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준철 의사 부인 송미경 씨

“지금 당신은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너무나 그리운 당신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음을. 저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이려고 하지도 않지만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대가 나를 못 보아도, 내가 그대를 못 보아도, 우리는 항상 서로가 생각했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너무나 그리워하고요.”

지난 해 10월 6일,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앞에 어찌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막연했습니다. 저는 한 남자의 아내로 20년을 살면서 남편의 생각과 삶을 알았고, 제 생각과 관계없이 남편의 생전 뜻에 따라 마지막에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을 결정했습니다. 어쩌다보니 화제가 됐고 언론에 노출됐으며, 남편과 가족의 삶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 책을 엮다보니 벌써 1여 년이 지났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올 때, 의사로부터 ‘남편이 평소 봉사도 하고, 의료 선교에도 뜻이 있다는데, 인체 기증할 생각이 없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장기 기증은 뇌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고, 시신 기증은 죽은 뒤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기증하는 것입니다. 인체 기증은 죽은 뒤 피부, 아킬레스건, 혈관, 심장판막, 각막 등 신체의 일부를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인체 기증 희망서약을 해야 하며, 가족의 동의 등이 부수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뜻밖의 소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전율이 일만큼 그동안 남편과 나눴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는 동안 인체 기증을 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장기 기증 및 시신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계신 시어머니께 남편의 죽음을 알린지 5분~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인체 기증 허락을 받고자 다시 연락을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시어머니께서 ‘아들이 10년 전 나한테 장기 기증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으니 그렇게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국내 인체 기증 수요가 없어 해외에서 75.8%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체 기증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있어서는 까다로운 조건과 비용, 후유증 등으로 이미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남편은 늘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환자 한 명을 대할 때도 가족처럼 대하고 싶어 했고, 친근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시골병원에서 일할 때 75세 한 노인의 목 뒤에 큰 종양이 있었는데, 큰 병원을 마다하고 남편에게 수술 받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작은 병원이라 위험하다고 말렸던 노인의 자식이 남편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해산물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그 지역을 떠난 뒤에도 꾸준히 안부를 물었고,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남편이 좀 달라 보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평소 밖에서의 일을 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의 모습만 알고 있었는데, 책을 엮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본 남편의 모습을 들으니 다시 한 번 남편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의료봉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에 해외 의료선교를 떠났는데, 처음에 막연히 갖고 있던 편견과 달리 정말 의료혜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고, 재정적·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게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더 끌린 것 같습니다.

남편은 뭐든지 가족과 함께하기를 원했습니다. 남편과 학창시절에 만나 5년간 연애하고 결혼했기에 친구 같은 사이였습니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함께 있으면 편했습니다. 결혼 20주년이 되기까지 사실 투정도 많이 부렸었는데, 남편은 한결같은 자세로 들어줬습니다. 남편은 집안에서만큼은 가족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어서, 아무리 피곤해도 주말만 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했습니다. 미국 유엔소속 ‘머쉬십’이라는 단체에 가족 모두 지원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머쉬십’이라는 배에 오르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남편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이 가족만을 위해서 살려고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정말 무엇일까’, ‘남은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 자신부터 돌아보는 과정에서, 약하고 부족한 점이 두드러지게 보여 막연함만 느껴졌습니다. 이미 남편이 떠나기 전에 아들이 먼저 떠난 적이 있기에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죽음도 그랬듯이 남편의 죽음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참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생명을 누군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제가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며, 이는 슬픔이 아니라 남편의 삶과 뜻을 알기에 조금은 기쁘게 남편을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무게는 항상 무거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소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일이 생겼는가’라고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주변에 감사한 것들을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주변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고, 자신이 숨 쉬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혼자만을 위하고 혼자만을 생각하면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할 때, 그때 서로가 함께하고 나누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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