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 농성 밖 사람들의 이야기

2016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4년이 된 날이다. 이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은 4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9일 대규모 결의대회와 문화제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일상. ‘광화문 농성 000일째’라고 적혀있는 종이의 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농성장 풍경. 일상이 돼버린 외침. 그러나 그들의 일상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같은 광화문에서 다른 이유로 투쟁을 하는 사람들. 평범하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 저마다 이유를 갖고 광화문 역을 지나가는 사람들.

변한 게 없어보이지만, 그들은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 오늘도 농성장의 일상을 함께 보내고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광화문역사 근처에 마련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 모습.
▲ 광화문역사 근처에 마련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 모습.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화문.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세종대왕 동상이 우두커니 서있고, 그 옆에는 분수대가 더위에 지친 어린이들을 반긴다.

평화로운 광화문 광장의 풍경. 그러나 몇 발자국만 더 걸으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2016년 8월.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해 지하로 내려가보면, 낡은 천막 사이로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절로 숙연하게 만드는 의문의 영정사진들이 나열돼 있다.

평화로운 풍경과 상반되는 낯선 듯 익숙한 풍경이 있는 이 곳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이다.

▲ 8월 어느날. 어김없이 서명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등급제를 알리기 위해 농성장에 앉아있는 활동가들.
▲ 8월 어느날. 어김없이 서명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등급제를 알리기 위해 농성장에 앉아있는 활동가들.

“장기전이 될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의지와 열정은 변함이 없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서로가 조금 지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등급이 폐지될 때까지 우리의 농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벌써 4년째 이어져 온 광화문 농성. 4년이란 시간만큼 이들은 서로 더 돈독해졌고, 딱 그만큼의 시간만큼 사람들은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날도 여전히 농성장을 지키는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황민규 활동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활동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을 받습니다’고 대답없는 메아리만 계속 외쳤다.

“처음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호기심에 혹은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 서명을 했고, 장애등급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4년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도 우리를 그냥 어떤 ‘조형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취재를 갔던 날 역시 광화문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농성장 탁자위에 올려진 펜과 서면지는 머쓱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활동가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더 많은 ‘기묘한 풍경’만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모두가 그저 ‘일상’처럼 지나가버린 것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서명하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무심히 지나가다 농성장앞에서 멈칫하며 수줍게 서명하는 사람 등은 여전히 광화문 농성이 ‘현재진행형’ 임을 입증시켜주고 있다.

“최근에 저희 언니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판정을 받았어요. 저도 전에는 장애가 남의 일인냥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제 주위사람이 장애판정을 받으니 실감이 오더라구요. 평상시에는 어떤 서명이든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데, 장애등급 폐지 서명이라고 하니 눈길이 갔습니다. 저도 장애등급제에 대해 확실히 모르지만, 장애인들이 직접 서명을 받고, 그들의 문제를 알아달라고 하니 서명을 통해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 문준희 씨.

4년을 맞이하는 농성장. 그 길을 수없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상이 돼버렸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지지하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곳이 바로 농성장이다.

▲ 광화문 농성장 한켠에는 시민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분홍색 종이배가 있다.
▲ 광화문 농성장 한켠에는 시민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분홍색 종이배가 있다.

이는 비단 장애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광화문 농성장은 장애인에게도 힘이 되는 곳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농성, 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투쟁의 의지, 결연함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노란 깃발을 펄럭이며 천막을 치고 있는 세월호진상규명위원회가 바로 그 곳이다.

“처음엔 그저 억울하기만 했어요. 억울한 마음에 농성을 시작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서명을 받았죠. 그때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절박하게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세월호 사건을 당해보지 않았다면,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외면하고 무시하는지 몰랐을 거에요. 그런데 내가 그런 일을 겪고 보니 그제서야 그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활동가들이 우리를 위로해주고, 연대해주는 모습을 보며 큰 힘이 됐어요. 그러면서 우리도 끝까지 가야겠다!라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도, 장애등급제 폐지 이야기도 모두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함께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는 김영희 씨

‘동병상련’. 이들만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지상과 지하에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가 되주는 이들. 어쩌면 평생 관계가 없을 듯 보이는 이들은 ‘농성’을 통해서 더욱 끈끈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더 크게 세상에 울릴 것이다.

이처럼 그들과 밀접한 관계속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한편으로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듯 보이는, 오히려 농성장 사람들을 ‘외부 세력’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칫 주변에 농성장이 있으면, 당장 장사에 방해되지 않을까 우려를 할 수 도 있지만, 오히려 그들은 농성장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광화문 역 근처에서 몇 년 째 상점을 하고 있는 상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처음엔 조금 놀랐죠. 외관으로 봤을 때 조금은 낡고, 영정사진들도 있고 어둡잖아요. 하지만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구요. 사람들이 가끔 묻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농성장이 있으면 조금 방해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광화문이란 곳이 관광객, 외국인 등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이고, 대규모 결의 대회 등도 많이 하는 곳이잖아요. 이런 곳에서 해야 그들의 의견이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을까요. 매일 농성장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까지 하는데 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지 , 그분들의 바람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


광화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장 모 씨

“농성장 근처에 있다보니 그곳을 지키는 활동가들이 자주 와요. 처음에는 가게에 오는 중증 장애인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등급이 있어야 등급대로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나. 근데 왜 폐지를 하자고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왜 폐지를 주장하는지 물어보기도 했죠.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장애에 대해 너무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 모든 장애인이 등급별로 알맞은 혜택을 받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도 안되는 등급 판정으로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숨을 거두는 일도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여전히 장애인은 차별받고 목숨을 위협받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4년째 농성을 하고있지만, 여전히 장애등급제 문제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것과 같죠. 그들이 조금더 힘을 내 비장애인이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과 장애등급제 문제를 모두 바꿔주길 바랍니다. 마음 속으로 응원할게요.”


광화문 근처 상점 주인 김 모 씨.

4년째 이어온 농성에 지치고, 혹은 ‘과연 될까’란 의구심이 들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는 여전히 그들을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을 사람들의 외침에 언제쯤 ‘대답’을 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언제나처럼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간절함으로…….

▲ 퇴근 길. 어김없이(?) 무심하게(?) 농성장을 지나는 사람들.
▲ 퇴근 길. 어김없이(?) 무심하게(?) 농성장을 지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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