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우려의 실체와 대안’ 주제로 토론회 열려
장애등급제 단순화 과도기적 과정 필요성 여부 검토

▲ 지난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우려의 실체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했다.
▲ 지난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우려의 실체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했다.

최근 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부의 ‘2014년부터 중증과 경증으로 장애등급 단순화 이후 2017년 장애등급제 폐지’ 계획에 대한 우려와 대안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2일 서울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우려의 실체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는 성신여자대학교 이승기 교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한국장애인개발원 최승철 부장,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최기전 사무관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성신여자대학교 이승기 교수는 “대선 전만 해도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심도 있게 점검하고 향후 방향을 논의하면 앞으로의 진도는 더욱 빠를 것.”이라고 진정성 있는 토론 참여를 당부했다.

장애 등급제 존폐에 대해 토론 참석자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앞서 대선 공약으로 장애등급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바꿔 2014년부터 중증, 경증으로 장애등급을 단순화하고 2017년부터 장애등급제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폐지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국제적 흐름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의료적 기준만으로 장애를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복지 전달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역시 “개인의 욕구와 그에 맞는 서비스 전달이 의료적 판단에 의한 등급만으로 책정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고, 인권의 문제기도 하다.”며 폐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어 토론자들은 정부가 ‘2014년부터 중증과 경증으로 장애등급 단순화 이후 2017년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장애등급제가 현실적으로 폐지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장애인 정책과 최기전 사무관은 “현재까지 계획은 과도기적 과정으로 논의되는 내용이지 정부의 최종안은 아니다. 정부는 폐지를 위해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해 열어놓고 있으며,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는 것은 유력한 고려 사항 중 하나일뿐.”이라고 대답했다.

최 사무관은 “박 대표의 말처럼 국제적 장애 패러다임맞지 않는 의료적 기준만의 판정 체계 문제점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과제로 결정되면서 ‘판정체계기획단’도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장애계, 학계,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을 꾸린 바 있다.

최 사무관은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할 의지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폐지되면 그것을 대체할 판정 체계와 그 체계에 대한 부작용 및 합의와 검토는 앞으로 활발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에 박경석 대표는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의지가 확고하다고 했지만, 장애계가 그리는 폐지의 모습과 과연 같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장애등급 단순화 이외 어떠한 계획과 방향·예산 설계도가 없고, 장애판정체계기획단에서도 새롭게 결정되거나 확인된 내용은 없다는 것.

▲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그는 “정부의 뚜렷한 폐지 상 없이 단순히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는 것은, 장애인연금 대상을 아주 조금 확대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변화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결국 폐지가 아닌 경증과 중중의 분류로 고착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조한진 교수 역시 “폐지 상이 뚜렷하면 과도기적 과정은 필요 없다. 모든 기준을 경증과 중증으로 정하는 것은 행정 낭비며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다.”고 의견을 함께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상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자 최 사무관은 “‘장애등급제 폐지’가 도화선이라고 한다면, 등급으로 인한 ‘낙인’ 해결을 급한 당면과제로 삼고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단순화 방안을 붙인 것.”이라며 처음부터 폐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할인감면 혜택 축소 우려, ‘소득 기준’ 또는 ‘직접 보장’ 대안

이승기 교수는 장애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했을 때 우려되는 문제점을 꼽았다. 그는 각종 할인·감면제 혜택 축소로, 기존에 혜택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박경석 대표는 “현장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반발이나 우려의 실체도 대부분 감면할인 혜택 삭감에 대한 우려.”라며 각종 감면·할인제도 대상을 전체 장애인으로 상향 평준화해 일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50% 할인받는 1급과 30% 할인받는 3급의 경우, 둘 다 50%로 상향 통일하자는 이야기다.

나아가 전기세 할인 등 간접 감면 할인 제도를 장애인 연금으로 직접 넣어주는 직접적 소득 보장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조한진 교수는 박 대표의 의견에 동의하는 한편, 구체적인 소득 수준 기준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그동안 장애등급제와 연동됐던 각종 할인·감면 제도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할인·감면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모두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할인·감면에 따른 일반 국민의 공감을 얻어 내기에도 더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의 소득을 평가하는 부분이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장애인의 소득을 평가하지 않더라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수급자·비수급자·차상위계층 등으로 구분해 차등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최기전 사무관
▲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최기전 사무관
하지만 한국장애인개발원 최승철 부장은 “소득을 기준으로 차등 지급할 경우, 민간 기업이 개인의 소득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장애인에게 실례가 될법한 주장.”이라고 반대했다.

이에 조 교수는 “자신의 소득 기준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다. 나아가 수급자 내지 차상위 계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시는 ‘필요자’와 같은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와 관련해 최기전 사무관은 “복지부 판정체계기획단에서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각 부처의 예산 상황, 정책 방향, 민간 기업 부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복지부가 입장을 표명하기는 힘들다.”며 “사실상 폐지 이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기에 논의는 하고 있으나 이 자리에서 시원하게 답변하기는 힘들다.”고 입장을 전했다.

한편, 이승기 교수는 서비스 제공에 있어 장애등급과 크게 연관 되지 않는 활동지원제도처럼 별도의 ‘인정조사표’를 만들어 응용하는 것도 좋은 방편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개인별 맞춤 지원, 별도의 전문 기구 필요

조한진 교수는 전달 체계 개편과 관련해 장애인의 교육, 고용, 소득, 의료, 주거 등 다양한 영역의 욕구를 한 곳에서 측정할 수 있는 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경우, 그 역할을 지방자치단체가 맡는 것이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담당자의 시간 제약, 전문성·감수성 결여 등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 욕구를 종합적으로 판정하는 기관이 별도로 설립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기존의 국민연금공단 장애인 지원실, 장애인공단(장애인복지공단)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관련 시설과 인력을 이용할 수 있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기전 사무국장은 기구를 별도로 신설하든, 기존의 조직을 활용하든, 주도 기관에 따라 각 기관에 성격들이 통합적으로 조정될 필요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경석 상임대표는 “이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장애인의 피부와 와 닿는 ‘개인별 지원 체계’.”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누가 관리하든 서비스 양이 풍부한 상태에서 장애인의 선택권과 통제권이 보장되도록 만드는 것이 전달 체계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폐지 논의는 ‘활발’… 정부 추진은 ‘미진’

장애등급제는 오랜 시간 장애인에게 낙인을 찍는 등 비인권적인 제도로 여겨지고 있어, 폐지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모든 토론자들은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인의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판정 체계가 빠른 시일 안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한진 교수는 “국민의 생존권과 사회권은 헌법에 규정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예산의 편성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지 예산 때문에 사람을 위한 제도가 제한돼서는 안된다.”며 “제도 개편에 있어 아무리 예산이 고려된다 할지라도 그 관문이 장애등급제 만큼은 아니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경석 대표는 “2017년까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 중심으로 하루빨리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 방안까지 나와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촉구했다.

이승기 교수는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는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정작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며 장애인 당사자의 관심과 지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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