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성명서

나경원 후보님. 같은 장애자녀의 부모로써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후보님의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후보님께선 26일 용산에 위치한 중증장애아동 시설을 방문해 빨래도 하고 식사도 도와주고 목욕도 도와주셨다지요. 네, 어쨌든 봉사활동은 좋은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이렇게 선거철만 되면 마음이 참 불편합니다. 왜 정치인들은 평상시엔 장애인문제에 관심도 없다가 선거철만 되면 앞 다퉈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것일까요? 우리사회의 장애인복지문제가 해결되려면 제도가 만들어지고 예산이 늘어나야 하는데 도통 이런 문제엔 아무 얘기도 없이 그저 장애인들과 해맑게 웃으며 사진만 찍고 돌아가시는 걸까요? 후보님. 후보님도 우리와 똑같이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이십니다. 그러면 후보님께선 이러한 현실이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그제 후보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보며 저희가 다른 정치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건 너무 과도한 해석인가요?

그리고 너무나 실망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후보님께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장애아동을 발가벗긴 채 목욕을 시켜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목욕탕엔 전문 스튜디오에서나 사용한다는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었고 사진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에서 나경원 후보님은 착한 어머니로 등장하지만 이름 모를 그 장애청소년은 벌거벗겨진 채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저희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후보님은 “기자들이 통제되지 않았다” 또 현장에 조명장비가 설치돼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해당 시설에서 사진 자원 봉사하는 작가가 봉사 내용을 홍보하기 위해 조명장비 등을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자원봉사 작가가 봉사하는 모습을 찍어 홍보물에 사용하면 그만큼 후원이 잘된다는 생각에서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럼 후보님께서는 한 장애청소년이 벌거벗겨진 상태로 홍보사진에 등장하면 후원이 잘 될 것 같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벌거벗겨진 장애아동은 후보님을 비롯한 저희 모든 장애부모들의 자녀입니다. 그 어떤 장애자녀의 부모도, 아니 장애자녀 뿐만 아닌 모든 부모들이 자기 아이가 벌거벗겨진 채 사람들 앞에 보여 지기를 바라겠습니까? 게다가 그 장면을 앞세워 후원을 받자는데 동의하는 부모가 과연 있겠습니까? 진정 시설 측에서 이 같이 생각했다면 오히려 후보님이 나서서 막았어야 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우리 부모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후보님께서 별다른 거리낌 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후보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기자들 탓으로 시설 탓으로 돌리고만 있습니다.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후보님. 장애인문제는 정치하시는 분들이 1년 내내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후보님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셨다시피 제도가 정비되고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와 국회에선 장애인문제를 너무 시혜적으로 동정적으로만 대했습니다. 마치 불쌍한 장애 아이에게 높으신 분이 오셔서 하루 목욕을 시켜주는 것처럼, 불쌍한 장애인들이 하도 목소리를 내니 조금 예산 조금 떼어준다는 식이었습니다. 후보님께서 관심을 가지셨던 장애아동재활치료 문제나 특수교사 정원확보 문제가 여전히 어떤 상태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장애아동재활치료는 장애아동이 어떤 재활치료를 필요로 하는가와 관계없이 여전히 특정 장애유형의, 저소득 부모의 자녀만 대상으로 하고 있고, 특수교육현장에는 교사가 없어서 학급하나 제대로 늘리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이것도 장애자녀부모들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입니까?

우리 장애자녀부모들은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후보님의 진실된 성찰을 바랍니다. 그리고 후보님께서 서울시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장애인가족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제도와 예산으로 밝혀 주실 것을 바랍니다. 간곡히, 그리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2011년 9월28일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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