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칼럼]

아주 가난한 가정에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종일 씨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첫딸이 청각장애인인데 막내아들마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자 키울 자신이 없는 부모는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냈죠. 그곳에서 어린 나종일 씨는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됩니다. 그때가 4살이었습니다.

나종일 씨는 양부모가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정부 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하다가 구글에 웹마스터로 전격 스카우트 됐죠.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고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리고 지난해부터 구글 코리아에 파견을 와 있는데요. 그가 한국에 자원한 것은 친부모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나종일 씨는 자신이 있던 고아원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부모를 찾을 수 있었죠. 30년이 지나서 친부모를 만났지만 부모님은 수화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기 때문에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지만 그래도 따뜻했다고 해요.

네이선 케스터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구글의 웹마스터 나종일 씨의 성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지 않나 싶어요. 장애 때문에 양육을 포기하는 것은 보석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신문사에서 논픽션 작품을 공모했는데요. 올해 우수상은 ‘휠체어 인턴 병원 분투기’를 쓴 류미 씨에게 돌아갔어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류미 씨는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 의사입니다. 현재 국립부곡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의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양쪽 발목을 다쳐서 8개월 동안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걸을 수 없게 됐다고 해요. 의대에 진학했지만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아 자퇴를 했고 불문과를 졸업하고 신문사에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장애 때문에 벽에 부딪혔죠. 류미 씨는 다시 의과대학에 편입해서 공부를 했는데 힘들었지만 여기서 다시 물러나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휠체어를 타고 인턴 생활을 했다고 해요.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 물러서지 않고 도전하면 절망과 분노 그리고 고독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라고 하네요. 신경정신과 전문의 류미 선생님을 보고 의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될 장애청소년들이 있을 것입니다. 휠체어 의사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도전하라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도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분들이 있을 텐데요.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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