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침묵, 그 속살을 들여다보다

▲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살아하는 법’을 관람한 비장애인이 남긴 한 마디.
▲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살아하는 법’을 관람한 비장애인이 남긴 한 마디.

‘장애인의 성’을 기획하기에 앞서 우선 비장애인, 장애인을 불문하고 도대체 ‘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 지 생각해봤다.
일반적으로 성이란 남·녀를 구분짓고, 자녀를 낳고, 육체적 쾌락을 뜻하는 생물학적 의미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심리적·사회적 측면도 간과해선 안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성’에 대해서 진정으로 마음을 털어넣고, 타인과 차분히 이야기하길 어려워한다.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자신들이 품고 있는 성에 대한 호기심, 불안, 비밀, 공상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힘들다. 더군다나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들이 성적 욕구를 털어넣고, 성적 권리를 요구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다. 이들은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성의식 뿐만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에까지 둘려싸여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어떤 성적 소외를 겪고 있고, 어떤 식으로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지,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어떠한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 지를 살펴보기 위해 본지에서는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각각의 성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총 4부에 걸쳐 1부에서는 비장애인이 갖고 있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편견을 다뤘으며, 2부~4부에 걸쳐서는 장애 유형별로 척수장애인, 뇌병변장애인, 지적·자폐성장애인의 성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이번 기사를 통해 무엇보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장애인도 당연히 성적 욕구가 있고,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성적인 대상이 되길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여전히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 여기는 비장애인들의 편견을 걷어내기를 바랐다. 또한 성 활동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장애인들이 성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장애인 당사자들의 성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모든 인간은 성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권리는 장애인도 역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본적으로는 장애인이 사회로 나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교육권·이동권·취업권 등의 사회적 여건이 보장돼야 하며,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사치가 아닌 당연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나는 충분히 성적매력이 있는 존재다’라고 인식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성적 활동에 임하는 것이다.

▲ 척수장애인 순호 씨와 시·청각장애인 영찬 씨의 결혼 생활을 담은 영화 ‘달팽이의 별’의 한 장면.

장애인 스스로 ‘성적주체’ 인식하고, 인정받아야

구자윤(36, 뇌병변장애 1급) 성 활동가는 그동안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면서 ‘장애를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드리고, 자신만의 매력을 가꿔라.’, ‘성에 있어서 충분한 의사표현을 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구 활동가에 따르면 이같은 성교육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의 성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성적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그가 말하는 ‘성적 주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최근 개봉한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장애인의 성 또한 비장애인의 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척수장애인 순호 씨와 남성 시·청각장애인 영찬 씨의 결혼 생활을 담담하게 담고 있는 영화 ‘달팽이의 별(2012)’. 이 영화에 대해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장애인의 성문제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고, 어떤 다른 방식으로 해소돼야만 한다고 여겼던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의 자립생활, 연애, 동거, 결혼까지 그려냈다.”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 부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지를 고민하도록 했다.”고 호평했다.
이어 뇌병변장애인인 우영 씨와 재년 씨의 결혼 과정을 그린 영화 ‘나비와 바다(2013)’에 대해서는 ‘장애인의 특수성을 거쳐서 결혼의 보편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라고 평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완전히 구별해서 사고하지 않고, 그들을 똑같은 성적 주체로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없이 누구나가 ‘성적 주체’이며, 바라고 고민하는 부분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성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장애인들이 근본적으로 겪고 있는 성문제를 들여다보길 거듭 강조한다.

▲ 뇌병변자앵인 재년 씨와 우영 씨의 결혼 과정을 그린 영화 ‘나비와 바다’의 한 장면.

‘성적 욕구’ 감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도’하길

또한 장애인 당사자는 더 이상 자신의 성적 욕구를 감추지 말고,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
‘발기’와 ‘사정’에 있어서 문제를 겪는 척수장애인들은 의학적인 도움을 통해 충분히 성생활이 가능하며, ‘실금’에 대한 우려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예방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척수 손상 전만큼 성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을 찾아 전문가와 상담하고, 소모임을 통해 동료들과 만나 소통한다면 보다 나은 성생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관계 도중 ‘경직’과 ‘경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뇌병변장애인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가능한 체위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으며, 반드시 삽입 성교가 아니더라도 애무나 오랄섹스 등 개인에게 맞는 창조적인 성생활 방법을 찾으면 된다.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가 강조했듯이 성생활에 앞서 자신의 몸과 성감대 등을 먼저 파악한다면 훨씬 더 만족스러운 성적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장애여성공감에서 성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회 확대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또한 ‘조심해야 할 존재’, ‘성적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비춰지고 있는 지적·자폐성장애인의 경우, 당사자 부모부터가 먼저 자녀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고, 올바른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한다. 지적·자폐성장애인은 성에 대해 무조건 금지당하거나 무지함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성적 행동을 보인 것일 뿐,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반복적으로 교육한다면 충분히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성’은 단순히 신체적인 의미로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 까지 지평을 넓혀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사회·국가의 노력이 함께 이뤄진다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차별없는 성적 활동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꼭 다뤄져아 할 주제’라며 기꺼이 자료를 제공하고, 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이현숙(34)·안권수(36, 척수장애 1급) 부부와 딸 안시은(4) 어린이. 이현숙 씨는 “성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대화’.”라고 말했다.

▲ 김정근(64)·김진옥(56, 뇌병변장애 1급) 부부. 김정근 씨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났지만 성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며 “스스로를 가꾸면서 이성에게 다가간다면 충분히 매력발산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이미경(44, 뇌병변장애 1급)·김동림(52, 뇌병변장애 1급) 부부. 김동림 씨는 “몸이 좀 불편해서 성관계가 어렵긴 하지만, 아내와 꼭 껴안고 자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 정문영(30, 자폐성장애 1급) 씨와 어머니 박옥순(52) 씨. 박옥순 씨는 “스스로 통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성적 권리를 무시해선 안된다.”며 “지속·반복적 성교육을 한다면, 충분히 인지하고 올바른 성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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