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이동권 쟁취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
29년 전 이동권 쟁취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
  • 최영하 기자
  • 승인 2013.09.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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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해방운동가 故 김순석 열사 제29주기 추모제 열려
▲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장애해방운동가 故 김순석 열사의 제29주기 추모제.
▲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장애해방운동가 故 김순석 열사의 제29주기 추모제.

“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십시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번 다져보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놨습니다.”
                                                                         -故 김순석 열사 유서 中 일부-

장애해방운동가 故 김순석 열사의 제29주기 추모제가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였다.

이날 추모식은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김병태 회장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을 비롯해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등 여러 장애계 단체가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故 김순석 열사는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소아마비 후유증을 겪은 이후 28세 때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중증장애인 판정을 받았지만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금·은세공 기술을 배워 공장장 자리까지 올랐다.

또한 그는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서울 시장 골목 상권에 직접 대항하며, 장애인의 이동권 활성화를 위해 ‘서울 시내 문턱을 없애달라’고 외치는 등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서른 다섯 나이에 다섯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이날 참석한 정대수열사추모사업회 김병태 회장은 “김 열사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지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어 “그분의 뜻이 장애인 운동 역사의 배경이 됐다고 생각한다. 만일 아직 그가 살아계셨다면, 우리와 함께 투쟁했을 것.”이라며 “아직도 그가 맞서 싸우던 이동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아 모두 함께 더욱 노력하자.”고 의지를 다졌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은 “추모제의 의미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자리면서 동시에 당면 과제를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답을 확인하는 자리기도 하다.”며 “엄숙한 자리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꿈을 나누는 동지들이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의장은 “그의 유서를 통해서 그가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봤던 문턱은 단순한 문턱이 아니라 냉대 받고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이었을 것.”이라고 대변하며 “문턱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그 기초로 법제도가 만들어지는 길 뿐.”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날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400일이기도 했다.

추모식 자리에 함께 한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이 세상 누구라도 문턱에 가로막혀 식당조차 못 가는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 400일 동안을 이러한 차별 철폐를 외쳤건만 아직도 해결 과제가 많다.”고 지난 시간을 위로했으며, “빈민이 아닌 빈곤이 죽어가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자.”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