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이퐁 IL 그룹 4인 한국 방문… 자립생활 프로그램, 투쟁 참여
“장애인 자립 환경 부족한 베트남… 프로그램보다 이동권 확보가 우선”

▲ 의정부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베트남 하이퐁 IL 그룹 호아씨.
▲ 의정부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베트남 하이퐁 IL 그룹 호아씨.

지난달 25일 마포대교 앞. ‘투쟁!’ 서툰 한국말로 힘차게 목소리 높이는 여성이 있었다. 한국장애계 단체와 마포대교를 횡단하는 그는 어떤 활동가보다도 의욕이 넘쳤다.

그를 다시 만난 곳은 지난 12일 의정부시청 앞.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상시 이용할 수 있게 개선해라! 의정부시장은 420공투단과 대화에 즉각 나서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선 1인 시위 현장에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베트남 IL 그룹 리더 호아(Nguyen hoa).’라고 적힌 명찰을 단 그는 한달 동안 한국의 장애계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

호아 씨는 베트남의 열악한 자립생활 현실을 바꾸고, 더 나은 활동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호아 씨를 한국에 초대한 것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경기장차연) 이도건 집행위원장이다.

둘의 인연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집행위원장은 베트남으로 배낭여행을 하던 중 베트남 지역 자립생활센터 등을 찾았다.

그곳에서 센터의 모습과 환경을 전해듣고, 한국으로 돌아와 SNS를 통해 하이퐁 IL 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호아 씨는 인터뷰를 통해 그당시 첫 만남에 대해 소개했다.

“지난해 SNS를 통해 경기장차연 이도건 집행위원장을 만나게 됐다. 온라인상으로 서로 글을 주고 받으며 베트남과 한국의 장애인 생활, 자립 프로그램 등의 정보를 주고 받았다.

것이 계기가 돼 지난해 이도건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람들이 방문했다.

베트남은 아직 자립생활이란 것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와서 활동 역사, 정보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자립생활이란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자립생활 활동을 체험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호아 씨는 경기장차연의 초대로 지난달 23일 한국에 왔다. 한달여 남짓 머무는 동안 한국의 자립생활센터 5곳, 야학, 부모회, 복지관 등 각 단체를 방문해 한국의 동료상담, 자립생활 프로그램, 운영 방식, 투쟁 방법 등을 배웠다.

호아 씨에 따르면 베트남의 공식 자립생활 센터는 하노이에 1곳 뿐이다. 그 외에 센터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가 4곳이 더 있다.

그가 활동하는 하이퐁 IL 그룹 역시 정식 센터가 아니라 동료상담, 자립생활, 개인 보호 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자조 모임이다. 이런 활동 역시 체계화된 것이 아닌 임시 운영이기에 호아 씨는 더 많은 정보와 체계를 배워 베트남에 장애인 자립을 정착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적극적인 한국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의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환경은 얼마나 마련됐을 까.

호아 씨는 자국인 베트남을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기도 힘든 사회주의 국가.’라고 표현했다.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투쟁과 시위 활동이 어렵고, 아직 도로나 대중교통 등 장애인을 위한 이동권은 여느 개발도상국가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베트남에 한 곳 뿐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다. 이에 하노이 자립생활센터는 물론 하이퐁 IL 그룹도 일본의 니폰 파운데이션이라는 재단으로부터 1년 단위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를 향해 장애인 자립생활 환경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길은 멀고 험난하다는 베트남의 현실.

이에 경기장차연은 호아 씨를 비롯한 베트남 IL 그룹에 효과적인 프로그램 운영과 개선 방식 등을 알려주고 있다.

“베트남도 자립생활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진 않다. 직업훈련 같은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도로가 너무 불편해 장애인들이 이동자체가 불가능하고, 대부분 장애인들은 바깥에 나오는 것 조차 험난하다.

주로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우리는 우선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이동권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호아 씨가 말하는 베트남은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이동수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길 또한 울퉁불퉁 비탈길이어서 휠체어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호아 씨는 프로그램에 앞서 자립생활의 기반이 되는 이동권, 소득보장 등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저상버스를 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물론 한국도 부족하지만, 베트남에 비하면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베트남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다. 길은 척박하고, 버스 등 이동수단에서 휠체어가 탈 수 잇는 공간은 없다.

한국 활동가들에게 한국의 이동권 보장은 투쟁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라고 들었다. 비록 우리가 한국처럼 투쟁을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노력해서 베트남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청원에 서명한 호아 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청원에 서명한 호아 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호아 씨는 한국에 와서 경험했던 자립생활 활동·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달 25일~26일 이틀간 이뤄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420공투단) 투쟁 선포식이다.

호아 씨는 당시 경험을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장애계의 단단한 결집력과 의지가 그에게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운동을 펼칠 수 있는 힘이 됐다.

420공투단 선포식의 일환으로 마포대교를 행진할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사람들이 시위나 투쟁을 하면 바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래서 함부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람들이 똘똘뭉쳐 투쟁하는 모습을 보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분명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달라 베트남에서는 한국처럼 투쟁을 할 순 없지만, 그들의 활동 속 의지는 놀라웠고 앞으로의 활동에 힘이 돼 줄 것이다. ”

또한 호아 씨는 투쟁 활동을 통해 한국의 활동가들이 서로 신뢰하고 힘을 모아 투쟁 순간순간 함께 하는 것이 멋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호아 씨에게 베트남 자립활동에 있어서 사람들끼리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투쟁하면서 활동가들이 서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다. 체계화된 움직임으로 역할 분담을 해 위기 상황에서도 절대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는 모습이 참 뜻깊었다.

또한 우리가 낯설텐데 다정하게 대해주고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해서 나조차도 배우면서 굉장히 기뻤다.

한편으로는 많이 부러웠다.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소통하면서 무언가를 쟁취해낸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우리도 서로 협력해서 활동을 꾸려 나가고 싶다.”

특히 호아 씨는 인터뷰를 통해 계속해서 한국 활동의 부러움을 전했다. 한국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베트남과 비교하면 더 나은 환경이라는 것.

“물론 한국도 장애인 처우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하나둘씩 기반을 다져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베트남에 돌아가서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 보고 싶다. 물론 국가특성상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게 훨씬 더 발전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 결의대회를 끝으로 베트남 IL 그룹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호아 씨는 한국에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베트남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며 투쟁에 대한 본인의 소신을 전했다.

“제일 많이 느낀 것은 당사자 스스로 투쟁에 참여하고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이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국사람들처럼 스스로 당당히 요구하고 하나하나 얻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저이 쉽지 않은 것은 충분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힘든 상황임에도 끝까지 투쟁하면서 쟁취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나의 의지가 더 굳건해진다.”

한편 한국-베트남 자립 생활 교류에 따라 경기장차연은 하이퐁 IL 그룹의 한국 방문 이후 오는 8월 베트남을 방문해 개발·협력과 관련 프로그램을 교류할 예정이다.

경기장차연 이도건 집행위원장은 교류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베트남의 사회 여건이 쉽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베트남의 정치구조가 어떤 이동권, 자립생활 재정지원 등을 확보하기에 쉽지 않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민주주의라고 해서 장애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며 살진 않는다.”며 “우리도 20년간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구조보다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당사자가 직접 권리를 요구하고, 인식 개선을 요구한다면 언젠가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음을 전했다.

▲ 베트남 하이퐁 IL 그룹 의 호아(Nguyen hoa)씨, 능(Nguyen nhung)씨
▲ 베트남 하이퐁 IL 그룹 의 호아(Nguyen hoa)씨, 능(Nguyen nhung)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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