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통상화 된 ‘수화’ VS 언어로서 지위 확보하는 ‘수어’
“이분법적 아닌, 절충에 의한 용어 사용방식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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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수화기본법 제정을 위한 농사회 용어 정리 토론회’가 진행됐다. ⓒ안서연 기자

수화기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법 제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용어에 대한 정리부터 명확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에 제기됐다.

이에 한국농아인협회는 용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용법을 확정짓고자 지난 3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청각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학자·관련전문가·정부부처 담당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화기본법 제정을 위한 농사회 용어 정리 토론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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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 김칠관 외래교수. ⓒ안서연 기자
이날 발제를 맡은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 김칠관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수화’는 오랜 시간을 통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이며, 농인들은 물론 많은 청인들 또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수화 관련 용어는 수화, 수어, 한국수화, 자연수화, 농식 수화, 관용수화, 한국어대응수화, 문장식 수화, 청인식 수화, 손짓 한국어 등으로, 김 교수는 “이처럼 다양한 용어에 대해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용어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 정비를 위해 최근 한국농아인협회 시·도 협회 및 지부를 중심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용어로서 ‘수화’와 ‘수어’의 찬성 비율은 각각 50%, 46%로 ‘수화’를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토론회를 앞두고 지난 달 22일~30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진행했던 설문조사에서는 ‘수화’는 41%, ‘수어’는 59%로 ‘수어’가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찬성 이유는 ‘수화’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관습적으로 오랫동안 사용한 용어를 순식간에 바꾸는 데에는 지나친 에너지와 예산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였고, ‘수어’의 경우에는 국어처럼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며 말이란 것을 함축적으로 포함하는 단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김 교수는 “절충에 의한 용어의 사용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법정용어로는 수화와 수어를 아우를 수 있는 ‘수화언어’로 하되, 이의 약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화언어’는 ‘음성언어’의 대응 용어로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어 “수화 원어민 관련 용어로는 보편화되어 있는 ‘농인’이 적합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다만 ‘수화언어’의 법제를 전제로 할 경우 ‘농인’에 대한 언어·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용어의 정비가 이분법적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며 “용어도 중요하지만, 이는 단순한 의미상의 문제만이 될 수 없으니 언어·사회·문화 등과의 깊은 관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어’ 사용해야”

이에 토론자들은 용어 정리에 대한 필요성에는 동의를 표하면서 ‘수화냐, 수어냐’에 대해서는 대립되는 입장을 보였다.

주은농선교교회 강주해 담임목사는 “수화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용어의 조속한 정리를 통해 의미와 용법을 명확히 해 혼선을 방지한다는 취지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히며 “‘수화’라는 용어는 ‘언어’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확고하게 사람들의 머리에 인식시키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유인 즉 ‘수화’는 한자상 손 수(手)와 말씀 화(話)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라는 의미를 전달시키기 어렵고, 하나의 언어라기보다는 손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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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장 이준우 원장. ⓒ안서연 기자
이에 강 담임목사는 “언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語)’ 자를 포함시켜 ‘수화언어’라는 용어가 옳지만, 너무 기니까 ‘수어’로 사용하는 게 맞다.”며 김 교수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또한 “오래 전부터 사용돼서 친숙해진 ‘수화’라는 용어를 폐기하는 것은 솔직히 좀 아까운 감이 있으므로 손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동작의 의미로 ‘수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되 언어의 의미를 나타낼 때는 ‘수어’라고 차별화하는 것이 정확한 용어 정립을 위해 유리하다.”고 내다봤다.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이준우 원장 또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동시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농인의 삶의 모든 가치와 행동의 양식을 포함하고 있는 농문화가 담겨져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손 말(手)이라는 개념보단 손 언어(語)가 타당하다.”며 “‘수화’와 ‘수어’를 함께 사용하되, 법정용어는 ‘수화언어’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수화’ 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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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윤석민 교수. ⓒ안서연 기자
반면,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윤석민 교수는 “농사회 용어 선정은 정체성을 정확하게 드러내면서 체계적 용어 사용이 가능하며 사회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용어가 좋은 용어.”라고 강조하며 “기준에 적용해 본 결과, 농사회가 사용하는 언어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는 ‘수화’가 ‘수어’보다 더 좋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유인 즉 ‘수화’는 상대적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고 그만큼 농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더욱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어’는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용 영역이 주로 학술적인 분야로 제한적이며 또 사회적 익숙도 역시 ‘수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수어’를 선택한 농인들이 많은데 이는 농사회에 관심을 가진 20~30대 농인들의 표현에 불과하다.”며 “‘수화’를 배운다고 하지, ‘수어’를 배운다고 말하지 않는다. 역시 ‘수화’가 ‘수어’보다 익숙하기에 ‘수화’라는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명성교회 농아부 손원재 담임목사는 “‘수어’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유라고 하면, 농아인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수어가 낫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수화’는 해당분야 전문가와 학자, 그리고 수화사용자만이 것이 아니고 일반 모두가 두루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 사용해 온 ‘수화’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농아인’ 보단 ‘농인’ 용어 선호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의 선호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앞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농인’에 대한 선호도는 60%였으며, ‘농아인’에 대한 선호도는 32%, ‘청각장애인’에 대한 선호도는 8%로 나타났다.

‘농인’을 가장 선호하는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선 다른 용어가 필요한데, ‘청각장애인’은 병리적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협회에서 통합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돼 온 ‘농아인’은 그 의미를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농인’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농’은 귀가 먹다는 뜻으로 기능적인 면에서 청각장애와 연결이 될 수 있으나, ‘아’는 ‘언어 장애’와 연결되므로 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은 ‘언어장애인’이라 볼 수 없으니 ‘농인’이라고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 대부분의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농사회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농인’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농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언어장애인도 수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농인과 아인을 ‘농아인’으로 통일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언어는 사회적 약속, 통상화 된 ‘수화’ 의미 확대해 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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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강미영 학예연구사. ⓒ안서연 기자
한편, 현재 수화기본법 제정 작업을 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강미영 학예연구사는 “‘수화’와 ‘수어’ 중 어느 용어를 법률에서 택해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때 언어의 사회성, 곧 언어가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되지 않을 순 없다.”며 “통상적으로 쓰고 있는 ‘수화’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바라봤다.

이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화’를 ‘구화’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정리하고는 있지만, 청각장애나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수화’가 음성언어와 대비되는 시각 언어를 이르는 추상적 개념이라는 점이 사전의 뜻풀이로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률에 사용될 용어를 선택할 때에는 다른 법률 및 다른 용어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대한 법률 등에서는 모두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처럼 여러 법률 안에서, 다른 용어와의 관계 안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므로 단순히 병리적 관점에서 접근한 용어라고만 판단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수화’의 주 사용자를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으로 보고 있으므로, 수화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할 때는 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만약 수화 관련 법률에서 ‘농인’과 ‘농아인’ 등의 용어를 공식적으로 채택한다면 ‘농인’보다는 ‘농아인’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이날 토론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종합해 수화기본법안을 포함한 공식문서 및 자격시험 등에 반영할 계획이며, 오는 18일 수화기본법 제정 공청회를 통해 수화기본법의 기틀을 다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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