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권희덕

저는 성우로서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역, ‘동방불패’의 임청하,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 등 다양한 역할과 목소리를 맡은 바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故최진실 씨의 광고 속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밖에 맥 라이언, 까드린느 드뇌브 등이 인상 깊었습니다.

성우는 방송 관련 센터나 방송국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사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과 같은 모든 것들이 다 ‘선생님’입니다.
또한 음계를 이용해 연습하다보면 전달이 잘 되는 방법도 익히기 쉽습니다.

배우나 가수 등은 무명시절을 거쳐 어느 날 ‘반짝’ 뜬다고 하지만, 성우는 절대 ‘반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숙련돼 있지 않으면 뜰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는 직업입니다.

꼭 주인공 역할을 맡지 않더라도 개성과 자신의 소질이 탄탄하면 잘 나아갈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이는 성우만이 아니라 그 어떤 직업에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방송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힘들었던 적은 없지만, 어려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드라마 PD 김영진 씨가 장애인이 됐습니다.
제가 ‘초짜’이던 시절 녹음 작업으로 맺어진 인연인데, 김영진 PD가 미국 보스턴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김영진 PD를 위한 장애인 뮤지컬 ‘위드 러브’를 만들고자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가수 강원래 씨가 안무를 맡았고 연습도 굉장히 많이 했는데, 표가 팔리지 않아 막이 올라가기 이틀 전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너무 마음만 앞서 준비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좀 더 많이 활동한 다음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한 달가량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헤매는 등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뮤지컬은 실패했지만, 이후 매년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이름의 디너쇼를 열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열게 된 것이었는데, 의외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모아진 수익금으로 장애인 이동 목욕 버스는 물론, 봉사활동의 계기를 마련하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디너쇼는 올해 7회째인데, 저의 지인들이 1년에 한 번씩 표를 사는 방식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매번 어떤 음악과 어떤 감동을 드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큽니다.

지난해에는 국악방송이 10주년을 맞아 심청이가 헬렌켈러를 만나는 내용의 드라마를 준비했는데, 제가 심청이역을 맡고 헬렌켈러역은 시각장애인 성우를 뽑기로 했습니다.

서울맹학교에서 지원자를 찾았는데, 그림이나 장면을 보지 않고도 원고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감정을 실어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난해 6월부터 시각장애인 성우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참여한 시각장애학생들은 광고 녹음을 하고, 지난해 디너쇼에서 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권희덕의 특별한 선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시를 낭송·녹음해서 전자우편으로 보내는 봉사활동의 일종입니다.
방송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문화센터가 건립되길 바라는 꿈을 갖고 있는데,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배움과 나눔을 동시에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낄 수 있는 기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가 나이가 많아 주인공에서 밀려났고, 그만큼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입니다.

장애인문화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부디 활짝 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배움과 나눔의 기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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