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은경 대표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본래 건축에서 ‘장벽을 없애다’라는 뜻입니다. 1974년 국제연합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설계’라는 보고서를 내면서부터 쓰였습니다. 영화 속에도 없애야 하는 장벽이 존재합니다. 특히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일본에서 제1회 배리어프리영화제가 열렸을 때 참석했는데, 한국영화 ‘워낭소리’가 일본어 배리어프리판으로 상영됐습니다. 당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나누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본에서 쓰는 배리어프리영화라는 말을 가져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나라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같은 맥락의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배리어프리영화가 아닌 엑세서블시네마라는 말을 씁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영화인들이 주축이 돼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기존 장애계단체에서 오래 전부터 화면해설 및 한국어 자막 작업을 해 왔는데, 함께 영화를 본다기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나뉘어 따로 보는 식이었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는 장애계단체 및 여러 곳에서 쌓아온 방법과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게 영화 홍보 및 배급 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배리어프리라고 하면, 보통 문턱을 없애는 등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노인이 쉽게 다니게 하기 위한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2층 건물의 경우 계단만 있는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단순히 2층 계단이 아닌 히말라야보다 더 높은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면 장애인만 편한 것이 아니라 노인,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여자 등 이동약자들이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영화도 좋은 영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화면을 설명해주는 화면해설 작업을,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한국어 자막과 함께 수화를 넣는 작업을 합니다.

수화를 넣을 때 크기 등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럴 경우 현장에서 직접 수화 통역을 하기도 합니다. 외국영화에서는 보통 대사만 자막으로 내보내는데, 배리어프리영화에서 자막은 대사뿐만 아니라 누가 하는 대사인지 알 수 있도록 사람을 가리키고 영화 속 소리도 표현합니다.

영화 속 효과음이나 음악을 표현할 때는 자막이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자막이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단, 자막이 익숙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화면해설은 전문 작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성센터와 연계해 전문 작가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일 경우 영화감독이 작업에 참여하는데, 자신이 만든 영화기 때문에 올바른 내용과 감동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 다음 내레이션을 맡을 성우 및 배우를 섭외해 녹음을 하고, 되도록 영화 속 소리와 부딪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춥니다.

이러한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드는 작업들 또한 장애인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노인에게도 편하고, 한국어가 서툰 사람에게도 편하고, 어린이 등도 이해하기 편합니다.

자막이나 화면해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 데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무엇보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껴봤으면 합니다. 의외로 재밌는 부분들이 많고, 만화 같은 경우 부모들이 배리어프리영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경우 만화를 보면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묻곤 하는데, 자막과 화면해설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간 중간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영화를 보는 환경을 가르쳐주는 것도, 앞으로의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큰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작권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장애인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극장을 찾고 영화를 보는 것이 익숙한 상황은 아닙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더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은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지원과 관심이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1년에 한국영화가 100편~150편정도 만들어지고, 외국영화는 400편이 넘게 상영합니다. 그 중에서 화면해설 및 한국어자막이 들어간 영화는 20편이 채 되지 않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배리어프리영화 15편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밖에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드는 데는 비용이 따로 듭니다. 상영에 있어서도 극장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배리어프리영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앞서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식의 첫 걸음은 관심입니다. 아직은 ‘그게 필요한가?’라는 반응이 많은데, 일단 관심부터 갖고 보면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극장에서 화제의 영화가 상영하는 시기에 배리어프리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조금 지난 뒤에 볼 수 있지만,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한 달에 한 편씩 꾸준히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외국영화도 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아가 화제의 영화가 상영하는 시기에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칠 예정입니다.

또한 시·청각장애인과 제작부터 상영까지, 기타 교육 및 공연프로그램 등에서도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차단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면, 그것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장애인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리어프리영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정부·영화 관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함께 해결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넘어 ‘누구나 함께 누리고, 즐기고, 소통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모두가 힘을 합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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