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을 뒤집어 써 선명해진 집과 아스팔트길을 오롯이 걸어본다 비 냄새인지 비에 젖은 오랜 된 나무의 냄새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냄새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인다. 처마 끝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내의 한숨 섞인 담배연기가 빗방울 사이로 아련하게 사려져 갔다. 비로인해 보다 색깔이 짙어진 이국적인 풍경은 한동안 엽서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첫 고개인 남태령만 넘어서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휴식공간인 서울대공원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즐거움을 골라 맛보는 아름다운 천혜의 대자연 속에 가족학습, 자연문화 오락공간으로 꾸며진 국제적인 명소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일제치하 36년의 역사 속에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말살 술책의 하나로 1909년(융희2년) 서울의 유서 깊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해방 후 우리 국민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창경궁 복원작업을 하면서 1984년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에 서울대공원을 세워 동물들을 이전해 서울대공원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세계 10대 동물원의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속의 공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 ⓒ전윤선
▲ ⓒ전윤선
비에 젖은 동물원 식구들은 저마다 비를 피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홍학은 물속에 비를 반기며 춤을 추고 옆집 기린아줌마는 아기와 함께 우산모양으로 생긴 기린전용 식탁에 목을 처박고 있다. 비가 반가운 친구는 또 있다.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먼 하마다. 건조한 날씨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하마가족은 신이 났다.

유인원관을 지나고 식물원에 도착했다. 아열대 관엽식물류를 비롯해 선인장, 다육실물류 난(동, 서양관)식충 양치식물류등 종류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식물원 앞엔 ‘동물의 왕’ 사자의 영토다. 우렁찬 울음소리는 천지를 진동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준다 갈기가 큰 숫사자는 ‘네오’ 그 옆에 있는 암사자는 ‘줄리’라고 지어줬다. 네오가 영토의 주인임을 주장하듯 우렁차게 큰소리를 친다. 암사자 줄리는 그에 답이라도 하듯 더 큰 소리로 서로에게 회신을 한다.

“네오, 네 영토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곳은 내 영토가 아냐 수용시설이야. 너무 좁고 답답해”
“여길 탈출하면 되잖아. 이 좁은 곳에서 갇혀 산다는 건 비극이야”
“그렇지만 난 어쩔 수 없어. 사람들이 여길 나가지 못하게 막아놓고 감시해. 난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날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데 넌 다른 사람들이랑 걷는 게 다르네?”
“응 난 네 바퀴로 걸어”
“어떻게 해야 너처럼 걷는 거야”
“난 다리에 힘이 없어 그래서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는데 지금타고 있는 전동휠체어라는 새로운 다리가 생긴건야”

“뒤에서 밀고 너처럼 앉아서 가는 사람은 가끔 아주 가끔은 봤어”
“그건 수동휠체어라는 거야, 사람이 뒤에서 밀어줘야해 난 수동적인 다리는 싫어해”
“뒤에서 누가 밀어주면 더 편하지 않아?”
“뒤에서 밀어주면 미는 사람도 힘들고 앉아있는 사람도 미안하거든. 이 더운 날씨에 뒤에서 밀어준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덥고 힘들겠어. 조그만 언덕이나 내리막길이라도 만나면 무척이나 불안하거든, 그리고 미안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자고 말하기가 좀 그렇더라고, 수동휠체어는 사람을 자꾸 염치없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그렇구나!!! 그래도 넌 나보다 훨씬 나아. 난 이 좁은 곳에 갇혀서 조련사가 주는 먹이만 먹어야하고, 나갈 수 도 없어. 초원을 호령하던 내 삶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야”

“네 바퀴, 너도 갇혀 살아봤어?”
“나도 장애 때문에 한동안 갇혀 살았어”
“너처럼 장애가 있으면 갇혀 살아야 하는 거니?”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싫어해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좁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게 가둬놓고 때로는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도 했었어......”
“왜?”
“두 다리로만 걷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그럼 나같이 다리가 네발인 짐승들은 두발로 걷는 인간들이 볼 땐 정상이 아니겠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 생각들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어”
“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신이 세상을 만들 땐 모든 생명체는 제몫의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해 만 든 거 아닐까?”

“네오, 넌 인간을 싫어하는 구나”
“네 바퀴, 너 같으면 좁은 구석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고 내 자유를 구속하는데 좋아하겠어?”
“아니. 나도 내 자유를 구속하는 건 너무 싫어”
“난 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유롭게 친구들과 살고 싶어, 하지만 나를 가둔 사람들이 내게 항상 이런 말을 해.”
“어떤 말?”
“여기 동물원에 있으면 안전하고 먹을 것도 시간 맞춰 주고 아프면 약도주고 몇몇의 친구들도 함께 있으니까 외롭지 않을 거라고. 그렇지만 난 친구들 가족들과 아프리카에 다른 동물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어. 위험한지 아닌지는 내가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 여기만 갇혀있으면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몰라 배운 적이 없거든. 지금처럼 살면 아마,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아가도 함께 살아가는데 많이 힘들 거야.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니까 말이야. 이곳 동물원에 있는 독수리 친구는 날아가라고 문을 열어줘도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 밖에 나가면 잘 곳도 없고, 굶어 죽을까봐 걱정하고 있어. 심지어 어릴 때 남미에서 온 긴팔원숭이는 동물원이 세상에 전부일줄 알아. 이곳보다 더 넓은 곳이 있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믿지 못해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 어릴 적 기억은 하나도 생각나질 않는다고 했거든”
“참 안됐구나.”

“예전엔 사육사들이 여겨 붙잡혀 온 동물들한테 구타도 하고 심지어 밥도 안주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은 거의 없어”
“어떻게? 사육사들이 변했니?”
“몇 년 전엔 사육사의 매질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여길 도망친 늑대가 있었는데 결국 총에 맞아서 죽고 말았어.”
“아~몇 년 전 이곳에서 늑대가 탈출했다는 소릴 뉴스에서 들었어. 그땐 나도 무척 무서웠거든”
“늑대는 자유롭고 다른 늑대 가족을 보고 싶어 했어, 사육사에게 항상 옳은 말을 했어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의지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사육사는 늑대를 미워했어. 늑대 주제에 어딜 그런 말을 하냐고, 동물들은 나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만 준다고.”
“그래서 늑대가 도망친 거구나”
“동물원 사육사들은 우릴 가둬놓고 사람들이 우릴 구경 오면서 내는 돈으로 잘 먹고 잘살고 있거든 동물원에 동물들이 많을수록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를 이어 더 잘 먹고 잘살 수 있거든. 우린 그들에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야”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동물보호법이 있어도 여기 있는 친구들이 사육사들한테 매질을 당해 죽어도 재판도 받지 않고, 재판받는다고 해도 법원에서 판결하길 불상한 우릴 돌봐줬으니 죄를 감면해주고 실형을 살지 않아. 그리곤 곳 집행유예로 다시 풀려나. 풀려난 사람이 다시 동물원에 오면 그때부턴 더 무서운 일이 벌어져. 생각만 해도 끔찍해”
“동물원 친구들에게 자유롭게 자연으로 돌아가서 각자 삶에 맞게 살자고 해도 자유가 뭔지 모르는 친구가 더 많아”
“너에게도 그런 말을 했구나, 재활원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내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들 맘대로 사람들을 가둬놓고 마음대로 하려고 해”

“재활원에 있는 너 친구들이나 이곳 동물원 친구들이나 비슷한 점이 많구나. 그치만 난 너처럼 자유롭게 세렝게티 초원을 자유롭게 달릴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네오, 힘내”
“네 바퀴, 너도 힘내 재활원에 있는 너 친구들도 꼭 너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거야 전동휠체어 다리 멋져”
“고마워 꼭 자유를 찾아 아프리카 세렝게티로 돌아가”

▲ ⓒ전윤선
▲ ⓒ전윤선
제3 아프리카 관을 뒤로하고 삼림욕장으로 걸었다 서울동물원을 감싸고 있는 청계산(621m)의 천연림 속에 조성된 산림욕장은 소나무, 팥배나무, 생강나무, 신갈나무 등 470여종의 식물과 다람쥐, 산토끼, 족제비, 너구리가 살아가고 있다. 꿩, 소쩍새, 청딱따구리등 35종의 새들도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최적의 자연학습장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어우러진 오솔길은 8㎞. 총 4개의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림욕장 뒤 조절 저수지가 있다. 이곳은 아는 사람만이 이용하는 비밀의 장소다. 산 중턱 저수지에 올라가면 대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수지 주변은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고 널찍한 정자도 있어 쉬어가 딱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가기고 온 도시락을 먹어본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참의 쉬다가 오니 저수지 오르막길 왼쪽으로 난 작은 다리 앞에 ‘미술관 옆 동물원’ 촬영지라고 쓰여 있다.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영화 속 길은 생생히 기억난다. 미술관 옆 동물원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길은 3키로 남짓 등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로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 속 길을 걸으니 금방이라도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하늘은 나무들이 가려주고 숲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주니 더 없이 좋은 대공원 나들이다.

하루 종일 동물원과 좋은 친구를 만들어 놓고 휴가철 멀리 가지 않아도 자연과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자연캠프장을 찾았다. 서울대공원 자연캠프장은 5군데 야영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계곡을 양쪽으로 끼고 있고 산세가 우거져 여름날 뜨거운 태양을 들여다 놀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자연캠프장은 취사시설 및 화장실 샤워장 텐트동이 잘 갖춰져 있어 여름 한철 대중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해수욕장 보다 한적하고 오붓할듯하다. 휠체어 접근도 용이하고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그리 큰 불편함은 없다.

가는 길
지하철: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대합실에서 5번 출구(엘레베이터)앞에서 좌회전 500m 직진 좌우로 2km (안전발판서비스 없으나 지하철 승·하차 편리함, 장애인화장실 좋음)
대공원역 전화 : 02-502-5491 (이동약자 원스톱 서비스 시행)
버스: 셔틀버스 운행 대공원역 4번 출구 20분 간격(무료운행, 휠체어 승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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