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생활시설 나와 시작한 자립생활..."어렵지만 행복해요"
장애인생활시설 나와 시작한 자립생활..."어렵지만 행복해요"
  • 이지영, 정유림 기자
  • 승인 2012.04.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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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남, 주기옥 부부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 중인 김용남·주기옥 부부는 오전 8시쯤, 남편 김씨가 차린 밥상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남편 김씨가 탄 커피 한잔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의 아침풍경은 특별할 것 없지만 정이 넘칩니다.

현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장애인 자립생활 가정’.
지난 2009년 여름, 20여 년의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을 정리하고 나와 탈시설한 장애인 8명이 ‘장애인도 인간답게 삶을 누리자’며 노숙농성을 한 끝에 지원받은 보금자리입니다.

이 보금자리를 만들기까지 부부는 20여년을 시설에서 생활했습니다. 김씨는 1989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 시설이 운영하는 병실에서 생활하다 비용문제로 시설생활을 시작했으며, 서울역 인근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주씨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시설로 보내져 20여년을 시설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INT-주기옥(66, 뇌병변장애 1급)
88올림픽 때 서울에 와서 장사를 했는데 어느 날 봉고차가 나한테 오더니 고생하지 말고 어디 가서 편하게 살라고. 거기서 밥 주는 것 먹고, 나가지 못하니까. 1년에 2번씩 놀이 가는 거. 놀러가는 거. 그거뿐이 없어요.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매일 먹는 거 장아찌였지. 처음에는 반찬이 너무 부실했어요. 라면이라고는 오래돼서 곰팡이 난거 끓여주고. 그거 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병원에 가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약하니까(다 죽었어요.)

INT-김용남(54, 지체장애 1급)
처음에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서 우리끼리만 한 게 아니라 전국 장애인연대를 했어요. 그렇게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이 다 모여서 하는 투쟁이라서. 장애인도 자립생활 하도록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서울시에 요구한 겁니다. (서울시에) 우리의 의견에 대해 대답을 해 달라. 그렇게 밀고 당기고를 했어요.

그렇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2개월여를 노숙농성하며 고생하던 김용남·주기옥 부부는 그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텄고, 더 큰 행복을 함께 하기 위해 서울역사에서 시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화촉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등 부부의 생활비는 85만여 원. 두 사람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INT-주기옥(66, 뇌병변장애 1급)
결혼하면 (수급비) 20만 원이 깎여서 혼인신고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문제가 있어서 혼인신고도 못하고 (대부분) 동거인으로 살죠. 일을 해도 수급비가 깎이는데 누가 일하려고 하겠어요.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일을 하고 싶은데 일 배워서 일을 해보려고 해도 수급비가 깎일까봐 못해요.

오후가 되면 부부는 대학로에 있는 야학에 참여하기 위해 단단히 외출준비를 합니다. 비장애인에게는 지하철로 40여 분 걸리는 거리지만, 이들의 이동시간은 2시간이 훌쩍 넘기 때문에 일찌감치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위험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고, 계단으로 이뤄진 출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엘리베이터가 작으면 한 대씩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은 몇 배로 늘어납니다.

야학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부부의 하루는 마무리 됩니다.
공부하는 게 힘들고 고되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김씨는 얼마 전, 검정고시에 도전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다시 도전하며 앞으로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갈 생각입니다.

INT- 앞으로의 소망
아프니까 걱정이야,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너무 아프니까. 당뇨가 있으면 정말 피곤해요.
내가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데 잘 못하니까 그게 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