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평화의집 윤여준 원장

합천평화의집에는 원폭(원자폭탄) 2세 환우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입니다. 혜진 스님이 설립하셨고, 평소 제가 존경하는 스님의 권유로 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합천평화의집에서는 원폭에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고 기린다는 뜻에서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 핵 없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축제가 될 수도 있는 행사입니다. 지난 해까지 매년 추모제를 치렀으나, 비교적 단촐하고 조촐하게 했었습니다. 이번 해부터는 부대관련 행사를 같이하자는 생각에서 공연, 사진전, 청소년캠프, 영화 상영 등 많은 행사를 열었습니다.
 
원폭 피해자 1세의 경우 비교적 현황 파악이 잘 돼 있는 편입니다. 66년 전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고, 생존해 있는 사람도 평균 연령 80세로 수가 많지 않습니다. 1세는 현재 2,650여 명으로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돼 있습니다.
 
2세는 정확한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1만 여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그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발적으로 등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겼으나,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자면 받자는 것입니다.
 
원폭이 떨어진 당시, 미국과 일본은 ‘같이 연구한 결과 공식적으로 원폭 병이라는 것은 없다’, ‘방사능 피폭으로 없는 병이 생겨서 앓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나라가 원폭의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의학적으로는 원폭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규명이 안 돼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원폭 2세 발병률이 보통 사람보다 10배~100배로 굉장히 높고, 발병하면 급속도로 악화돼 생명을 빨리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원폭 2세 중 죽은 사람이 300명 정도인데, 그중 50% 이상이 1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앓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원폭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의사 중 약간의 재정적인 지원만 이뤄지면 원폭 피해를 연구하겠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합천평화의집에서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원폭 1세는 일본에 등록돼 있어 일본 측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 측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건립한 한국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 있습니다.
현재 110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매년 14여 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1세에게 한 달 10만 원 정도의 진료보조비 명목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2세의 경우 아무런 도움 없이 방치돼 있는 상태입니다. 합천평화의집에서 1년간 사회적으로 모금활동을 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대부분 원폭 2세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언론매체 등을 통해 알려지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원폭 피해자와 피해자 자녀 환우의 진상규명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17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않았고, 이번 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진전을 보이지 않아 불안한 상태입니다.
 
원폭 1·2세 환우들의 정부가 무성의한 것 아니냐는 원성이 높습니다. 물론 특별법을 만들고 싶어도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은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고, 예산이 수반되는 일이라 정부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책 마련 중 제일 급한 부분은 치료와 요양입니다. 그 다음 문제로는 병을 앓고 있어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러한 부분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니까 특별법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합천평화의집 원장과 함께 한국지방발전 연구원 이사장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를 시작해 민선 5기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산문제가 가장 큰 현안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가 좋지 않은데, 지자체마다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특별히 예산을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교부금을 지원해달라고 하나, 가까운 장래에 해결되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환경부 장관 또한 역임했는데, 최근 환경과 복지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것에 대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발과정에서 환경이 많이 파괴되다 보니 사람들도 많은 각성을 했을 것이고, ‘이렇게 가다가는 생존이 어렵겠다’하는 위협도 느꼈을 것입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다 생태·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갔습니다.
 
환경과 복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나 가정이 책임질 문제로 치부됐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국민의 복지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실은 헌법에서부터 국민의 복지를 위해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재정문제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보는데, 이제는 국민의 복지 확대에 대해 정부가 언제까지나 묵살하고 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정부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회적인 투자’라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복지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으면 사회 안정을 이룩하기 어렵고, 사회 안정을 이룩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어려워집니다.
 
즉, 복지에 대한 투자는 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의 복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에 대해 1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진실로 복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싸울 일이 없다고 봅니다.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의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지금 복지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고, 정치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 입장에서 볼 때는 아주 소모적인 싸움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합천평화의집 원폭 2세 환우들을 돕고자 만든 목적에 걸맞게, 진료·요양시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하므로,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위치에 따라 땅값이 다르겠지만, 꼭 중심부에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평균 평당 5만 원이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1,400평 정도 모였고, 조금만 더 모으면 시설을 지을 공간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도에서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돕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이번 해에 건물을 세우는 것은 어렵다고 보나, 땅을 2,000평 정도 확보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 해 정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이번 해 정부 예산편성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미 편성 시기가 지나 걱정입니다.
 
그동안 흡족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대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전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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