인 품성이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 장애아동 부모들이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관련학계와 부모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치료사 국가자격증제도의 도입을 간단히 외면하고 재활치료의 전문성이 심히 의심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치료사 자격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건복지부의 태도에 있다. 제2, 제3의 대구 치료실 사망사건이 발생해야 비로소 보건복지부는 치료사의 자격기준을 강화할 것인가? 분명히 밝혀둔다. 치료사자격이 남발되고 치료사자격증이 “판매사업”으로 성행하는 작금의 상황을 방치한 그 모든 책임은 바로 보건복지부가 져야함을.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은 재활치료라는 서비스영역 자체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부모들이 요구하고 있는 국가자격의 치료사를 유일하게 배출하는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재활치료서비스 영역에서 아예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보건복지부는 교과부에서 치료지원의 명목 하에 지원하는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서비스 중복수혜에 대한 기준을 재활치료사업지침에 제시하고 있다. 참으로 보건복지부의 자가당착적인 입장이 아닐 수 없다. 교과부에서 지원하는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는 “치료지원”이기 때문에 서비스 영역으로 인정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는 “재활치료가 아닌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서비스 영역으로 인정할 수 없다? 이 모순된 논리를 의문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두뇌회로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오로지 보건복지부에만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보건복지부는 왜 지금껏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재활치료가 아닌 의료행위”인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에 대한 이용실태를 보건ㆍ의료분야가 아닌 재활치료서비스 부분에 담아서 조사보고를 해왔던 것일까?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안은 재활치료의 서비스 영역에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배제함으로써 서비스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장애유형 간에 중대한 서비스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도의 뇌병변장애아동들을 생각해보라. 이 아동들에게 필수적인 재활치료 가운데서도 가장 필수인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막아놓고 사업지침에서처럼 “장애아동의 기능향상과 행동발달을 위한 적절한 재활치료서비스의 지원”을 운운할 수는 없다. 또한 지적ㆍ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동들에게 물리치료나 작업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굳이 말 할 것도 없고, 신체장애나 건강장애를 가진 아동들에게도 경우에 따라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또는 심리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수 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우리 부모들은 1년을 넘게 기다려왔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속한 대로 장애아동 재활치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기만을.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시행규칙의 안은 우리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재활치료 시행규칙안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보건복지부는 입법예고안을 즉각 철회하고 근본적이며 종합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우리 부모들은 치료실에서 사망한 아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있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유형의 재활치료를 필요한 만큼 국가자격을 가진 전문인력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체계가 수립되는 그 날까지 굳건히 싸워나갈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재활치료 시행규칙안의 입법예고를 철회하고 종합적인 재활치료서비스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

 

 

2011년 2월 15일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한물리치료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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