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와 ‘사회복귀’ 빠진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안, 이대로 괜찮은가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자장면을 먹고 난 뒤, 신경 안정제인 줄 알고 주사를 한 대 맞았는데, 갑작스레 졸음이 몰려왔고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기억을 잃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모 정신병원이었다. 가족들은 폐쇄 병동으로 가길 원치 않던 나를 그렇게라도 입원시켜야 했나 보다. 정신병원의 강제 입원은 너무나 쉽게 이뤄지고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이 모씨-

현대 사회에 날로 높아지는 인권 의식과 더불어 각종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정신장애인의 비인권적인 입원과 치료 형태에 대한 논의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정신장애인의 정신 의료 기관 병상 수는 2011년 기준 8만을 넘어섰고, 이중 78.6%가 강제 입원을 하고 있으며, 21.4%만이 자의 입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까이 위치한 일본의 자의 입원율 64.2%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수치이며, 자의 입원 21.4%마저도 따로 갈 곳이 없거나, 가족들의 설득으로 스스로 입원하는 경우가 포함돼 있어 진정한 자의 입원 환자 비율은 더 낮은 수치일 것으로 보인다.

▲ 1998-2011년 정신의료기관 병상 수 추이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2012) 2011년 사업결과보고서 및 보건복지부(2011) 2010 보건복지통계연보
▲ 1998-2011년 정신의료기관 병상 수 추이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2012) 2011년 사업결과보고서 및 보건복지부(2011) 2010 보건복지통계연보

현재 한국의 강제 입원은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의 동의와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보호의무자에 의해 비교적 쉽게 강제입원이 가능한 형태인 것.

입원 기간 역시 OECD 국가가 평균 10일~35일인 반면, 한국은 평균 251일 입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이상의 장기 입원 환자 경우도 71.8% 달하며,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6개월 이상 계속 입원 여부에 대한 심사 중 98%가 계속 입원 판정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환자의 자유로운 동의 없이 비자발적 입원과 치료가 가능한 현행 정신보건법은 UN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으로서 OECD 등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보건복지부는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이는 당초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배제했다는 측면에서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학계로부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전면 개정안을 살펴보면 크게 ▲명칭 변경 ▲정신질환자 범위 축소 ▲법의 목적에 ‘사회복귀’ 용어 ‘재활’로 대체 ▲비자발적 입·퇴원 관련 제도 개선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구성 인원 등의 내용으로 모아진다.

▲ 명칭 변경 내용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참조
▲ 명칭 변경 내용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참조

우선, 정신보건정책 구조를 기존의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치료’에서 ‘정신건강증진 및 조기 발견·치료’ 중심으로 변화하겠다는 취지 아래 현행 ‘정신보건법’이란 명칭을 ‘정신건강증진법’으로 바꾼다.

▲ 정신질환자 범위 축소 규정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참조
▲ 정신질환자 범위 축소 규정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참조

또한 현행법은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정신병·인격 장애·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 정신장애를 가진 자’로 정의해 의학적 의미의 모든 정신질환자를 포괄한 반면. 개정안은 정신질환자 범위를 축소해 ‘사고장애, 기분장애, 망상, 환각 등 정신질환으로 인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외래 치료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증 정신질환자는 기존의 범주에 속하지 않아 일반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당사자 관계 단체는 취지와는 달리 축소된 범위에 속하는 정신질환자는 낙인과 부정적 편견이 한층 심화돼 사회로부터 더욱더 소외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개인을 지원할 목적으로 제정되는 법률은 그 대상을 확대해가는 과정을 밟는 것이 수순인데 오히려,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 차별을 해소하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정작 법의 목적 조항에서 ‘사회복귀’ 용어 자체를 삭제하고 ‘재활’로 대체해 여전히 정신장애인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 법의 목적을 규정하는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제1장 총칙 참조
▲ 법의 목적을 규정하는 조항/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 제1장 총칙 제1조 참조

현행 정신보건법은 법의 목적을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사회복귀에 관해 필요한 사

▲ 한울지역건강센터 정보영 관장.
▲ 한울지역건강센터 정보영 관장.

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명시하지만, 개정안은 ‘정신질환의 예방, 치료, 재활과 정신 건강 친화적인 환경 조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에 이바지 한다’고 명시해 ‘사회복귀’ 용어 대신 ‘재활’용어가 사용된다.

한울지역건강센터 정보영 관장은 “거대하고 장기적인 수용 치료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지지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사회복귀’ 용어를 삭제하고 ‘재활’로 대체한 것은 기존의 비자발적인 수용 치료와 격리 중심의 정신보건체계를 지속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활이라는 용어는 장애인 정책에서 극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용어.”라며 “1990년대 재활 표본은 장애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는 관점에 입각한 것으로, 현재는 장애 당사자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용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는 강제적인 입·퇴원 관련 제도 역시 개정안의 내용으로는 비자발적인 수용 치료 중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바라봤다.

▲ 비자발적 입·퇴원 관련 제도 개선/ 정신보건법 제24조 3항, 개정안 제 36조 3항
▲ 비자발적 입·퇴원 관련 제도 개선/ 정신보건법 제24조 3항, 개정안 제 36조 3항

개정안은 입원 후 최초 퇴원 심사 주기를 현행 6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고, 이후에 연장 입원 판정이 나면 그때부터는 6개월 단위로 계속 입원을 심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대는 “최초 심사 기간이 6개월에서 2개월로 줄었지만 여전히 입원일 수가 길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규정은 변화가 없는 상태여서 이것만으로는 계속 입원과 장기 입원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자의입원을 기본으로 삼는다’는 규정을 바탕으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막고 최초 심사 기간을 대폭 축소해야 하며, 연장 입원 판정이 난 뒤에는 3개월 단위로 계속 입원 여부를 재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입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초지자체 차원의 공공 일시보호시설이나, 쉼터 설치를 통해 장기적인 치료 중심의 구조에서 탈피한 단기입원 체계 마련을 제안했다.

아울러 퇴원 심사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인 심의위원회 구성원 관련 조항도 개선할 점이라고 꼬집었다.

▲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설치 및 종류/ 정신보건법 개정안 신설 제41조 6항
▲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설치 및 종류/ 정신보건법 개정안 신설 제41조 6항 참조

이 조항은 현행법에는 없으나, 개정안을 통해 신설된 내용이다. 신설된 조항에서는 퇴원 심사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인 정신보건심의위원회 구성 인원에서 ▲심리학·간호학·사회복지학 또는 사회사업학을 가르치는 전임강사 이상 직에 있는 사람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회복한 사람 ▲정신건강증진 관계 공무원, 인권 전문가 등의 참여가 선택적 사항으로 포함돼 있다.

연대에 따르면, 심의위원회 구성 인원에 ‘회복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명시돼 있지만 회복한 당사자의 회복 정도를 판단할 뚜렷한 근거 조항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김락우 대표는 “이 상태로는 구성원에 당사자를 포함했다고 볼 수 없고,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구성원에 포함시킬 의지가 있다면 보다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권전문가 참여는 임의 규정이 아니라 필수 구성 요소로 추가돼야 한다.”며 “나아가 제3의 독립된 기관에 의한 사전 입원심사제도와 기간 상관없이 입원 도중에 실시 가능한 적정성 심사 제도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권’ 우선시하는 정신보건법으로

정신장애인은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후로, 장애인복지법 영역보다는 의료와 보건에 관한 법인 정신보건법 범주에 속하게 됐다.

하지만 의료법인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문제 보다는 보건과 치료 중심으로 규정돼 있다.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는 아직까지 보호받지 못하고 더 깊은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 한국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감락우 대표.
▲ 한국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감락우 대표.

한국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김락우 대표는 “정신보건법은 개정될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심지어 개정안을 내놓기 이전에 직접적인 법 관계 본인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한번 없이 진행됐다.”고 분노했다.

김 대표는 “당사자를 배제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은 정작 개선돼야 할 부분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법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서둘러 당사자 관점에 입각한 개정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확고히 했다.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이용표 교수는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들의 지역사회생활에 가장 기초가 되는 근거 규정이므로,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신장애인을 더 이상 가둬두는 수용 입원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탈원화를 목표로 한 정신보건법의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정신장애인 당사자 관계 단체들은 아직 입법 활동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당사자 중심의 보건정책법으로 제정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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