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의 지은이 고려대학교 정창권 교수

저는 주로 여성, 장애인,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 층의 역사를 연구해 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책들을 많이 쓰고, 방송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책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고대에서 조선 말기까지 장애인에 관한 모든 사료들을 모아 쓴 것입니다.
2,000년의 역사 속에 드러난 장애인에 관한 역사 및 설화, 회화, 음악, 인물 등을 다 모아 사료 그대로를 보여주고, 뒤에는 원문을 붙여 간략한 회자와 함께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장애인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주로 여성사를 다뤘는데, 그러면서 ‘포용의 문화’를 많이 배웠습니다. 여성사에 관한 연구의 성과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서, 장애인사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2005년 책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를 쓰고 그 이후의 성과들을 모아 종합적으로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내게 됐습니다. 장애인에 관한 역사들을 정리하고, 중요한 부분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 관련 자료는 거의 없어 책을 내는 데까지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일단 실록부터 뒤져 삼구사기와 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대동야승 등 정사들을 전부 훑었습니다. 그 다음 문학·설화·음악·미술·회화자료, 다른 나라에 소장된 도록들을 보면서 정사와 야사가 종합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종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비장애인은 흔히 ‘옛날에는 먹고살기도 힘들었으니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심하고 복지도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겉으로는 먹고살기 굉장히 어려웠지만, 서로 합심해서 살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은 훨씬 더 강했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문화가 나름대로 정착돼 있었고, 그 공동체를 깨려고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있었습니다.
 
장애인이 위기에 처해있으면 국가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바로 지원했습니다.
먹고살기가 힘들 경우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거나 활동하기 어려울 경우 도우미를 지원했고, 부역이나 잡역 같은 세금을 면제했습니다. 또한 장애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장애인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처벌하는 감형제도까지 두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금과는 다른 선진적인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문서화되지는 않았지만 법으로는 이미 제정돼 있었고,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전통은 중국의 고대 공자시대부터 내려오는 유교의 정신으로, 우리가 그대로 받아 실행한 동양의 전통 중 하나인 셈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장애인도 똑같이 교육 받고 똑같이 일해서 스스로 먹고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자존감을 갖고 성취욕을 느낄 수 있으며, 비로소 상대방이 장애인을 존중한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이런 자립적인 제도를 위해 정부가 제도적으로 만들었던 것이 직업과 관직이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시각장애인들만을 위한 점복업(점을 치는 직업), 독경업(독경하는 직업), 악사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구의 영향으로 점치는 것을 미신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려시대나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왕들은 항상 측근에 점복가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중대사가 있으면 점을 친 다음 결정하는, 당시에는 큰 과학이었습니다.
독경은 북이나 꽹과리 등을 치면서 경을 읽음으로써 상대방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많은 장애인 음악가들이 있지만, 과거에 장애인이 음악 하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것으로 너무나 많은 장애인들이 음악에 종사했었습니다.
 
이들이 노력했을 때 성취욕을 느낄 수 있도록 독경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명과학의 제도를 만들어 진급을 시켜줬고, 악사에게는 관현명인의 제도를 둬 진급을 시켜줬습니다. 국가에서 이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는 게 굉장히 큰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세계 최초로 장애인단체가 있었다고 추측하는데, 태종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서울 오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단체활동을 했던 ‘명통시’입니다.
일종의 독경을 하거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우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평소에도 같이 활동하는 단체였습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건물을 제공하는가하면, 일을 도와주는 노비도 제공했고, 행사를 진행하고 나면 많은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제공했습니다.
분명한 국가기관이었고 세계 최초의 장애인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구의 장애인사를 보면, 장애인단체가 주로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벌써 600년 전에 장애인단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국회의원 출마나 공무원제도 등을 생각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공무원 정원을 채우지 않는 경우도 많고, 국회의원은 대부분 비례대표를 생각하며, 장관이나 국무총리는 거의 상상 밖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조선시대에는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정일품 정승이라는 지금의 국무총리급인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 ‘허조’라는 척추장애인은 국가의 기틀을 만드는 사람으로, 세종과 함께 일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윤지환’이라는 지체장애인이 정부에서 일했고 대사헌, 이조판서, 대제학, 현재의 장관급이 대여섯 명 있었습니다.
 
제가 통계를 내봤더니 조선의 왕 대마다 장애인이 평균 한 명씩 있었습니다.
임금이 정사를 볼 때, 사정전 문무관을 세워놨을 때 한 사람 정도는 장애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청각장애인일 경우 임금이 승지나 사관에게 적어서 보여 달라고 하면, 청각장애인이 그걸 보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영조와 이덕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영조가 이덕수를 중국 정사 외교부장관으로, 중국에 사신으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모든 신하들은 이덕수는 청각장애인인데 어떻게 중국에 사신으로 보내느냐고 반대했습니다.
이에 영조는 ‘너희들도 중국에 가면 귀가 안 들리는 건 똑같다. 너희들은 중국어를 모르지 않느냐. 그래도 이덕수는 중국어를 안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덕수는 잘 다녀왔습니다.
 
현재 국무회의를 할 때 장애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을뿐더러 사극에서조차 장애인의 모습은 비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장악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동이’입니다. 당시 장악원에는 25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상주했습니다. 때로는 장악원의 지휘자가 시각장애인이기도 했는데, ‘동이’라는 작품은 장악원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하고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왕족에도 장애인이 많이 있었는데, 일단 세종대왕은 당뇨가 아주 심했고 합병증으로 시각장애가 있어 조금만 어두우면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선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전광증’이라는 정신장애를 겪었습니다. 또한 왼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도 희미하게 보여서 50살 이후로는 정치를 그만 둬야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선조의 자녀인 정화옹주는 언어장애가 있었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입니다.
예전의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완하며 살아왔는데, 산업화가 되고 모든 것들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할 일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거리로 내몰리게 되고, 무시 받게 된 것입니다.
 
장애인의 문제는 비장애인의 잘못입니다. 비장애인의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장애인을 서서히 사회에서 내몰았다는 뜻입니다.
편리하고 빠른 것만 원하다보니 장애인들이 버스에 타는 데 걸리는 3~5분을 기다리는 것조차 못 견뎌합니다. 기다릴 줄 알고, 함께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극단화된 경쟁사회로 와버렸습니다.
 
또한 88올림픽을 기점으로 80년대 장애인들이 사회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정부에서 장애인들을 외국인들한테 보여주면 창피하다며 가뒀습니다.
 
우리들의 잘못이고, 우리들이 풀어줘야 하는 문제입니다. 건축을 할 때도 휠체어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생활 속에서 그러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책과 함께 제가 장애인사를 연구하고서 느낀 점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빨리 깨자’입니다.
21세기는 융복합의 시대로, 다른 것이 서로 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더 좋은 결과를 낳는 시대입니다. 장애인, 여성, 노숙인 등 각기 다른 상상력이 하나로 결합했을 때 더 창의적인 세상이 됩니다.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쓴 궁극적인 이유는 과거 장애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입니다.
장애인문화를 활성화시킴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편견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게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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