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 중인 김용남·주기옥 부부

▲ 김용남·주기옥 씨 부부는 건강하고 재밌게 사는 것이 앞으로의 소망이다.
▲ 김용남·주기옥 씨 부부는 건강하고 재밌게 사는 것이 앞으로의 소망이다.
수십 년간 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 탈시설을 결심, 거리로 나온 이들이 있다. 이제는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에서 보금자리를 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커플이 있다. 바로 김용남(남·54, 지체장애 1급)·주기옥(여·66, 뇌병변장애 1급) 씨 부부다.

2009년 여름, 장애인당사자 8명이 20여 년의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을 정리하고 탈시설을 결심했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삶을 누리자’며 노숙농성을 시작했고,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아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이들 부부도 이렇게 시작한 ‘장애인 자립생활 가정’이다.

함께 길거리에서 농성하며 고생한 끝에 화촉을 밝힌 지 2여 년이 지난 이 부부의 아침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무뚝뚝한’ 남편 김씨가 차린 밥상에서 아침식사를 마치면 부부의 외출준비가 시작된다. 아내 주씨의 외출준비를 돕는 김씨의 손길은 아내에게 필요한 물병 등을 챙기는 등 꼼꼼하다.

힘들었던 노숙농성, 하지만 시설생활보다 힘들지 않아

▲ 김용남 씨는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해 중도장애를 입은 후 비용문제 등으로 장애인생활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20여 년 후, 시설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탈시설을 결심했다.
▲ 김용남 씨는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해 중도장애를 입은 후 비용문제 등으로 장애인생활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20여 년 후, 시설 비리문제가 불거지면서 탈시설을 결심했다.
김씨가 장애인생활시설에 입소하게 된 계기는 교통사고 때문이다.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해 중도장애를 입은 후 비용문제 등으로 장애인생활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1989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당시 다리를 바로 잡은 후 깁스를 해야 하는데, 발이 돌아간 상태에서 깁스를 해 지금도 발이 돌아가 바닥을 딛지 못해요. 병원에 오래 있기에는 돈이 없고……. 형이 찾아와 ‘임시로 가 있을 곳이 있는데 가 있으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형이 알고 있으니까 ‘가겠다’고 해 시설에 입소하게 됐어요. 하지만 (시설에 들어간 후)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죠.”

시설에서 생활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뭐냐고 묻자 ‘먹는 것’이라고 답했다.

“밥은 많이 주는데, 먹을 만한 반찬이라고는 단무지 하나인거예요. 무슨 음식이든 촉촉해야 맛있는데, 물기도 없이 삐쩍 마른 반찬만 주니….”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는 “시설 내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도 많았다. 심지어 한 직원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에게 뭐라고 했는지 그 직원을 쫒아 다니며 다리를 이로 깨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정부에서 보장해주기 때문에 저런 놈은 때려 죽여도 상관없다. 시설 운영이 잘되면 우리(직원)들은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며 “왜 자신이 사람을 약 올리고서는 그런 말을 하나? 그리고 시설 장애인을 다 때려죽이면 누가 남아 있겠나?”고 격분했다.

주씨는 이른바 ‘거리정화’사업 피해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에게 가난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된다’라는 이유로 대대적인 거리정화사업이 진행됐고, 서울역 주변서 노점상을 하던 주씨는 시설에 들어가 21년을 생활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1988년에 서울에 올라와 노점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봉고차가 오더니 ‘고생하지 말고 어디 가서 편히 살라’며 ‘부녀보호소’에 데려다 줬어요. 그곳에서 2달 정도 살고 나니, ‘시설에 데려다 준다’고 해서 간 곳이 장애인생활시설이었죠. 처음에는 음식도 잘나왔지만 조금 지나니 매일 장아찌만 주거나, 곰팡이 핀 라면을 줬어요. 우리를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한 거죠. (시설 생활인) 대부분 건강이 약한 편이라 거의 매일같이 토하고 설사했고, 결국 그나마 건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았죠.”

아기를 좋아해 시설에서 살던 아기를 돌봤다던 주씨는 “아이를 잘 돌보자 성인여성장애인 2명을 돌보라고 했다. 그들을 매일 씻기고 돌보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원래 건강했는데 어느 날 당뇨가 왔고,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거기서 살고 있다면, 아마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더듬었다.

결국 이들이 생활하던 시설에서의 비리가 터지며 김용남·주기옥 부부를 비롯한 8명은 탈시설을 결심하게 됐다. 2009년 6월 4일 시설을 나와 탈시설했지만 주거지가 없어서 마로니에 공원서 한 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 달 등을 생활하며 고생했다.

하지만 주씨는 ‘노숙 농성하던 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탈시설한 후, 당장 두 다리를 피고 잘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시에 자립주택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고생이 심했지만, 장애인생활시설에서 1년에 봄·가을 두 번 외출했던 것에 비하면 낮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고생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라고 웃음 지었다.

결혼 후, 먹고사는 문제위해 해결해야 할게 산더미

탈시설한지 1년여 만에 서울역에서 화촉을 밝혔으나, 행복한 현실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생활비에서부터 주거문제까지,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해결해야 할게 산더미였다.

▲ 주기옥 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거리정화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역 주변서 노점상을 하다가 시설에 들어가 21년을 생활했다.
▲ 주기옥 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거리정화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역 주변서 노점상을 하다가 시설에 들어가 21년을 생활했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둘이 합치니 85여만 원 되더라고요. 이 돈으로 쪼개 적금도 붓고, 쌀과 반찬도 사야 하는데 물가가 워낙 비싸서 생활하는 게 힘드네요. 우리는 주거 마련 때문에 혼인신고를 한 후 자립생활가정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 덕택에 수급비 20만 원이 깎였어요. 이런 문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장애인 부부가 많아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장애인은 많지만, 일을 하게 되더라도 아주 적은 급여를 받는 반면 수급비가 깎이거나 (수급대상자에서)탈락하니 누가 일을 하겠어요. 게다가 부모가 약간의 재산이 있으면 자식이 일을 못해도 수급비를 받지 못하니…….”

지역사회서 평범하게 사람 사는 재미 키워나가고 있는 부부

어떻게 결혼했을까 싶을 정도로 무뚝뚝해 보이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모습은 잉꼬 한쌍을 연상시킨다. 혼자 외출할 일이 있어도 절대 혼자 나가지 않는다는 김씨는 “얼마 전에도 외출해야 하는 일이 생겨 혼자 나가지 않고 함께 나갔다. 아내(주씨)가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함께 한다.”고 덧붙였다.

부부는 매주 월·화·목·금요일에는 대학로에 있는 야학에 참여한다. 비장애인에게는 지하철로 40여 분 걸리는 거리지만, 이들의 이동시간은 2시간이 훌쩍 넘는다.

집밖으로 나오면 지하철까지 가는 길 중 빠른 지름길을 뒤로 하고 멀리 돌아서 간다. 지름길은 비탈길로 돼 있기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부부의 이동에 걸림돌이다. 특히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김씨에게 언덕길은 더욱 오르기 힘든 산이다.

지름길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평평한 골목길을 돌아 40~50여 분을 달려오면 마침내 지하철 출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부부는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없다. 계단으로 이뤄진 출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는 곳까지 더 이동해야 한다. 두 대의 휠체어가 타기에 엘리베이터가 작으면 한 대씩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은 몇 배로 늘어난다.

이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한 그들은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역사 밖으로 나갔다. 비장애인은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구역으로 향하면 되지만, 서울역 환승구역에는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설치돼 있지 않다. 그나마 리프트가 환승구역 밖에 설치돼 있다.

리프트가 설치된 계단에 도착해 5분여를 기다리니 공익요원이 걸어와 리프트를 운행한다. 리프트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 끝에, 부부는 계단 위에 오를 수 있다. 리프트 추락사고가 워낙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부부는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고 안전하게 올라올 때까지 서로 지켜보고 있다.

▲ 부부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하지만 비장애인에게는 지하철로 40여 분 걸리는 거리가 이들에게는 2시간이 훌쩍 넘는다. 평평한 골목길을 돌아 40~50여 분을 달려가야 지하철역에 닿는다.
▲ 부부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하지만 비장애인에게는 지하철로 40여 분 걸리는 거리가 이들에게는 2시간이 훌쩍 넘는다. 평평한 골목길을 돌아 40~50여 분을 달려가야 지하철역에 닿는다.
야학에서 공부한 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저녁 11시쯤이다.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만, 이제 날씨도 많이 풀려 산책삼아 다닐만하다. 출출한 김에 집에 오는 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국수를 사먹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부부는 얼마 전부터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얼마 전 치러진 검정고시에 도전한 김씨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국어시험을 보지 못해 떨어졌으나 또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검정고시를 마치면 대학에 진학해 보육이나 사회복지를 전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다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공동체마을을 조성하는 게 꿈이란다.

둘이 건강하게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주씨,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데 잘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는 김씨, 그들은 지역사회서 평범하게 사람 사는 재미를 키워나가는 중이다.

주씨는 “이제 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전했고, 김씨는 “내가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데 잘 못하니까 그게 걸린다.”며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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