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자립생활 지원 놓고 합의점 내지 못해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및 권리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뿐만 아니라 자치구 역시 구체적인 권리 보장 계획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6일 오후 3시 서울 및 노원구 지역 관련 장애계단체는 노원구를 상대로 장애인 자립생활 및 활동지원 추가 지원을 촉구, ‘장애인자립생활권리 보장 외면하는 김성환 노원구청장 규탄 대회’를 노원구청 앞에서 열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노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어울림 등은 지난 8월 말부터 서울시 12개 자치구에 중증장애인의 권리 보장 지원을 요구해 왔다.

이들 단체는 노원구에도 10월 30일 구청장과의 면담을 통해 ▲활동지원 추가 지원 시행 ▲자립생활 예산 확대 및 자립생활센터 지원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한 체험홈 및 자립주택 제공 ▲중증장애인 보장구 수리비 지원(생활 소득에 따라 충천지 교체비 일정 부분 지원)을 요구한 바 있다.

노원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장애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자립생활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살 집 마련’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자립생활이 ‘지역사회에서의 삶’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치구 차원에서의 자립생활 체험홈 및 자립주택 설치·제공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 노원구에는 체험홈 1개소만 있을 뿐이며, 이마저도 여성체험홈으로 남성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장애계단체는 자립생활 체험홈 및 자립주택을 매년 각 2개소 이상 설치할 것과, 관할 시설 및 노원구 장애인의 자립 욕구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연차별 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이에 따른 장애인 자립생활 예산 확대는 필수며, 자립생활에 대한 정보 접근부터 자립까지의 과정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센터의 지원 또한 요구했다.

특히 활동지원의 경우 중증장애인의 생존권 보장 정책인 만큼 하루 24시간 보장이 필요하지만, 현재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은 월 최대 360시간(기본급여 107시간, 추가 급여 253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서울시의 경우 추가 지원을 시행해 월 최대 180시간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모두 합해도 하루 17시간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치구의 추가 지원이 절실한 상황.

하지만 면담 당시 김성환 구청장은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은 자치구에서 할 일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으며, 탈시설-자립생활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는 것.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김성환 구청장은 ‘원칙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원칙은 장애인의 삶이 아닌, 구청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원칙이었다.”고 비판했다.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예산이 없고 재정 자립도를 자립생활 보장 지원 불가능의 이유로 들었는데, 재정 부족은 모든 자치구가 겪는 어려움이다. 돈이 남아도니까 불쌍해서 해주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장애인도 사람으로 그 권리를 보장하고,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써야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도 김성환 구청장의 태도를 질타하며 “강동구청장과 이야기할 때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미안하다’고 했다. 국민의 투표로 구청장이 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날선 목소리를 냈다.

반면, 성북구는 합의한 사항에 따라 11월부터 시범적으로 최중증·독거장애인 6인을 대상으로 활동지원 월 최대 150시간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성북구에 살고 있는 최중증·독거장애인에게는 정부가 지원하는 월 최대 360시간과 서울시의 월 최대 180시간을 비롯한 자치구의 추가 지원 월 최대 150시간을 합한 720시간으로, 하루 24시간 지원이 이루어지는 셈.

이밖에도 경기도 고양시·의정부시와 전라남도 등 또한 하루 24시간 보장을 지원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으며,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은 월 최대 120시간의 구비 추가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

노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어울림 이성수 소장은 “김성환 구청장은 선거 전 자립생활 지원과 체험홈 설치를 약속하는 서약서를 썼다. 만약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말한다면, 서약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원구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최흥종 씨는 “탈시설-자립생활을 하고 싶어도 체험홈이 너무 없어 어렵다.”며 “지역사회에서 사는 데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체험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노원구청측이 면담에 참석하는 대표단 외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해 승강기를 에워쌌다.
▲ 노원구청측이 면담에 참석하는 대표단 외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해 승강기를 에워쌌다.
아울러 장애계단체는 중증장애인의 이동 수단인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등에 대한 지원과, 이동지원센터 및 수리하는 직원에 대한 기술력 강화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서비스는 바퀴 구멍, 교체, 충전지 교환, 청소 등 극히 제한적.”이라며 “전문적인 수리는 제조사에 직접 수리를 요청해야만 해 별도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지난달 노원구가 제정한 장애인자립생활조례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갔다. 박 공동대표는 “내용을 살펴보면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할 수 있다’라는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하면 ‘돈이 있으면 좀 떼어줄게’가 되고, 돈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례.”라고 지적했다.

박 공동대표는 “국제조약인 장애인권리협약은 중앙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까지, 심지어는 나라의 관습까지 장애인 소외·배제·차별을 고치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할 수 있다’로 만들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뒤 노원구 교육복지국장을 비롯한 실무자들과의 면담이 진행됐다. 대표단이 면담 장소로 움직인 뒤, 오후 4시 35분경 노원구청측은 다른 사람들의 승강기 탑승을 막아섰다.

‘1층 화장실만으로는 모자라 올라가려고 한다’는 말에도, 노원구청측은 ‘대표단이 올라갔기 때문에 올라갈 수 없다’며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특히 면담 장소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승강기를 임의로 조종했는데, 이 과정에서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이 승강기에 10여 분간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 노원구청측이 승강기 탑승을 막기 위해 조종, 이에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이 홀로 승강기 안에 10여 분간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 노원구청측이 승강기의 문을 열고 있는 모습.  

                    

▲ 노원구청측이 승강기 탑승을 막기 위해 조종, 이에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이 홀로 승강기 안에 10여 분간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열쇠로 승강기의 문을 연 노원구청의 한 직원은 사과 대신 ‘빨리 내려라, 그렇지 않으면 또 닫힐 것이고 추락할 위험이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박현 소장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내리기 전에 먼저 노원구청측의 사과를 요구하자, 일부 직원들은 ‘누가 책임자인지 모른다’며 회피하기 급급했다.

30분가량의 대치 끝에 결국 종합상황실의 실장이 나와 “대신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다만, 기계 체계의 오류로 가끔 승강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뒤늦게 노원구청측은 승강기 앞 경찰 배치를 해체하고, 승강기 또한 원래대로 운영하면서 상황은 일단락 됐다.

현재 장애계단체 대표단과 노원구의 면담은 합의점을 내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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