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미FTA가 장애계에 미칠 영향은

IMF라는 자본의 태풍이 민중의 삶을 헤집어 놓은 지 15년이 지났다. 자본의 이익을 위한 광폭한 구조조정의 칼날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쫓아냈다. 도시의 밤거리는 노숙자로 뒤덮이고 카드의 남발로 신용불량자가 넘쳐나 이로 인한 가계부채는 1000조에 달한다.

수출은 증가하고 주가는 폭등하지만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왔다. IMF가 남긴 가볍지 않은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그 고통에 익숙해져갈 즈음 이번에는 한미FTA라는 쓰나미가 태평양을 넘어 한반도로 밀려오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미FTA 비준의 시급성을 설파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국익’을 들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과의 관세장벽이 낮아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미국시장에 대한 선점효과가 크기 때문에 엄청난 국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거다. 미국이 서둘러 이를 비준한 것은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상호 이익이 되는 협정을 안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 ⓒ최지희 기자
▲ ⓒ최지희 기자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FTA를 비준하지 않은 지금도 대미수출의존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은 현실에서 관세 낮춘다고 얼마나 더 수출이 늘 것이며, 우리도 마찬가지이듯 미국이 우리 물건 수입하기 위해 다른 물건 수입 안하고 FTA 비준되기 목 빼고 기다릴 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FTA 자체가 국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나 미국 정부 둘 모두가 희생해야 하는 협정이다. 이는 자유무역협정의 기본이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의 철폐’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FTA가 단순히 관세를 낮추어 교역을 활발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FTAA, MAI 등 다자간협정에 실패하자 전세계적으로 국가대 국가의 양자간 협정을 경쟁적으로 체결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한국과의 FTA는 그 시범케이스다.

그렇게 추진되는 FTA의 취지는 관세장벽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당사국간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장벽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동영의원이 비판하는 ‘경제통합’을 넘어 사실상 ‘한미합방’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민주노동당 등이 이야기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제2의 을사늑약이 아니라, 미국의 자유주의자들과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의 합작으로 ‘1%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한국과 미국의 99% 민중을 수탈의 대상으로 팔아넘긴 파국협정인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FTA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이므로 장애인들에게 있어서도 특정 부분이 아닌 삶의 전반에 걸친 위협이 가해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공공서비스 부분, 그중에서도 복지와 의료의 부분이다.

현재 정부에서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복지혜택 중의 하나가 대중교통이나 공공요금, 세금 등의 할인이나 면제일 것이다. 이는 저소득층이나 사회적약자의 보호를 위해 정부가 해당 공기업의 적자분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한미FTA가 시행되면 그러한 공기업들의 민영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전기나 수도, 가스, 우편요금 등이 대부분 저소득층인 장애인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등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영화되지 않더라도 한미FTA에서 제시되고 있는 ISD(투자자-정부제소권)에 의하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기업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므로 그러한 지원이 미국기업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만약 이렇게 제소되어 패하게 되면 그러한 지원을 중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FTA를 체결한 멕시코나 캐나다의 정부를 상대로 미국기업이 제기한 소송에서 단 한 번도 미국기업이 패한 적이 없다는 전례를 볼 때 정부는 그러한 제소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이는 장애인에 대한 할인이나 면제 혜택의 폐지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 ⓒ최지희 기자
▲ ⓒ최지희 기자
더욱 심각한 것은 의료부문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의료서비스나 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FTA로 인한 지적재산권 보호조치는 의약품에 대한 특허기간의 연장으로 저가의 복제 의약품 생산 및 판매가 금지되어 약가 상승이 불가피하게 된다.

또한 미국의 고급 병원들이 들어오고 한해 보험료가 1000만원이 넘는 미국의 보험기업들이 들어오게 되면 부유층들은 건강보험을 탈퇴하고 미국 보험에 가입하여 고급의료혜택을 받으려 할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의 재원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다주게 되고 보험료의 지속적 인상이 불가피하게 되어 고소득 가입자의 이탈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종국에 건강보험체계는 붕괴된다.

이는 전 국민의 14%가 아무런 의료보험이 없고, 평균수명이 감소되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의 의료체계가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재현되는 것이다. 보험료도 병원비도, 약값도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들, 특히나 장애인들은 아파도 참아야 하고 치료약을 두고도 돈이 없어 죽어가야 하는 영화 ‘식코’에서의 끔찍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재현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세계최고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기부문화가 발달하여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민간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한 미국이 그 정도니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결과는 더욱 참혹할 것이다.

그럼에도 FTA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미국식으로 변화한다면 미국의 좋은 사회제도들이 도입되어 좋은 측면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ADA와 같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같은 의료제도들의 도입이 쉬워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한미FTA를 통해 변화하는 법과 제도, 관행들은 미국기업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지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다 한국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기업의 이익에 하등의 관계가 없는,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될 만한 제도들을 한국에 도입하라 요구할리는 만무하며, 한국 스스로 그것을 도입하기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기업들과 미국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이나 현대가, 미국을 상대로 제소하여 미국의 좋은 복지나 의료제도를 후퇴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좋은 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초국적 자본에게만 유리한 추악한 제도들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고용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해보자.
한미FTA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공산품, 농산물 등 전반적인 물가의 하락과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물건을 싸게 팔기 위해서는 원가를 낮춰야 하고,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 가장 용이한 것은 대규모화 하여 인건비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을 낮추거나 정리해고가 필요하고, 그나마 그런 가격경쟁에서 밀려난 중소기업이나 중소상인, 소농들은 도산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게 되면 구매력을 상실하게 되고, 물가가 아무리 하락해도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런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는 궁극적으로 초국적 기업들에 의한 독과점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한데, 그렇게 되면 물가는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초국적기업 오너들의 탐욕스런 손’에 좌지우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장애인의무고용제가 있다. 지금도 장애인 의무고용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 고용부담금으로 대체하고 있다. 만약 한미FTA가 실시되어 미국기업이 한국에 들어오게 될 경우 기업의 이익이 저해된다는 이유로 의무고용이나 고용부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정부를 상대로 이를 제소하게 된다면 결과는 어떨까? 당연히 의무고용제는 폐지, 혹은 축소될 것이며, 국내의 대기업들도 쾌재를 부를 것이다. 그나마 경제활동을 하던 장애인들도 집구석이나 시설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단순히 복지나 의료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한미FTA 실시 이후의 장애인의 삶을 예상해 볼 때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수십 년간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투쟁으로 쟁취해왔던 민주주의는 급격하게 퇴보할 것이고, 시장주의적 무한경쟁체제에서 인권은 사라질 것이며, 자본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은 또다시 격리되거나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은 명확하다. 99% 민중의 삶을 1%의 부유층을 위해 희생시킬 것이 자명한 한미FTA를 날치기한 한나라당과, 이를 묵인한 민주당, 그리고 한미FTA 추진의 원조 세력들과 함께 무원칙한 통합 등으로 전선을 흩트리고 있는 민주노동당 등 ‘무늬만 진보’인 세력들로 가득한 18대 국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하루 빨리 국회를 해산시키고, 조기 총선을 치르고 19대 국회를 열어 한미FTA 비준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99% 민중의 직접행동이 보다 확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미FTA로 인해 누구보다도 가장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장애인들이 그 직접행동에 가장 선봉에 서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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